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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정감록의 십승지지는 한반도에 없다 -최초주장

윤여동 2007. 11. 14. 06:39

윤여동설 - 정감록은 한반도에 대한 예언서가 아니다 - 최초주장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신 속에 의식, 무의식으로 잠재되어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이라면, 예언서(비결서)로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정감록(鄭鑑錄)을 꼽을 수 있다.
  우리에게 전해진 정감록으로 총칭되는 예언서(비결서)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 대표적인 것이 감결(정감록 비결이라고도 한다)인데, 누구에 의해 쓰여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야기의 줄거리는 심, 연 형제와 정감이라는 세 사람이 함께 산천을 유람하며 지세를 논하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 중에 "평양은 이미 천년운수가 지나 그것이 송악으로 옮겨졌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에 쓰여진 기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27년(A.D.668) 조를 보면, "고구려비기(高句麗秘記)에 (고구려는) 900년이 될 때에 80대장에게 멸망당할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고씨가 한(漢)나라 때부터 나라가 있어 지금 꼭 900년이 되었고, 이적의 나이가 지금 80세입니다" 라는 기록이 있어 고구려의 국운을 예언한 『고구려비기』라는 비결서가 옛날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고구려는 기원전 232년 북부여의 해모수가 천제에 오른 때로부터 그 후예인 해주몽(주몽왕, 추모왕)의 고구려로 이어져 서기 668년까지 꼭 900년 만에 멸망했다.

   

  

  정감록이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예언한 예언서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감록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두 갈래로 확연히 갈라져 있다.
  하나는 그 기록을 철저하게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정감록이 혹세무민하는 글로 엮어진 허무맹랑한 글이라고 보는 시각인데, 도대체 그 내용이 어떻길래 하나의 글을 놓고 이렇듯 상반된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선 감결의 내용을 보고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원문을 보면,
  "한융공(漢隆公)이 완산백에 봉해졌다.
  그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인 임(이임이라고도 한다)은 일찍 죽었고, 차자는 심(이심이라고도 한다)이요, 셋째는 연(이연이라고도 한다)이다.
  심과 연이 정공과 함께 팔도 산수의 기이하고 절승한 곳을 유람하면서 금강산에 이르렀다.
  세 사람은 죽장을 짚고 짚신을 신고 비비대에 올라 서로 돌아보며, 
  "천지의 음양이 잘 갖추어졌구나" 하였다.
  심이 말하기를 "산수의 생김새가 기이하고 절승하도다" 하였다.
  정이 말하기를 "곤륜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맥이 백두산에 이르고 그 원기가 평양에 이르렀으나 평양은 이미 천년운수가 지나 그것이 송악으로 옮겨졌다.
  송악은 오백년 도읍 할 땅이지만 요승과 궁녀가 난을 꾸며 지기가 쇠하고 천운이 막혀 운은 다시 한양으로 옮길 것이다.
  대강을 말한다면,
  난리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충신이 죽었으니 천지가 긴 밤중이로다.
  교룡이 남쪽을 건넜으니 사람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오직 흰 소를 따라 성으로 들어 가야한다."
  심이 말했다.
  "금강산으로 옮겨진 내맥의 기운이 태백산과 소백산에 이르러 산천의 기운이 뭉쳐 계룡산으로 들어가니 정씨의 팔백년 도읍할 땅이다.
  원맥이 가야산으로 들어가니 조씨의 천년 도읍할 땅이다.
  전주는 범씨의 육백년 도읍할 땅이요, 송악은 왕씨가 다시 일어나는 땅인데, 그 후는 자세하지 않아서 말하기 곤란하다"

