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강물 색이 청둥오리의 머리색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 압록강 - 최초주장
지금 한반도와 중국과의 국경을 가르고 있는 강의 이름은 압록강과 두만강이다.
그 중에서 압록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서해바다로 들어간다.
그런데 한원 번이부 고구려(翰苑 藩夷部 高[句]麗) 조를 보면,
"후한서와 그 지리지에 이르기를 '현토군 서개마현 마현의 마자수는 서북쪽에서 염난수로 흘러 들어와 서남쪽으로 서안평까지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강의 길이가 2천1백 리이다' 라고 하였고,
응소(應邵)는 말하기를 '마자수는 서쪽에서 염택(鹽澤)으로 흘러 들어온다'고 하였다.
고(구)려기에도 '마자수(馬자水)를 고구려에서는 일명 엄수(淹水)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이름은 압록수라고 하고, 물고기가 떠올랐다'고 하는 이야기가 그 나라에 전해진다고 했다. 동북쪽 말갈국 백수(白水)의 물이 오리의 머리색깔과 비슷하므로 속명으로 압록수라고도 하는데, 요동에서 5백리 떨어져있다.
국내성(國內城)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드는 또 한 강과 합하여 염난(鹽難)을 이룬다.
두 강이 합해져 서남쪽의 안평성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後漢書曰 地理志曰 玄토郡 西蓋馬縣 馬縣 馬자水 (自)西北入鹽難水 西南至西安平入海 過郡行 二千一百里 應邵云 馬자水 西入鹽澤 高[句]麗記云 馬자水 高[句]麗 一名 淹水 今名 鴨록水 其國相傳云 水漁出 東北靺鞨國 白水色 似鴨頭 故 俗名 鴨록水 去遼東五百里 經國內城南 又 西與一水合 卽 鹽難也 二水合流 西南至安平城入海)" 라고 기록되어 있어, 마자수, 엄수, 압록수, 백수가 같은 강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주몽이 동부여에서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생명의 위협에 직면하자 그는 동부여에 어머니인 유화와 임신한 부인 예씨를 남겨두고 친구 세 사람과 함께 급히 도망쳐 엄호수(호태왕 비문에는 엄리대수라고 했다)를 건너 졸본에 도착해 아들 없이 딸만 셋이 있던 졸본부여 왕의 둘째 공주와 혼인을 했고, 왕이 죽자 졸본부여의 왕위를 물려받았으며, 기원전 37년에 이르러 그 국호를 고구려로 바꿈으로써 고구려의 건국시조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졸본일 것이라고 비정하고 있는 지금 압록강 북쪽의 길림성 환인은 압록강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북쪽에서 압록강을 건너기 전이다.
☆ 우리는 지금 부여가 압록강, 두만강 북쪽 지역에 위치했을 것이라고 역사를 해석하나 사실 부여는 북경 북쪽 내몽골에 위치했던 나라였다.
환인이 옛 졸본이라면 주몽은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가기 위해 압록강을 건널 필요가 없었을 것인데, 역사 기록은 주몽이 압록수를 건너 졸본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지금의 환인은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쳐 도착했던 졸본이 아닌 것이며, 따라서 그 곳의 오녀산산성 역시 졸본성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한원의 기록을 읽으면서도 이 기록이 바로 지금의 압록강에 대한 설명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기록 속 압록수(백수) 강물의 흐름이 지금 한반도 북쪽을 흐르는 압록강과 반대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원 기록 속의 압록수(백수)는 서북쪽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염난수 또는 염택이라는 호수로 들어와 또 다른 강과 합류한 후 서남쪽으로 흘러 안평 또는 서안평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지금 압록강은 동북쪽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서해바다로 들어가며 중간에 호수도 없다.
한원에 기록된 압록수와 지금의 압록강은 강물이 반대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경 북쪽에는 대마군산에서 발원하여 졸본으로 비정되는 적성 후성진 부근의 조양관천불동(朝陽觀千佛洞)을 지나고, 탕하구를 지나 밀운수고로 흘러드는 백하(白河)라는 강이 있는데, 만리장성 북쪽 풍녕 부근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고북구를 통과해 흐르는 조하라는 강과 밀운수고에서 합류한 후 이름을 조백하로 바꾸어 서남쪽의 밀운, 순의를 지나고 남쪽으로 흘러 북경 동쪽을 지나 발해로 흘러 들어간다.
바로 이 강이 한원에서 설명하고 있는 압록수의 강물 흐름과 똑같은 강이다.
한원은 지금 한반도 북쪽을 흐르는 압록강이 옛 압록수가 아니라 지금의 백하가 바로 옛 마자수, 엄수, 압록수라고 알려주고 있었던 것인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 기록을 읽으면서도 한반도 북쪽의 압록강이 옛 백수요, 마자수요, 압록수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반도 북쪽 요하를 요수라 했고, 대동강을 패수라 했으며, 지금의 한반도 북쪽 압록강을 옛 압록수라고 생각하고는 우리 고대 역사의 모든 기록을 이 강들을 기준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러자니 수 양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하여 건넌 요수를 지금의 요하라 하게 되었고, 우중문과 우문술이 평양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을지문덕을 쫓아 건넌 압록강이 지금의 압록강이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요하의 서쪽을 요서라 하게 되었고, 그 강의 동쪽을 요동이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래의 요수는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므로 옛날에는 지금의 북경부근이 요동이고, 영정하 서쪽부근이 요서였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북경 부근에서 일어났던 모든 역사적 사건을 한반도부근에 적용하여 해석하려 했으니 역사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이며, 기록 속에 나타나는 역사적 장소들을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찾고 싶어하는 고구려의 안시성과 환도성은 북경 북쪽 발해진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요동성은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생각만 조금 바꾸면 이렇듯 잃어버린 옛 땅을 찾을 수 있고, 모두를 알아낼 수 있는데, 그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있으니............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