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왕위찬탈로 얼룩진 백제 역사 - 최초주장

윤여동 2009. 2. 11. 00:45

윤여동설 - 왕위찬탈로 얼룩진 백제 역사 - 최초주장

 

 

  백제 초기역사를 세밀히 들여다보면 백제가 왕위찬탈이 참 많았던 나라였고, 자손이 귀하여 간신간신히 왕위를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필자주 : 아래에 백제 전기의 왕위계승도가 그려져 있으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백제의 건국시조 온조왕의 출생 시기는 그 어머니인 소서노의 나이를 따져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3년(B.C.6) 2월 조에, "왕의 어머니가 죽으니 나이가 61세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소서노의 출생년도가 기원전 66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소서노가 18세쯤에 장자인 비류를 낳았다면 비류는 기원전 49년 생이 되고, 소서노가 20세쯤에 둘째인 온조를 낳았다면 온조는 기원전 47년 생이 된다.
  따라서 온조가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른 기원전 18년에 온조왕의 나이는 약 30세쯤 되었을 것이다.

 

☆ 비류의 백제, 온조의 십제가 기원전 18년에 각각 건국되었는데, 백제 비류왕이 죽자 십제의 온조왕이 비류백제를 흡수 통합한 후 국호를 다시 "백제"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온조왕은 왕위에 올라 재위 46년인 서기 28년 2월에 죽었으므로 온조왕은 약 75세 정도에 죽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다 보니 태자였을 아들은 그 아버지 온조왕보다 일찍 죽게 되었고, 온조왕이 죽자 그 손자인 다루왕이 왕위를 잇게 되었을 것이다.

 

☆ 삼국사기에는 다루왕이 온조왕의 장자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손자라고 해야 생몰 연대가 맞는다.

    

  2대 다루왕의 정확한 출생년도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서기 28년에 왕위에 올라 무려 50년 간 재위하고 서기 77년 9월에 죽었다.
  따라서 할아버지인 온조왕과의 연령차이가 약 60년쯤 되었다고 본다면, 다루왕은 왕위에 오를 때 15세쯤 되었을 것이고, 죽을 때의 나이는 65세쯤이었다는 말이 된다.

 

☆ 삼국사기에는 3대 기루왕이 다루왕의 장자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 역시 손자라고 해야 생몰년대가 맞는다.


 

  그런데 또 3대 기루왕은 서기 77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52년인 서기 128년 11월에 죽었다.
  삼국사기 기록대로 기루왕이 다루왕의 장자라면 다루왕이 65세쯤의 나이로 죽었을 때 그 장자라면 35세쯤은 되었다고 보아야 하는데, 재위기간이 52년이니 기루왕이 87세쯤에 죽었다고 해야한다.
  그러나 기루왕이 다루왕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라면 다루왕이 죽었을 때 약 5세쯤의 나이 어린 손자 기루가 왕위를 물려받아 왕위에 올랐다가 재위 52년인 57세쯤에 죽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대 개루왕은 서기 128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39년인 서기 166년에 죽었다.
  따라서 그는 27세쯤 왕위에 올라 66세쯤에 죽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그는 삼국사기 기록대로 3대 기루왕의 아들이 맞을 것이고,

 

  5대 초고왕은 서기 166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49년인 서기 214년 10월에 죽었다.
  기록대로 초고왕이 개루왕의 아들이라면 초고왕은 36세쯤에 왕위에 올라 85세 정도까지 살았을 것이다.

 

