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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려는 천리장성을 한반도에 쌓지 않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07. 11. 23. 21:00

윤여동설 - 고려는 천리장성을 한반도에 쌓지 않았다? - 최초주장

    

 

  고려는 9대 덕종 2년인 서기 1033년 8월에 이르러 거란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평장사 유소에게 명하여 천리장성을 쌓게 했는데, 서해 바닷가의 옛 국내성과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의 중간지역으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 위원(威遠), 흥화(興化), 정주(靜州), 영해(寧海), 영덕(寧德), 영삭(寧朔), 운주(雲州), 안수(安水), 청새(淸塞), 평로(平虜), 영원(盈遠), 정융(定戎), 맹주(孟州), 삭주(朔州) 등 13주를 거치고 요덕(耀德), 정변(靜邊), 화주(和州) 등 3성에 대어 동쪽으로 바다에 닿으니 길이가 1천여 리에 뻗치고, 돌로 성을 쌓았으며, 높이와 두께가 각각 25척(성벽의 높이가 7-8m이고, 성벽의 두께도 7-8m 라는 의미로서 지금의 중국 만리장성과 비슷한 규모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록을 보고 고려가 천리장성을 지금 한반도의 압록강 하구에서부터 동쪽으로 함흥까지 쌓아 동해바다에 닿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고려시대 돌로 쌓은 장성이 북한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 압록강에서부터 함흥에 이르는 장성형태의 대규모 석성은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지리부도 등을 보면, 고려의 천리장성을 설명하면서 압록강에서부터 함흥부근까지 성이 있다는 표시를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으나 실제 그곳에는 돌로 쌓고 성벽의 높이와 두께가 각각 25척(약 7-8m)에 이르며, 천리에 이르는 장성이 없다고 하고, 심지어 장성 형태의 무너진 성터 자체도 없다고 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천리에 이르렀다는 석성이 땅속으로 모두 들어가 버렸을 리 없고, 하늘로 날아갔을 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고려의 천리장성은 압록강에서 함흥까지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고려사의 기록만을 보고 그냥 그렇게 그려 놓았다는 말이 되고, 또 지금까지 그냥 그렇게 적당히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천리장성의 축성 기록을 보면,  

 

[천리장성 축성로]

압→위→흥→정→영→영→영→운→안→청→평→영→정→맹→삭→요→정→화→바
록   원   화   주    해   덕   삭   주    수   새   로   원    융   주   주   덕   변   주   다

 

 

압록강에서 동쪽의 바다까지 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성을 쌓아갔다는 지명들을 한반도 지명에 비정하여 보면 매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장성을 쌓을 때는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볼 수 있듯이 산등성이를 활용하여 쌓되 가능하면 직선에 가깝게 성을 쌓았을 것인데, 기록은 전혀 그렇지를 않은 것이다.
  천리장성이 시작된 곳이 옛 국내성과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의 중간이라고 했으니까 지금의 압록강 하류 삭주 부근에서부터 성을 쌓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고,

 

☆ 우리는 고려사 기록 속의 압록강을 지금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가르고 있는 압록강이라 하고, 국내성을 집안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이는 우리의 착각이고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고려의 개경은 하북성 승덕시 관성현이고, 압록강은 지금의 백하로서  졸본이나 국내성, 환도성 부근을 지나던 강이었다. 
  또한 고구려의 5대왕인 모본왕은 서기 49년에 이미 북평, 어양, 상곡, 태원까지 진출했었는데, 북평, 어양, 상곡은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태원은 지금 산서성의 성도이며, 요수는 압록강의 서쪽에 위치했던 강으로서 요수를 건너기 바로 전에 요동성이 위치하고 있었다.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라는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 부근에 위치했고, 백제는 그 서쪽인 하북성 난하 중, 하류부근을 차지하고 있었다.   최소한 서쪽으로는 지금의 하북성 보정 부근까지가 우리의 옛 땅이었다는 말이고, 북쪽으로는 바이칼 부근까지가 우리의 옛 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구려, 백제, 신라 땅을 이어받은 고려는 당연히 한반도가 아닌 대륙이 중심이었고 또한 도읍 개경이 하북성 승덕시 관성현이었으므로 고려가 천리장성을 한반도에 쌓았을 리는 없는 것이다. 
    
