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청주 동쪽 60리 청천현에 있다는 진짜 미륵산을 찾았다

윤여동 2010. 1. 8. 22:22

윤여동설 - 청주 동쪽 60리 청천현에 있다는 진짜 미륵산을 찾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청주목 조를 보면,

 “[건치연혁] 본래 백제의 상당현(낭비성이라고도 하고 낭자곡이라고도 하였다)이다.

  신라 신문왕 5년에 처음 서원소경을 두었다가 경덕왕 때에 서원경으로 승격시켰고, 고려 태조 23년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성종 2년에 목을 설치하고 14년에 절도사를 두어 전절군이라 불렀고 중원도에 소속시켰다가 현종 3년에 폐지하고 안무사로 삼았다가 9년에 8목을 설치할 때 다시 목으로 만들었다. 본조(조선)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계속하여 오다가 세종 31년에 관찰사가 목의 일을 겸하여 맡아보게 하다가 곧 폐지하였고 세조 때에는 진을 두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산천] 조를 보면, 미륵산(彌勒山)은 청천현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속현] 조를 보면, “청천현(淸川縣)은 주의 동쪽 60리에 있다. 옛날에는 살매현이었고, 청천이라고도 하였으며, 고려 때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 청주에 소속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결국 청주의 동쪽 60리에 미륵산이 위치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27대 영류왕 12년(A.D.629)를 보면, "가을 8월 신라장군 김유신이 동쪽변경을 침범하여 낭비성을 함락시켰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 26대 진평왕 51년(A.D.629) 조를 보면, “가을 8월 대장군 용춘, 서현과 부장군 유신을 보내 고구려의 낭비성을 침공했다. 고구려 사람들이 성을 나와 진을 벌렸는데 군사들의 기세가 매우 왕성하므로 우리 군사들이 이것을 바라보고 겁이 나서 전의를 상실했다. 유신이 말하기를 ‘나는 깃을 잡고 흔들면 옷이 바로 잡히고, 벼리를 쳐들면 그물이 퍼진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벼리와 깃이 되어 볼까?’ 하고는 즉시 말을 타고 칼을 빼들고 적진을 향해 앞으로 곧바로 돌진했다. 세 번을 적진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데 들어갈 때마다 적장의 목을 베기도 하고 혹은 깃발을 뽑아왔다. 여러 군사들이 승세를 타서 북치고 함성지르며 진격하여 5천여명을 목베어 죽이니 그 성이 드디어 항복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청주의 옛 이름이 상당현, 낭비성(娘臂城), 낭자곡, 서원소경, 서원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고구려가 백제로부터 낭비성(청주)을 빼앗아 차지하고 있다가 629년에 신라에게 빼앗겼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청주 동쪽 60리 청천현에 미륵산(彌勒山)이라는 산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충북 괴산 청천면에도 미륵산이라 불리우는 산이 있고, 미륵산성이라고 이름 붙인 성도 있지만 그 산은 가짜 미륵산인 것이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이 말하는 진짜 미륵산은 아래 사진 속의 산을 말하는 것이다.

 

 

  산의 모양이 위 사진처럼 미륵불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산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이 진짜 미륵산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는 한반도 충북 괴산 청천면에 있는 미륵산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미륵산인 줄로만 알고, 그곳에서 “돌로 쌓았고, 둘레가 5,779자, 성안에 우물이 둘 있었으나 지금은 허물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는 미륵산성(彌勒山城)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그곳에 이름 모를 옛 성터가 있자 그곳을 미륵산성이라 하며 많은 돈을 들여 복원한다고 하고 있고, 삼국사기 낭비성에 관한 기록 역시 한반도 청주에 적용하여 신라 김유신이 고구려로부터 629년에 빼앗은 낭비성이 바로 한반도 충북 청주라고 해석하고 있으니...........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