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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삼한(三韓)은 지금의 북경 동쪽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08. 6. 19. 23:51

윤여동설 - 삼한(三韓)은 지금의 북경 동쪽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변진)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 우리는 삼한이 사방 1천리쯤이 되는 한반도 남부를 나누어 서울, 경기, 충청, 전라도가 마한이었다고 하고, 경북일원을 진한이었다고 하며, 경남 일원이 변한이었다고 인식한다.
  그런데 삼국지 한(韓)전을 보면,
  "조선후 준이 왕을 참칭하다가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기고, 그의 좌우 근신과 궁인들을 이끌고 도망하여 바다를 건너 한의 땅에 살면서 스스로 한왕이라 했다.
  그의 후손은 끊어졌으나 지금 한인 중에는 아직 그의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있다. 한나라 때는 낙랑군에 소속되어 철마다 조알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기원전 194년 준왕이 위만의 침공을 받고, 왕검성을 빼앗기게 되자 그곳으로부터 도망쳐 한(韓)의 땅으로 가서 다시 한왕(韓王)에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때 고조선의 준왕은 왕검성을 빼앗기고 지금의 어디로 가서 다시 한왕에 올랐던 것일까?
  앞글들에서 알아보았듯이 왕검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로 비정되는데, 그렇다면 위만에게 왕검성을 빼앗긴 준왕은 이때 지금의 승덕시로부터 난하를 타고 내려와 발해를 건너고, 또 서해를 건너 한반도의 전북 익산까지 와서 그곳에 도읍하고 다시 한왕이 되었을까?
  후한서에는 "한은 삼종이 있는데, 첫째는 마한이요, 둘째는 진한이요, 셋째는 변진(변한)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국이고, 그 북쪽은 낙랑, 남쪽은 왜와 접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국이고, 그 북쪽은 예맥과 접했다. 변진(변한)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며 그 남쪽은 왜와 접했다. 모두 78국이며, 백제는 그 중의 한 개 나라이다. 큰 나라는 1만여호, 작은 나라는 수천가인데 각각 산과 바다를 경계로 한다. 그 땅을 합하면 4천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에는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한계로 했고, 남쪽은 왜와 접했다. 땅이 4천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 환제와 영제 말기에 한과 예가 강성하여 군현에서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여 군현의 많은 백성들이 한국으로 흘러 들어가자 건안(A.D.196-219) 중에 공손강이 둔유현 남쪽의 황무지를 나누어 대방군으로 만들고, 공손모·장창 등을 보내 유민을 불러모으고, 군대를 일으켜 한(韓)과 예(濊)를 정벌하자 옛 백성들이 돌아왔고, 그 후 왜(倭)와 한(韓)이 드디어 대방(帶方)에 속하게 되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한서지리지에는 낙랑 25개 현 중에 대방현이 있다.

  그렇다면 결국 대방현이나 대방군도 낙랑과 함께 나란히 지금의 난하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필자는 대방군을 지금의 북경 동쪽 준화부근으로 비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은 낙랑과 대방의 남쪽에 위치했다고 했고, 한의 강역이 방 4천리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지금 한반도 남부의 면적은 사방 1천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어찌된 일일까?
  우리는 지금 한반도 남부의 사방 1천리 땅에 삼한 78개 나라가 옹기종기 위치했을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중국 사서들은 한이 방4천리를 차지하고 있던 큰 나라였고, 북경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인식과는 확연히 다른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게 되는 것이다.    
  한(韓)이 존재하던 시기에 쓰여진 중국 사서들의 기록을 싹 무시해버리고 그냥 한이 한반도 남부에 위치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버려야 하는 것일까?
  이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취할 태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북경 동쪽 준화 부근에 위치했던 대방과 그 북쪽에 위치했을 낙랑의 남쪽에 실제 한이 위치했던 것이라고 역사를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
   백제는 한사군의 한 군이었던 진번군 남쪽 땅에서 건국되었고, 또 대방 옛 땅에서 건국되었다는 기록도 있으며, 신라는 한(漢)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고 있었다고도 사서들은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백제는 마한 54개 나라 중의 한 개 나라였다고 하고, 마한의 동북쪽에서 건국되었다고 하는 기록도 있으며, 신라는 진한 땅에서 건국되었다고 하고, 가야는 변한 땅에서 건국되었다고 한다.
  이는 결국 우리의 삼한과 삼국이 모두 한반도가 아닌 북경 동쪽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비정해보면, 마한은 지금의 당산, 진황도를 중심으로 존재했을 것이고, 진한은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며, 변한은 요녕성 흥성, 수중부근에 위치했을 것이다. 
  세상에 .................

  우리의 삼한, 삼국이 북경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니...........................
  북경 부근까지가 우리의 옛 땅이었고, 그곳이 우리 고대 역사의 중심이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