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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발해 5경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09. 5. 10. 23:39

 

윤여동설 - 발해 5경의 위치 - 최초공개

 

 

                                                         [발해 5경을 위 지도와 같이 비정했을 경우 사서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신당서 북적 발해전(新唐書 北狄 渤海傳)에는,
 "(발해의) 국토는 5경 15부 62주이다.
  숙신의 옛 땅으로 상경(上京)을 삼으니, 용천부(龍泉府)이며, 용주(龍州), 호주(湖州), 발주(渤州)의 3개주를 다스린다.
  그 남부를 중경(中京)으로 삼으니, 현덕부(顯德府)이며, 노주(盧州), 현주(顯州), 철주(鐵州), 탕주(湯州), 영주(榮州), 흥주(興州)의 6개주를 다스린다. [필자주 :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중경에서 상경까지 300리 떨어졌다고 했다]
  예, 맥의 옛 땅으로 동경(東京)을 삼으니, 용원부(龍原府)인데, 책성부라고도 한다. 경주(慶州), 염주(鹽州), 목주(穆州), 하주(賀州)의 4개주를 다스린다.
  (동)옥저의 옛 땅으로 남경(南京)을 삼으니, 남해부(南海府)이며, 옥주(沃州), 정주(睛州), 초주(椒州)의 3개주를 다스린다.
  고구려의 옛 땅으로 서경(西京)을 삼으니, 압록부(鴨록府)이며, 신주(神州), 환주(桓州), 풍주(豊州), 정주(正州)의 4개주를 다스린다.

  장령부(長嶺府)는 하주(瑕州), 하주(河州)의 2개주를 다스린다.
  부여의 옛 땅에 둔 부여부(扶餘府)에는 항상 강한 군대를 주둔시켜 거란을 방어하는데, 부주(扶州), 선주(仙州)의 2개주를 다스린다.
  막힐부(  府)는 막주( 州), 고주(高州)의 2개주를 다스린다.
  읍루의 옛 땅에 둔 정리부(定理府)는 정주(定州), 반주(潘州)의 2개주를 다스린다.
  안변부(安邊府)는 안주(安州), 경주(瓊州)의 2개주를 다스린다.
  솔빈의 옛 땅에 둔 솔빈부(率賓府)는 화주(華州), 익주(益州), 건주(建州)의 3개주를 다스린다.
  불녈의 옛 땅에 둔 동평부(東平府)는 이주(伊州), 몽주(蒙州), 타주( 州), 흑주(黑州), 비주(比州)의 5개주를 다스린다.
  철리의 옛 땅에 둔 철리부(鐵利府)는 광주(廣州), 분주(汾州), 포주(蒲州), 해주(海州), 의주(義州), 귀주(歸州)의 6개주를 다스린다.
  월희의 옛 땅에 둔 회원부(懷遠府)는 달주(達州), 월주(越州), 회주(懷州), 기주(紀州), 부주(富州), 미주(美州), 복주(福州), 사주(邪州), 지주(芝州)의 9개주를 다스린다.
  안원부(安遠府)는 영주(寧州), 미주( 州), 모주(慕州), 상주(常州)의 4개주를 다스린다.
  또 영주( 州), 고주(錮州), 속주(涑州)의 3개주로서 독주주(獨奏州)로 삼았다. 속주(涑州)는 그곳이 속말강(涑沫江)과 가까운데, 소위 속말수(粟末水)인 듯 하다.

  용원(동경용원부)의 동남쪽 연해는 일본길이고,
  남해(남경남해부)는 신라길이며
  압록(서경압록부)은 조공길이고,
  장령(장령부)은 영주길이며,
  부여(부여부)는 거란길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기록으로는 전해지고 있는 발해 5경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말갈이 한반도의 두만강 북쪽 연해주를 근거로 살아가던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고구려의 평양성이 북한 평양이며, 신라가 한반도 경주에 도읍하고 있었으며, 고려가 한반도의 개성에 도읍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옛 기록 속의 태백산이 지금의 백두산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발해의 위치는 두만강 북쪽으로 비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록을 보면, 숙신의 옛 땅으로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를 삼았다고 했는데, 실제 숙신은 우리의 역사 상식과 같이 연해주에 위치하고 있었던 나라가 아니라 지금의 대흥안령산맥 동쪽을 중심으로 매우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살았던 유서 깊은 나라였고, 이들은 시대에 따라 숙신, 읍루, 물길, 말갈, 여진으로 달리 불렸다.
 