  삼각산 백운대에 앉아 정이 말했다.
  "모년이 지나 모년이 되면 지각이 있는 자는 살고, 지각이 없는 자는 죽으리라"
  "언제 그리 되겠는가?"
  정이 말하기를,
  "네 자손 말년에 궁중 과부가 자기 뜻대로 하고, 임금이 어려 나라 일이 잘못되니 홀몸으로 의지할 데가 없고, 집집마다 인삼이요, 마을마다 물방아요, 집집마다 급제요, 사람마다 진사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안 후에 어진 사람 나타나 폄론할 것이다.
  선비가 관을 비스듬히 비껴 쓰고 신인이 옷을 벗고 주자 변에 기를 빗기고 성인의 이름자에 팔을 덧붙이면(壬申起兵을 말하는 것이라 하기도 한다), 계룡산 돌이 희게 변하고, 청포의 대나무가 희게 되고, 초포에 조수가 들어와 배가 다니고, 누런 안개와 검은 구름이 사흘동안 움직이지 않고, 혜성이 진성 머리에서 나타나 은하 사이로 들어가 자미를 범하고 두미로 옮겨 두성에 이르러 남두에서 멈추면 대중화, 소중화가 한꺼번에 망하리라"
  심이 말하기를,
  "삼각산을 규봉으로, 백악을 주산으로 삼고, 한강을 요대로 삼고, 계락산을 청룡, 안현산을 백호, 관악산을 안산으로, 목멱산을 남산으로 삼게 될 것이다"
  정이 말하기를,
  "사방 도둑들이 들어와 노략질하나 반드시 다시 중흥할 것이고, 관악산을 안산으로 삼으니 왕궁에 세 차례 불이나 단청 집을 불태우고, 위는 근심하고 아래는 어지러우니 아전이 태수를 죽이고, 삼강과 오상은 영영 사라지리라"
  심이 말하기를,
  "세 사람이 마주했으니 못할 말이 어디 있겠는가.
  신년(申年) 봄 3월 성세 가을 8월에 인부사이에 밤중에 배 1천 척이 정박하고, 안죽사이에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여광 사이에 인적이 영영 끊어지고, 수당 사이에 피가 흘러 냇물을 이루고, 한남(한수 남쪽) 백리에 닭, 개의 소리가 없고 인적이 영영 끊어질 것이다"
  "이를 장차 어찌하면 좋겠는가?"
  심이 말하기를,
  "몸을 보전할 땅이 열 군데 있으니,
  첫째는 풍기 예천,
  둘째는 안동 화곡,
  셋째는 개령 용궁,
  넷째는 가야,
  다섯째는 단춘,
  여섯째는 공주 정산 마곡,
  일곱째는 진천 목천,
  여덟째는 봉화,
  아홉째는 운봉 두류산으로 이는 길이 살수 있는 땅으로서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연달아 날 곳이고,
  열째는 태백이다"
  심이 또 말하기를,
  "곡식의 종자는 삼풍에서 구하고, 인종은 양백에서 구할 것이다. 이 열 곳은 병화는 물론 흉년이 들지 않고, 흰 옷 입은 도둑을 만나면 혼인하고, 형제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지내리라. 영가 사이에 화기가 성하다 했는데 영가가 바로 이 산이다. 금강산 서쪽 오대산 북쪽은 12년 간 도둑의 소굴이 되고, 9년 간의 수해와 12년 간의 병화가 있을 것이니 어느 누가 그것을 피할 수 있으리요. 그러나 십승지지에 들어간 사람은 살 수 있으리라"
  정이 말했다.
  "날이 저물었으니 서쪽으로 돌아가자. 이야기가 길었다"
  그리하여 서쪽 암자로 돌아가니 청아한 풍경 소리가 흰 구름 사이에서 들려오고, 떨어지는 폭포소리 귓가를 맴돌고, 운해 낀 골짜기는 천태만상이었다.  