  6대 구수왕은 서기 214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21년인 서기 234년에 죽었는데, 초고왕의 장자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기록이 맞는다면 그는 55세쯤의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76세쯤에 죽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7대 사반왕에 대하여, 삼국사기는 "구수왕이 재위 21년에 죽고 장자인 사반이 왕위를 이었으나 나이가 어려 여러 정사를 처리할 수 없었으므로 초고왕의 동복동생인 고이가 왕위를 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매우 의아하다.
  사반왕이 나이가 어려 정사를 처리할 수 없을 정도였다면 10세 정도의 어린 아이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구수왕이 66세 정도에 아들인 사반을 낳았다고 해야 기록에 일관성이 있게 된다.
  물론 구수왕이 아들을 쭉 낳지 못하다가 늦게 후궁을 얻어 그 몸에서 늦둥이를 얻었다고 본다면야 논란의 여지가 없겠지만 연령차이로 보면 사반왕이 구수왕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였다고 역사를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반왕은 10세 정도의 어린 나이에 그 할아버지인 구수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고이왕이 그 왕위를 찬탈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8대 고이왕은 서기 234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53년인 서기 286년에 죽었는데, 삼국사기는 고이왕을 초고왕의 동복동생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초고왕은 서기 214년에 85세 정도의 나이에 죽었다. 그런데 초고왕과 고이왕이 동복형제였다면 초고왕이 죽었을 때 그 동생인 고이 역시 80세는 되었을 것이고, 왕위에 오른 234년에 100세 정도 되었다는 말이 되는데, 또 재위 기간이 53년이니 고이왕은 153세까지 살았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고이왕은 초고왕의 동복동생이 아니라, 초고왕의 동복동생(이름은 구태이다)의 손자쯤이라고 해야 앞뒤가 맞는다.
  따라서 고이왕과 사반왕의 관계는 7촌 재당숙부와 조카사이로서 고이왕이 조카인 사반왕의 왕위를 찬탈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필자가 고이왕을 백제판 수양대군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9대 책계왕은 286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13년인 298년에 죽었고, 고이왕의 아들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그 아버지인 고이왕이 적어도 80세 정도까지는 살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아들인 책계왕은 50세 정도에 왕위에 올라 63세 정도에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10대 분서왕은 서기 298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7년인 304년에 낙랑이 보낸 자객에게 시해 당하고 죽고 마는데, 11대 비류왕 조를 보면, 분서왕의 아들들이 여럿 있었으나 모두 어려서 왕으로 세울 수 없어 비류왕이 왕위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고, 분서왕은 약 40세 정도에 죽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그 아들은 10여세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11대 비류왕은 분서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서기 304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41년인 344년 10월에 죽었다.
  그런데 그는 분서왕의 아들이 아니라 구수왕의 둘째 아들이라 기록되어 있어 왕통이 바뀌고 있다.
  구수왕은 서기 234년에 76세정도의 나이에 죽었으므로 비류왕이 구수왕의 둘째 아들이었다면, 구수왕이 죽었을 때 비류의 나이는 적어도 40세는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무려 70년 후인 110세 정도에 왕위에 올랐다는 말이 되니 비류왕은 구수왕의 둘째 아들일 수 없고, 구수왕의 둘째 손자였을 것이다.
  즉 비류왕은 앞서 234년에 고이왕에게 왕위를 찬탈 당했던 사반왕의 동생의 아들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반왕의 동생은 그 형인 사반왕이 고이왕에게 왕위를 찬탈 당했던 서기 234년에 약 5세쯤의 어린애였을 것인데, 사반왕이 왕위를 찬탈 당할 때 죽지 않고 간신히 살아 남았으나 왕실에서 쫓겨나 평민처럼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삼국사기가 비류왕에 대하여, "오랫동안 평민으로 살면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비류왕의 아버지가 왕실에서 쫓겨나 살게 되어 그 아들인 비류왕 역시 평민처럼 살다가 왕위에 올랐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류왕은 분서왕과 비슷한 나이인 40세쯤에 왕위에 올라 서기 344년에 약 80세 정도의 나이로 죽었을 것이다.

 

  12대 계왕은 서기 344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3년인 346년에 죽었는데, 그는 비류왕의 아들이 아니라 분서왕의 장자였다. 왕위 계승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계왕은 그 아버지인 분서왕이 죽었을 때 10세쯤이었을 것인데, 비류왕이 41년 간 재위했으니 계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50세쯤 되었을 것인데, 겨우 재위 3년에 죽고  그 왕위는 계왕의 아들이 아닌 비류왕의 아들 근초고왕으로 이어지게 된다.

 

  13대 근초고왕은 346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30년인 서기 375년 11월에 죽는다.
  근초고왕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라 기록되고 있으므로 백제의 왕위 계승이 또 한번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가 왕위에 오를 때 약 45-50세쯤 되었을 것이고, 75-80세쯤의 나이로 죽었을 것이다.

[백제 초기의 왕위 계승도]                     
                     시조 온조왕
                            ↓
                            ?(실명) : 온조왕의 아들
                            ↓
                      2대 다루왕
                            ↓
                            ?(실명) : 다루왕의 아들
                            ↓
                      3대 기루왕
                              

                            ?(실명) : 기루왕의 아들

                           
                      4대 개루왕
                             ...........................................
                            ↓                                        ↓ 
                      5대 초고왕                                구태
                            ↓                                        ↓
                      6대 구수왕                                 ?(실명) : 아들
                            ↓                                        ↓
                            ?(실명) : 아들                8대 고이왕
                             .....................
                            ↓                  ↓                    ↓
                      7대 사반왕      ?(실명)          9대 책계왕
                                                ↓                    ↓
                                     11대 비류왕         10대 분서왕
                                                ↓                    ↓  
                                    13대 근초고왕       12대 계왕

                                                                      ↓

                                                                  무광왕[반도백제 건국시조]

 

위 백제 왕위 계승도를 잘 보면, 백제는 초기에는 손자로 손자로 간신히 왕위계승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고, 고이왕이 사반왕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개루왕의 장자인 초고왕파와 차자인 구태파 사이에 왕위찬탈전을 전개했음을 알 수 있고, 결국 근초고왕이 최종 승리하여 그 후손으로 왕위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 근초고왕 이후의 백제 역사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 "대륙백제와 반도백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