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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전국시대 연장성과 연5군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 2010. 3. 21. 13:28

윤여동설 - 전국시대 연장성(燕長城)과 연5군(燕五郡)의 위치를 찾았다 - 최초공개

 

 

 

 

    지금까지도 그 위치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전국시대 연5군과 연장성의 위치를 찾아보자. 

  우리가 이 연5군의 위치를 찾으려 애쓰는 것은 바로 그 곳이 옛 고조선 땅으로서 그 위치를 찾으면 고조선의 서쪽 경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연5군(燕五郡)”과 "연장성(燕長城)"은 사기 흉노전에 전국시대 연나라의 진개가 동호를 침공하여 1천여리(필자주 : 위략에는 2천여리라 했다)빼앗은 후 조양(造陽)으로부터 양평(襄平)까지 장성을 쌓고 그 땅에 설치했다는 어양군, 우북평군(북평군), 상곡군, 요서군, 요동군과 장성을 말하는 것이다.

 

  전한서 권28하 지리지 제8하를 보면,

  "상곡군(上谷郡)은 진(秦)나라가 설치했다.(필자 주 : 사실은 진나라 이전의 춘추전국시대 연나라가 최초로 설치했다. 이하 같다) 왕망은 삭조라 했는데 유주에 속했다. 36,008호이고, 인구는 117,762명이다.

  15개 현인데 저양(沮陽: 조양), 천상(泉上), 반(潘), 군도(軍都), 거용(居庸), 구무(구무), 이여(夷輿), 녕(寧), 창평(昌平), 광녕(廣寧), 탁록(涿鹿), 저거(저居), 여(茹), 여기(女祁), 하락(下落)이다.    

 어양군(漁陽郡)은 진(秦)나라가 설치했다. 왕망은 통로라 했는데 유주에 속했다. 68,802호이고, 인구는 264,116명이다.

  12개 현인데 어양(漁陽), 호노(狐奴), 로(路), 옹노(雍奴), 천주(泉州), 평곡(平谷), 안락(安樂), 제해(厗奚), 광평(獷平), 요양(要陽), 백단(白檀), 골염(滑鹽)이다.

  우북평군(右北平郡)은 진(秦)나라가 설치했다. 왕망은 북순(北順)이라 했는데 유주에 속했다. 66,689호이고, 인구는 320,780명이다.

  16개 현인데 평강(平剛), 무종(無終), 석성(石成), 정릉(廷陵), 준미(俊靡), 자(薋), 서무(徐無), 자(字), 토은(土垠), 백랑(白狼), 석양(夕陽), 창성(昌城), 려성(驪成), 광성(廣成), 취양(聚陽), 평명(平明)이다.

 요서군(遼西郡)은 진(秦)나라가 설치했다. 유주에 속했다. 72,654호이고, 인구는 352,325명이다.

  14현인데 차려(且慮), 해양(海陽), 신안평(新安平), 유성(柳城), 영지(令支: 고죽성이 있다), 비여(肥如), 빈종(賓從), 교려(交黎), 양락(陽樂), 호소(狐蘇), 도하(徒河), 문성(文成), 임투(臨渝), 류(?)이다.   

 요동군(遼東郡)은 진(秦)나라가 설치했다. 유주에 속했다. 59,972호이고, 인구는 272,539명이다.

  18현인데 양평(襄平), 신창(新昌), 무려(無慮), 망평(望平), 방(房), 후성(候城), 요대(遼隊), 요양(遼陽), 험독(險瀆), 거취(居就), 고현(高顯), 안시(安市), 무차(武次), 평곽(平郭), 서안평(西安平), 문(文), 번한(番汗), 답씨(沓氏)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그 대강을 알 수 있게 한다. 