  다음 날 세 사람은 다시 금강산으로부터 가야산에 이르렀다.
  정이 말하기를,
  "후세에 만약 지각있는 사람이 먼저 십승지지에 들어가면 가난한 자는 살고, 부자는 죽으리라"
  연이 묻기를,
  "어찌하여 그러한가?"
  정이 말했다.
  "부자는 많은 돈과 재물이 있으므로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고, 가난한 자는 일정한 생업이 없으니 빈천하게야 어디간들 살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국을 보아 행하리라"
  심이 말하기를,    
  "양서(황해도와 평안도를 말함)는 3년 간 천리안에 사람의 흔적이 없을 것이요, 또한 동쪽의 협곡은 심히 꺼릴 땅이다"
  정이 말했다.
  "어느 산 어느 물의 기세가 이러하니 천년 뒤의 일을 상세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심이 말하기를,
  "전주에서 도둑이 일어나 호중의 진, 화 사이로 배 1만 척이 강을 가로지르리니 이것이 큰 근심 중의 하나이다"
  정이 말했다.
  "이것은 작은 근심이다. 만약 말세가 되면 아전이 태수를 죽이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고, 상하의 구분이 없어지고,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변고가 연달아 일어나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임금은 어리고 나라는 위기를 맞으니 대대로 벼슬한 신하는 죽을 수밖에 없다"
  정이 다시 말하기를,
  "내가 말세에 있을 재앙에 대하여 더 상세히 말해 보겠다.
  9년 동안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나무껍질로 연명하고 4년 동안 전염병이 돌아 사람이 반으로 줄고, 사대부의 집은 인삼 때문에 망하고 벼슬아치의 집은 이익을 탐하는 것 때문에 망하리라"
  연이 말하기를,
  "후세의 어리석은 자의 눈에는 용문산이 몸을 숨길 만한 곳으로 보이지만 산수법을 잘못 보면 생기가 있다 할 수 있으나 용문산은 한양에 그 기를 빼앗겼으므로 산 가운데 기세가 다 죽은 혈이다. 따라서 만일 후세 사람들이 이 산에서 살면 오대산 북쪽의 도둑들이 수소문해 알아낼 것이니, 채 일년이 안되어 1만 생명이 재가 되리라"
  정이 말하기를,
  "산수의 형상이 이토록 괴상하고 패역하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심이 말하기를,
  "만일 후세 사람들이 지각이 있어 십승지에 들어가려 해도 필시 어리석은 자들이 만류할 것이니 공사 대소는 물론 그 화복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이 말했다.
  "계룡산의 돌이 흰 빛이 되고, 모래펄 30리에 남문을 다시 세우고, 내 자손 말년에 쥐 얼굴에 범의 눈을 가진 자가 생기고, 큰 흉년이 들고 호랑이의 우환으로 사람이 다치고 생선과 소금이 지극히 흔하고, 냇물이 마르고 산이 무너지면 백두산 북쪽에서 호마가 길게 울고, 양서 사이의 하늘에 원한 맺힌 피가 넘치리니 한양 남쪽 백리에 어찌 사람이 살 수 있겠는가?"
  연이 말하기를,
  "목멱산은 그 형상이 아이 낳는 여자의 음부와 같으니 사대부가 허물을 더하면 온 나라가 무력해질 것이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정이 말하기를,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음란한 풍속은 막을 것이나 황씨는 후사가 없으리라"
  심이 말했다.
  "계룡산에 나라를 세우면 변씨 성을 가진 정승, 배씨 성을 가진 장수가 개국 일등 공신이 되고, 방성, 우가가 손발같이 일하리라.
  태백, 소백 사이에 옛날 양반들이 다시 일어날 것이니 후세 사람으로서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자손을 태백, 소백 사이에 길이 감추어 두리라"
  정이 말하기를,
  "대개 인간 세상에서 피신하려면 산도 불리하고, 물도 불리하고 양궁이 가장 좋다. 네 자손 말기에 국운이 팔임에 다하고 박의 난리가 있고, 내 자손에서 끝나리라"
  심이 말했다.
  "내 자손이 네 자손을 죽이고 네 자손이 내 자손을 죽이리라"
  연이 말하기를,
  "십승지는 사람이 세상에서 피신하기에 가장 좋은 땅이다. 그러나 새재 앞 뒤의 대로는 어찌할까?"
  정이 말했다.
  "새재에 성을 쌓으면 대군이 바다에 떠서 배로 남쪽 전주에 들어가고, 호중의 도둑 백성들이 당을 이루면 화진과 양서의 백성들이 죽음을 당하리라. 그런 까닭에 이 열 곳은 병화가 들지 않고 흉년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 이곳을 버리고 어디 가서 살겠는가.
  장씨가 의병을 일으켜 난을 시작하는 것이 경염의 때이니 지각이 있는 자는 이때 십승지로 가라. 그러나 먼저 들어가는 자는 되돌아 나오고, 중간에 들어가는 자는 살고, 나중에 들어가는 자는 죽으리라"
  연이 말하기를,
  "이 열 곳은 비록 12년 병화가 있어도 해를 입지 않지만, 6도의 백성은 죽으리라. 이 열 곳은 사면이 이러이러하므로 흉년이 들지 않는다. 대개 산수의 법은 기이하여 훗날 지각 있는 자가 비록 걸식을 하며 이곳에 들어가더라도 좋을 것이다. 신년 말과 임년 3월을 무사히 지내면 비록 향양에 일이 있다해도 요행히 편안하리라"
  연이 다시 말했다.
  "계룡산 남쪽 네 고을 또한 백성들이 몸을 보존할 곳이다"
  정이 말하기를,
  "여기는 경기도보다는 조금 낫다. 그러나 강원도 산골은 그 허다한 일을 어찌 다 기록하리요.
  첫째는 풍기 차암 금계촌으로 소백산 두 물골 사이에 있다.
  둘째는 화산 소령 고기로 청양현에 있는데, 봉화 동쪽 마을로 넘어 들어간다.
  셋째는 보은 속리산 사증항 부근으로 난리를 만나 몸을 숨기면 만에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넷째는 운봉 행촌이다.
  다섯째는 예천 금당실로 이 땅은 난의 해가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 임금의 어가가 닥치면 그렇지 않다.
  여섯째는 공주 계룡산으로 유구 마곡의 두 물골의 둘레가 2백리나 되므로 난을 피할 수 있다.
  일곱째는 영월 정 동쪽 상류로, 난을 피해 종적을 감출 만하다. 그러나 수염 없는 자가 먼저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
  여덟째는 무주 무봉산 북쪽 동방 상동으로 피난 못할 곳이 없다.
  아홉째는 부안 호암 아래가 가장 기이하다.
  열째는 합천 가야산 만수봉으로 그 둘레가 2백리나 되어 영원히 몸을 보전할 수 있고, 동북쪽 정선현 상원산 계룡봉 역시 난을 피할 만하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 앞에서 심(이심이라고도 한다)은 십승지지를, 첫째는 풍기 예천, 둘째는 안동 화곡, 셋째는 개령 용궁, 넷째는 가야, 다섯째는 단춘, 여섯째는 공주 정산 마곡, 일곱째는 진천 목천, 여덟째는 봉화, 아홉째는 운봉 두류산으로 이는 길이 살수 있는 땅으로서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연달아 날 곳이고, 열째는 태백이라고 했었는데, 위 정감이 말하고 있는 십승지지와 비교해보면  정과 심은 십승지지를 보는 시각이 비슷하기는 하나 위치가 조금 다름을 알 수 있다.  