       
  다음에 위원을 지났다고 했는데, 위원은 지금 삭주에서 동북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압록강가의 도시이다.
  그렇다면 성을 동쪽으로 쌓은 것이 아니라 압록강 하류에서 중류로 압록강을 따라 동북쪽으로 쌓아 갔다는 말이 되는데,
  그 다음에는 흥화를 지났고, 정주를 거쳤다고 했다.
  정주(靜州)가 지금의 평안북도 정주(定州)를 말한다면, 정주는 지금 평안북도와 남도의 경계쯤에 위치하고 있으니 천리장성은 위원에서 다시 서남쪽의 정주까지 쌓았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또 다시 영해, 영덕, 영삭, 운주를 지났다고 했는데, 운주가 지금의 운산을 말한다면 성은 다시 정주에서 동북쪽의 운주까지 쌓았다는 말이 된다.
  그런 다음 성은 안수, 청새, 평로, 영원, 정융을 거쳐 맹주를 지났다고 했다.
  맹주가 지금의 맹산을 말하는 것이라면 운산에서 동남쪽으로 천리장성을 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맹주를 지나서는 다시 삭주를 지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삭주는 압록강 부근에 위치한 도시이고, 성을 처음 쌓을 때 삭주 부근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맹주까지 쌓고는 다시 되돌아 처음 성을 쌓기 시작한 삭주 방향으로 다시 성을 쌓았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는 요덕, 정변, 화주의 세 성을 연결해 가면서 동쪽으로 바다에 닿았다?
  이게 어디 말이 되는가?
  성을 지그재그로 쌓지를 않나 처음 쌓기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 쌓지를 않나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기록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기록이 왜 이렇듯 이해할 수 없도록 기록되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세밀한 검토를 하지 않았던 듯 싶은데,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고려가 한반도 황해도의 개성을 도읍으로 하고 한반도에 존속했던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는 한반도가 아닌 대륙이 중심 강역이었고, 도읍 개경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관성현이었다.
  거란 역시 고려의 서북쪽으로부터 서쪽에 이르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고려가 거란과 아무 관계도 없는 한반도에 천리장성을 쌓았을 리는 없는 것이다.  
  고려는 나라의 서쪽, 서북쪽으로부터 동북쪽까지 천리장성을 쌓았고, 동쪽 서쪽이 모두 바다에 닿았다고 했다.
  옛 사람들은 내륙의 큰 호수를 큰 물이라는 의미로 "해(海)" 자를 붙였고, 또 큰 강에도 바다 해 자를 붙였다.
  그리고 백제의 온조왕이 비류백제를 통합하고 국경을 다시 확정할 때 서쪽 경계가 대해에 닿았다고 했었는데, 이는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와 진황도시의 경계에 위치한 반가구수고를 말하는 것이었고, 고구려의 홀본(졸본)이나 국내성은 당시 현토군과 요동군의 중간 지역이었던 지금의 북경시 연경현 부근에 위치했었다.  
  또한 필자는 지금 중국 하북성 승덕시 관성현이 고려의 도읍 개경이며 그 서북쪽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 서경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려가 이 시점에 천리장성을 쌓은 목적은 거란과 여진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때 고려는 도읍 개경을 보호하기 위한 성을 서경인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서쪽 또는 북쪽 그리고 동북쪽  부근에 천리장성을 쌓았을 것이다.  
  고려는 이때 북경 부근으로부터 산맥을 따라 성을 쌓았을 것이고, 칠로도산을 가로질러 적봉(赤峰) 부근까지 천리장성을 쌓았을 것이다. 
  지금  칠로도산에 가면 백마관장성, 홍동욕장성이라고 부르는 무너진 장성이 칠로도산을 가로질러 뻗어 있고, 또 적봉 부근에도 진나라 때의 장성 또는 연나라 때의 장성이라고 하는 성들이 있는데, 필자는 그 성들이 바로 고려 천리장성의 흔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곳은 옛 고조선의 강역이었고, 고구려의 강역이었으며, 발해의 강역이었고, 고려의 강역이었다.          
  고려는 서쪽으로부터 서북쪽에 걸쳐 있는 거란과 동북쪽에 위치한 여진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나라의 서쪽으로부터 서북쪽, 북쪽, 동북쪽까지 천리장성을 쌓았고, 고려의 개경은 한반도의 개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관성현이 바로 당시 고려의 도읍 개경이었다.
  따라서 고려는 천리장성을 한반도에 쌓았던 것이 아니라 대륙에 쌓았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머지 않은 때 고려의 천리장성을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