 

☆ 서경(書經)에는 주 무왕의 아들인 "성왕이 동이를 정벌하자 숙신이 와서 하례했다(成王旣伐東夷 肅愼來賀)" 라고 기록되어 있어 숙신이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숙신은 후대에 읍루, 물길, 말갈, 여진 등으로 불리워졌다.

 

  그렇다면 발해의 상경은 두만강 부근이 아니라 대흥안령산맥 부근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상경의 남부를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라 했다고 하는데,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발해의 건국지에 대하여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고구려에 부용되어 있었으며, 성은 대씨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무리를 이끌고 읍루의 동모산을 차지하였다. 그 땅이 영주에서 동쪽으로 2천리에 있으며, 남쪽은 신라와 닿아 니하(泥河)를 국경으로 삼았고, 동쪽은 바다에 닿았으며, 서쪽은 거란까지이다. 성곽을 쌓고 사니 고구려의 패잔병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만세통천(A.D.696) 중에 거란의 이진충이 영주도독 조홰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사리 걸걸중상이라는 자가 말갈 추장 걸사비우 및 고구려의 남은 무리와 함께 동쪽으로 달아나 요수를 건너 태백산 동북쪽을 거점으로 하여 오루하와의 사이에 성벽을 쌓아 수비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동모산의 위치를 추정해 볼 수 있게 하는데, 신당서에는 또 "천보 말년에 흠무(문왕)가 도읍을 상경으로 옮기니 옛 도읍(중경현덕부)에서 (동북쪽으로) 3백리 떨어진 홀한하의 동쪽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중경현덕부와 상경용천부가 약 3백여 리 떨어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예, 맥의 옛 땅으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를 삼았다고 했는데, 예, 맥은 한반도의 강원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몽골 고륜기, 능원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이 동경의 동남쪽 연해가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는데, 고대의 일본은 지금의 요동반도 부근에 위치했었다.  
  그리고 옥저(동옥저)의 옛 땅으로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를 삼았다고 했는데, 이는 동옥저를 말하는 것으로서 동옥저는 지금의 옹우특기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고구려의 옛 땅으로 서경압록부(西京鴨綠府)를 삼았다고 했는데, 고구려의 중심이었던 평양성은 한반도의 평양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었고, 국내성은 북경시 연경현 영녕진을 말하는 것인데, 발해의 서경압록부는 옛 압록강이었던 지금의 밀운수고 부근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의 북경 동북쪽 무령산 북쪽 부근으로 비정해 볼 수 있다.    

 

☆ 신라는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에서 건국되어 그곳에서 멸망했다.
  따라서 한반도 경주가 아닌 요녕성 금주시 부근에서 신라의 천년 도읍 금성(金城)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금주시(錦州市)를 신라의 서라벌로 비정해 볼 수 있다.

  이 때 하북성 당산, 진황도, 호로도 일원의 통일신라와 그 북쪽의 발해는 니하(지금의 대릉하 부근)를 국경으로 했으며, 남과 북으로 위치해 있어, 이 시기를 남북국시대라고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발해의 중경현덕부는 지금의 내몽골 파림우기(巴林右旗) 부근으로 비정되고,

상경용천부는 중경에서 북쪽으로 300리쯤 떨어진 내몽골  파림좌기(巴林左旗))부근으로 비정해 볼 수 있으며,

서경압록부는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密雲水庫), 무령산(霧靈山) 부근,

남경남해부는 내몽골 적봉(赤峰), 옹우특기(翁牛特旗) 부근,

동경용원부는 내몽골 고륜기(庫倫旗) 부근으로 비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동경용원부가 통요(通遼)부근일 수도 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