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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은 신라 김대성이 지은 것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08. 5. 11. 21:28

윤여동설 - 한반도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은 신라 김대성이 지은 것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삼국유사 효선편 대성효2세부모 신문왕대 조에 의하면,
  향전의 기록을 인용하여, "모량리(혹은 부운촌이라고도 한다)의 가난한 여인 경조에게 아이가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정수리가 평평하여 성과 같았으므로 이름을 대성이라 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부자인 복안의 집에 가서 머슴살이를 하여 그 대가로 조그만 밭을 새경으로 받았는데, 그 밭을 절에 시주했다.
  얼마 후 대성이 죽었는데, 이날 밤 국상 김문량의 집에 하늘로부터 '모량리 김대성이란 아이가 너의 집에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
  그로부터 김문량의 아내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왼쪽 손을 꼭 쥐고 있다가 7일만에 폈는데 "대성(大城)"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금간자가 있었으므로 이름을 대성이라 하였다.
  자라자 전생의 어머니를 모셔다가 함께 봉양했다.
  그는 사냥을 좋아했는데, 어느 날 토함산에 올라가 곰 한 마리를 잡고 산아래 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 날밤 꿈에 죽은 곰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 '너는 왜 나를 죽였는가? 내가 환생하여 반드시 너를 잡아먹겠다' 하여 대성이 두려워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 절을 세워줄 수 있느냐?' 하여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꿈에서 깼는데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 후로는 사냥을 하지 않고 곰을 잡은 자리에 "장수사(長壽寺)"를 세워 곰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로부터 대성이 마음에 깨달은 바가 있어 이승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佛國寺)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石佛寺)를 세워 전세와 현세의 두 부모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앞서 석불을 조각하고자 하여 큰 돌 하나를 다듬어 감개를 만드는데 돌이 갑자기 세 조각으로 쪼개졌다.
  대성이 속이 상해 있다가 깜빡 졸았는데 밤중에 천신이 내려와 다시 만들어 놓고 돌아갔다.
  그리하여 대성이 잠에서 깨어나 남쪽 고개로 급히 달려가 향을 태워 천신에게 공양했다. 그리하여 그 고개를 향령(香嶺)이라 부르게 되었다.
  불국사의 운제와 석탑은 돌로서 나무같이 조각한 것인데 동도의 여러 절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났다"고 기록하고 있고,
  또 절에 있는 기록을 인용하여,
  "경덕왕 때 대상 대성이 천보 10년(A.D.751) 신묘년에 불국사를 짓기 시작했다. 혜공왕 때인 대력 9년(A.D.774) 갑인 12월 2일 대성이 죽자 나라에서 이를 완성시켰다. 처음에 유가교(밀교)의 고승 항마를 청해다가 이 절에 거주하게 했고 이를 계승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한반도 경주에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바로 이 기록 속의 불국사와 석불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공교롭게도 지금 경주 토함산 석굴암 천정 뚜껑 돌(감개)이 세 조각으로 금이 가 있어 이것이 바로 김대성이 돌을 다듬다가 깨진 것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기록이 아니다.
  사실 신라는 지금의 난하 동쪽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에서 건국되어 그곳에서 멸망했고, 삼국유사는 그 부근 대륙에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것이므로 김대성이 불국사와 석불사를 세웠다면 그 절들은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 동쪽 부근에 세웠다는 말이 되고, 지금 한반도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김대성이 세운 불국사와 석불사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 경주에는 불국사라는 절이 있고, 대웅전 앞마당에 우리가 지금 다보탑·석가탑이라 부르는 탑도 서 있으며, 석굴암이라는 석불사도 있다.  

 1966년에 석가탑 속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 경이 발견되었는데,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이라고 한다. 이는 삼국유사의 천보 10년(A.D.751)에 불국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이 석가탑이 이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때 다라니경도 넣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석가탑 속에서 무구광정탑중수기(무구정광탑중수기의 오기?)가 함께 발견되었는데, 지금 그 기록을 열심히 해독하고 있다.
  그 기록이 완전하게 해독되는 날 많은 비밀들이 풀릴 것이다.

 

  특히 필자의 주장과 같이 조선이 대륙의 개경에서 건국되어 한반도 한양으로 도읍을 옮겨오면서 절들도 함께 옮겨오게 되었다면 대륙에 있던 절의 대웅전은 뜯어 옮길 수 없다 하더라도 탑은 해체 분해하여 한반도로 가져와 장소를 옮겨 다시 조립했을 지도 모르고, 또 그렇지 않으면 대륙 불국사의 석탑 속에 들어 있던 유물만을 꺼내 한반도로 가지고 와 절을 새로 세우고 불국사라 하고, 돌을 깎아 탑을 다시 세운 후 그 탑 속에 대륙에서 가져온 유물을 넣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다만 지금의 한반도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이 정말로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면 이는 대륙의 불국사와 석불사를 본떠 한반도 경주에도 똑같이 만들었을 가능성은 있다 하겠다.

 

  따라서 삼국유사에 기록된 김대성이 세웠다는 원래의 불국사와 석불사를 찾으려면 한반도의 경주가 아닌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능해시(凌海市) 부근을 눈여겨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