  

☆ 사기의 주에는 조양(造陽)은 상곡군에 속하고 상곡군은 한나라 때의 규주(嬀州)라 했고, 양평은 요동에 속했다고 했으니, 결국 전국시대 연나라가 쌓았다고 하는 연장성은 상곡군에서 요동군까지 쌓았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후한서 지제23 군국5 상곡군 조에는, “진나라가 설치했다.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200리에 있다. (속현은) 8성이고, 호수는 10,352호로서 인구는 51,204명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상곡군이 후한의 도읍이었던 낙양의 동북쪽 3200리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게 하고, 속현으로서 “탁록(涿鹿)” “군도(軍都)” 등이 기록되어 있고,

  요동군 조에는, “진나라가 설치했다.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리에 있다. (속현은) 11성이고 호수는 64,158호로서 인구는 81,714명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속현으로서 안시, 평곽, 서안평 등이 있어 우리 역사와 특히 밀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지금 탁록과 군도산 그리고 규수하(嬀水河)가 북경 서북쪽 관청수고 부근에 위치하여 그 부근이 옛 상곡군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고, 지금 중국학자들은 현재의 탁록에서 멀지 않은 장가구시 선화(宣化)를 “고상곡군(古上谷郡)”이라 비정하고 있고, 요수를 지금의 요하라 하나 이는 원래의 연5군 지명이 명, 청대에 이르러 동쪽으로 수천리 교치된 결과로서 명, 청 이전의 사서에 나타나는 지명들은 현재의 위치에서 서쪽으로 수백리 또는 수천리 이동된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옛 사서의 기록과 현재의 지명을 맞추려했으므로 현재의 지형과 옛 기록이 일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후한서 지제23 군국5를 보면, 낙양으로부터 동북쪽으로 상곡군은 3200리, 어양군은 2000리, 우북평군 2300리, 요서군 3300리, 요동군 3600리, 현토군 4000리, 낙랑군 5000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낙양에서 가까운 곳으로부터 어양군 2000리, 우북평군 2300리, 상곡군 3200리, 요서군 3300리, 요동군 3600리 순으로 5군이 설치되었을 것이니 결국 1,600리 사이에 연5군이 설치되었을 것이다.

 

 ☆ 전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했을 때 낙랑군의 치소는 위만조선의 도읍이었던 왕검성(조선현)이었다. 그런데 고구려가 그 낙랑 땅을 빼앗아 차지하고 옛 왕검성(조선현)에 도읍하고 평양성이라고 했는데, 사서들은 평양성이 장안에서 5천여리 떨어져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의 평양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피서산장)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에서 연5군 중 일부 군의 명칭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고구려 5대 모본왕 2년(A.D.49) 조에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했더니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로 대하므로 다시 화친을 했다”라고 하면서 나타나는데, 지금까지 이 기록의 진위여부에 대하여 논란이 많았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요하가 옛 요수라고 인식하고, 고구려가 요하 동쪽에 위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볼 때 이 기록은 말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삼국사기에만 그러한 기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 사람들 스스로 기록한 후한서 구려 조에도 “건무 25년(A.D.49) 봄에 구려(고구려)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침입하여 노략질 하는 것을 요동태수 채용이 은의와 신의로 초유하니 요새 밖으로 철수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실제로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기록은 역사적 사실일 것이므로 고구려가 지금의 요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멀리까지 침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태원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통전 권178 주군8 평주(平州) 조를 보면, “평주는 은나라 때의 고죽국이다. 춘추시대의 산융, 비자 두 나라 땅이다. 전국시대에 연나라에 속했다. 진(秦)나라 때는 우북평(필자주 : 상곡의 오기가 아닐까?)과 요서 두 군의 경계였다. 두 한(전한과 후한)은 그대로 두었고, 진(晉)나라 때는 요서군에 속했다. 후위 역시 요서군에 속하게 했고, 수나라 초에 평주를 설치했는데 양제 초에 주를 폐했다가 다시 북평군(北平郡)을 설치했다. 당나라 때는 그대로 두었고, 영현이 셋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평주가 곧 북평임을 알 수 있는데, 이 평주의 위치에 대하여 논란이 많은데, 필자는 평주를 지금의 방산과 탁주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유리하 부근으로 비정하고 있다.  