  
  위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지기에는 성하고 쇠함이 있어, 이에 따라 왕조가 흥기하고 소멸한다는 것으로서 곤륜산으로부터 뻗어온 태백산맥의 지기는 평양 천년 → 송악 오백년 → 한양 → 계룡산 팔백년 → 가야산 천년 → 전주 육백년 → 다시 송악으로 흐르는데, 이 지기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왕조가 선다는 것과, 말세에 이르면 환란이 있을 것인데, 그 때 살아남을 수 있는 열 군데 땅 즉 십승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 말기 사람들은 정감록 속의 평양을 한반도 북한 평양으로, 송악을 개성으로, 한양을 조선의 도읍이었던 지금의 서울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했고, 조선이 곧 멸망하고 계룡산에 팔백년 왕조가 새롭게 건국되어 살기 좋은 태평성세가 되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일부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과 반란을 도모한 사람들은 이 정감록을 적절히 이용하여 머지 않아 조선이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질 것인데, 자신이 바로 새로운 나라를 세워 왕이 될 사람이라고 사람들을 꼬드기기도 했고, 지금도 일부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는 여전히 정감록을 활용해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감결이 쓰여진 때를 고려 초 쯤으로 본다면 이때 고려는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감결이 쓰여진 곳은 한반도 개성이 아니라 북경 동쪽 지금 난하 부근의 대륙이었다.  

 

 ☆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위치가 등주, 내주, 빈주, 체주와 마주보는 곳에 위치했다고 했고, 당시 송나라 사신들은 절강성 영파에서 고려를 가는데 바다의 깊이가 낮은 황하구를 지나느라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왜 그들은 고려를 가면서 황하구를 지나야 했으며, 등주, 내주, 빈주, 체주와 동시에 마주볼 수 있는 곳은 한반도 개성이 아니라 만리장성이 시작된 산해관 부근이다.

  

   

  그런데 감결이 쓰여진 곳이 한반도가 아닌 대륙이었다면 지기쇠왕설에 의한 왕조의 흥망에 관한 기록이 그곳으로부터 수천리 떨어져 있는 한반도를 말할 리 없고, 십승지지 역시 한반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륙에 위치하고 있는 열 군데 땅을 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감결의 기록에 나타나고 있는 십승지지를 한반도에 비정해보면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에만 위치하게 되고 경기도 북쪽에는 십승지지가 한군데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고려시대 때의 전라도와 양광도(충청도)는 대륙의 난하 하류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경기, 교주도란 고려의 도읍 개경이었던 하북성 관성 부근과 그 동북쪽 능원, 영성 부근을 말하는 것이며, 경상도란 요녕성 호로도시, 금주시(錦州市) 일원을 말하는 것이고, 강릉도(강원도)는 내몽골 고륜기 일원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명도 조선시대와 거의 흡사했다.
  그렇다면 감결에서 말하는 지기쇠왕설에 의한 도읍지와 십승지지는 한반도에서 찾을 일이 아니라 대륙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앞글들에서 필자가 새롭게 찾아낸 옛 고조선의 도읍 왕검성이었으며,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평양성은 한반도의 평양이 아니라 중국 하북성 승덕시(피서산장) 부근이었고, 백제의 한성은 진황도 도산(都山) 남쪽 부근이었으며, 신라의 도읍 서라벌 금성은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이었다. 그리고 가야는 호로도시 흥성 부근에 위치했고, 고려의 도읍 개경은 하북성 관성현으로 비정된다. 

