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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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선덕여왕이 죽어 묻힌 진짜 능 도리천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09. 12. 20. 19:47

윤여동설 - 선덕여왕이 죽어 묻힌 진짜 능 도리천의 위치 - 최초공개

 

 

  

 

  선덕여왕은 647년 8월에 환갑쯤의 나이로 죽었는데, 여왕은 생전에 자신이 죽을 날을 정확히 예언했고, 바로 그날 죽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신라에서는 시호를 선덕(善德)이라 하고 낭산(狼山) 남쪽에 장사지내게 되는데, 그 능 자리 역시 선덕여왕 자신이 생전에 “도리천(忉利天)”이라 말하며 지정했던 곳으로서 삼국유사 기이 제1 선덕여왕 지기삼사 조에 그 내막이 기록되어 전한다.

  “왕이 아무 병이 없을 때에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忉利天)에 장사지내도록 하라’ 여러 신하들이 그곳이 어느 곳인지를 알지 못해서 물으니 왕이 말하기를 ‘낭산의 남쪽이니라’ 했다.

  그 날이 이르니 과연 왕이 죽었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낭산 양지쪽에 장사지냈다.

  10여년이 지난 뒤 문무대왕이 왕의 능 아래에 사천왕사를 세웠는데, 불경에 말하기를 ‘사천왕천(四天王天) 위에 도리천이 있다’ 고 했으니 그제야 대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 수가 있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를 알 수 있다.

 

☆ 27대 선덕여왕이 647년에 죽고 28대 진덕여왕이 재위 8년, 29대 태종무열왕이 재위 8년이었고, 그 뒤를 이어 30대 문무왕이 왕위에 올랐고, 사천왕사는 문무왕 재위 19년인 679년 8월에 낙성되었으므로 선덕여왕이 죽은 후 32년 후에 준공된 것이다. 따라서 본문 중 선덕여왕이 죽고 10여년 후에 선덕여왕의 능 아래에 사천왕사를 세웠다는 것은 아마 사천왕사를 짓기 시작한 해일 가능성이 있겠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사천왕사를 짓는데, 무려 22년이나 걸렸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지금 선덕여왕의 능이 한반도의 경주 낭산(狼山)에 조성된 것이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로 믿고 있으나, 그것은 우리의 엄청난 착각일 뿐 선덕여왕은 한반도 경주에 묻히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경주의 선덕여왕릉이라고 하는 곳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전혀 다른 사람의 무덤이다.

  필자의 말이 믿기지 않거든 파 보라.

  아무리 눈 비비고 찾아보아도 그 무덤에서는 선덕여왕과 관련되는 어떠한유물도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선덕여왕이 죽어 묻힌 진짜 낭산(狼山 : 이리산)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곳과는  매우 다른 곳으로서 산의 형태가 여우와 비슷한 동물인 이리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삼국유사에서 여왕이 죽은 뒤 문무왕이 사천왕사를 짓게 되어 그 때에 이르러서야 신하들이 선덕여왕이 왜 능이 조성된 그곳을 “도리천”이라고 했었는지 알았다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선덕여왕릉이라고 믿고 있는 한반도 경주의 흉노족왕국의 왕릉]

 

 

                                한반도 경주의 가짜 낭산 (위)

 

 

 

                                      한반도 경주의 가짜 사천왕사지(위) 

 

 

                                한반도 경주에 있다고 하는 가짜 선덕여왕릉 위치(위. 중간)

 

  중국학자들은 지금 모든 것을 파악하여 알고 있으나 숨기고, 발표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 너희들 잘한다. 너희들은 한반도가 고조선, 삼한, 삼국, 고려시대의 중심 강역으로 알고 계속 그렇게 믿고 살아라. 그런 사이에 우리는 동북공정, 탐원공정을 완성할란다” 하면서 말입니다.

  중국도 우리 고대역사의 진실을 이미 확인해 놓고 있고, 일본도 우리 고대역사의 진실을 알고도 천황 때문에 말 못하고 있을 뿐인데, 멍청하게도 그 역사의 주인공인 한국만 역사의 진실을 알지 못하고, 한반도가 고조선 때부터 우리 역사의 중심이라 여기고 있으니 매우 답답합니다. 

  그리고는 역사의 중심이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이라고 사실을 말해주는 재야 역사연구자들의 주장을 귀담아 듣지 않고, 매도하기에만 바쁜 것입니다.

  재야 역사연구자들은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오직 우리 상고, 고대 역사의 진실을 밝혀 언젠가는 잃어버린 대륙의 옛 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없는 시간 쪼개고, 침침한 눈 비벼가며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 것인데, 드디어 그들이 주장하는 대륙고조선, 대륙삼한, 대륙삼국, 대륙고려가 실제 대륙에 위치하고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다만 재야 역사연구자 중 일부가 중국대륙 전체가 우리의 옛 땅이었다는 둥, 섬서성 서안이 고구려의 장안성이라는 둥 또는 신라가 양자강 남쪽에 위치했다고 하거나 고려 태조 왕건의 능이 사천성에 있다고 하는 둥 강역의 넓이를 너무 확대해석하거나 사서의 기록들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대륙설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 안타깝기는 합니다. 

  우리 고대 역사의 중심지는 한반도가 아닌 북경 부근의 대륙으로 밝혀졌습니다.

  지금의 북경이 고대의 요동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고대역사의 중심강역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요녕성, 내몽골 부근인 것입니다.

  그곳에 엄연히 우리의 옛 땅이 있었으나 우리가 그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 부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역사의 실체와 그림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한반도라는 그림자 속에서 대륙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찾으려 하고 있었으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이 혼란스럽기만 했던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역사의 5천년 비밀을 차근차근 밝히게 될 것이고, 우리는 대륙에 있는 진짜 왕검성, 진짜 평양성에 가 볼 수 있고, 비류와 온조가 올랐던 진짜 백제의 부아악, 진짜 신라의 서라벌 금성, 진짜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에도 가서 진짜 낙화암과 진짜 부소산 그리고 무왕이 지은 멋진 궁남지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옛 영화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 흔적들은 지금도 남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