   그렇다면 감결 중 지기쇠왕설에 의한 왕조의 흥망에 관한 기록을 우리 역사에 대입시켜 보면, 옛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고려, 조선 등의 흥망에 관한 내용으로서 지금 난하 부근에서 발생했던 일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계룡산에 세워질 팔백년왕국이란 한민족이 잃어버린 대륙의 우리 옛 땅을 다시 찾아 살기 좋은 새나라가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감결(정감록 또는 정감록비결이라고도 한다)에 기록되어 있는 난세에도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는 십승지지를 한반도에서 찾고 있다.

 

  풍기 차암 금계촌을

인삼으로 유명한 경북 풍기 부근에서 찾으려 하고, 그곳에 금계포란형의 명당이 있다는 소문을 사실로 믿고 풍수가들 사이에서는 그 명당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고,
 

화산 소령 고기를

경북 안동 춘양면 부근에서 찾고 있으며,
 

보은 속리산 사증항을

충북 보은의 속리산 아래라 하고,
 

운봉 행촌을

지리산 자락인 전북 남원의 운봉에서 찾고 있으며,
 

예천 금당실을

경북 예천 금당동 북쪽이라 하며,
 

공주 계룡산의 유구 마곡을

충남 공주 마곡사 부근이라 하며,
 

영월 정동쪽 상류를

강원도 영월의 동쪽 상류인 어라연 계곡을 말하는 것이라 하기도 하며,
 

무주 무봉산 북쪽 동방 상동을

전북 무주군 무풍면의 북쪽이라 하기도 하고,

 

부안 호암 아래를

전북 부안의 호암 부사의방 아래와 변산의 동쪽 사이라 하며,

 

  합천 가야산 만수봉을

합천 해인사가 있는 경남 합천 가야산 남쪽 만수동이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감록에서 말하는 십승지지를 한반도에서 그 위치를 찾아보면, 난세에 살아남기는커녕 굶어죽기 딱 십상인 심심 산골에 해당되는데, 정감록에 현혹된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면 난세에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특히 조선말기의 혼란한 시절에 이 정감록을 굳게 믿은 사람들은 조선 말기를 난세로 보아 조선이 곧 멸망하고 새로운 8백년 왕국이 계룡산에 세워진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자 약삭빠른 일부는 정감록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자신이 십승지지를 알고 있고, 새 시대를 열 정도령이니 가산을 정리해 자신을 따라 그곳으로 들어가야 난세에 살아 남을 수 있다고 현혹해 재물을 수탈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는 종교를 빙자해 도래하는 새 왕국 건설에 동참하면 장관자리를 준다는 둥 후일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준다고 현혹해 우매한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지금도 집 팔고 땅 팔아 정감록 사기꾼들에게 가져다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하니 한심스러운 일이다.

  정감록은 대륙의 비결서이지 한반도에 대한 예언서가 아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십승지지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정감록이니 십승지지니 정도령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는 사기꾼일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감록 비결이라는 것이 비록 허무맹랑한 것이고, 사람들이 악용하기도 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역할도 있었다고 보여 진다.
  조선 말기 수탈만 당하다가 고단하게 살다 비참하게 죽어가야 했을 일반 백성들에게는 어쩌면 정감록이 한 가닥 희망의 불빛과도 같은 역할을 했을 지도 모른다. 
  당시 탐관오리의 수탈 때문에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을 조선 말기의 일반 민초들은 마음 속으로 이 놈의 조선이 망하고 정감록이 말하는 새 세상이 빨리 오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지금도 종교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미륵불을 기다리는 것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정감록에서 말하는 새 시대를 기다리던 것과 같이 모두 현재의 삶이 고달프고 혼란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계룡산에 팔백년 왕국은 세워질리 없고, 십승지지 역시 한반도에는 없다.
  한반도에는 마음 속으로 그려보는 이상향으로서의 십승지지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정감록의 기록이 진실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고, 난세에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자기만은 기어코 살아 남아 보겠다고 십승지지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그러한 사람의 눈에 어찌 십승지지가 보이리요.
  우리 모두가 가난한 이웃과 불쌍한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고 더불어 사는 그곳이 바로 새 세상이고, 십승지지이며, 만세를 사는 비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