 

☆ 지금 중국 사람들은 진황도 노룡에 옛 고죽국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고 그곳을 영평부 라고 하기도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영정하 서남쪽  방산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을 고죽국을 동쪽으로 옮겨 비정하고 있는 것인데, 문제는 우리의 역사학자들조차도 이러한 음흉한 중국 측의 엉터리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곳이 옛 고죽국이었다고 생각하고 논문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진황도 노룡은 옛 고죽국이 아니라 옛날 우리 대륙백제, 대륙신라 땅이었고, 고려 땅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곳이 웅진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주장대로 지금의 북경 서남쪽이 평주이고 북평이라면 모본왕 때 고구려군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즉 지금의 영정하 서쪽 지역으로부터 산서성 태원까지 습격했었다는 말이된다. 

   그런데 전국시대 연나라는 고조선으로부터 그 땅을 빼앗아 5군을 설치하고 장성을 쌓았다고 했으므로 그때 연나라가 쌓은 연장성은 지금의 하북성 역현 부근으로부터 북경 부근까지 쌓았을 것이다.  

  지금 역사학자들은 대개 옛 요수가 지금의 요하라고 하면서 그 강이 중국과 고조선의 국경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해석하고 있고, 이때 전국시대 연나라가 쌓은 연장성이 지금의 요녕성 조양으로부터 요하를 건너 요양까지 쌓았을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주장이다. 

  눈 뻔히 뜨고 광활했던 우리의 역사 강역을 중국에게 들어 바치고 있는 꼴이다.

  우리 고조선의 원래 강역은 지금의 요하까지가 아니라 사실은 훨씬 더 서쪽으로 나아가 북경을 지나 하북성 역현 부근까지였던 것으로 보이고, 진(秦), 한(漢) 이후에는 대체적으로 요수 즉 지금의 양하, 관청수고, 영정하, 해하로 이어지는 선을 중심으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펼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다면, 우리의 고대 역사는 전혀 새로운 각도로 해석이 가능해져 잃어버린 대륙의 역사 강역을 찾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며, 지금까지 그 위치를 잘 알 수 없어 아리송하기만 했던 옛 지명들의 위치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지명이 동쪽으로 수백리 혹은 수천리 옮겨져 우리를 매우 혼란스럽게 했던 현재 지명들의 원래 위치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선뜻 믿겨지지 않거든 필자의 주장에 따라 청 이전 옛 사서의 기록들을 이 지역에 대입시켜 해석해 보기를 권유한다. 

 

  옛날 고조선이 연나라 진개의 침공을 받고 빼앗겼던 연5군 땅 즉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우북평군, 어양군은 원래 우리 고조선 땅이었고, 고구려는 그 후예였으므로 다물(고토회복)정신이 투철했던 고구려는 주몽왕(추모왕) 때부터 옛 고조선 땅을 되찾기 위해 중국 세력들과 끊임없이 다투어야 했고, 백제 역시 근초고왕 때 요서까지 진출하여 그곳에 요서군과 진평군(요서 진평현이라고도 한다)을 설치하기도 하였었다.

  결국 우리 선조들이 중국 세력들과 끝없이 다투었던 것은 바로 이 연5군 지역과 한사군 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것이었고, 중국은 그 땅을 지키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고구려 때 그 땅의 거의 전부를 되찾았었고, 또 후일에 이르러 북부여의 후예로 보이는 요나라(거란)가 후진으로부터 할양 받아 대제국으로 발돋움한 연운 16주가 바로 그 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요나라를 이어 일어난 신라의 후예 금나라 역시 그 땅을 차지했고, 부여의 후예인 원나라는 더 나아가 중국 전체를 차지했고, 다시 금나라의 후예인 청나라가 중국 전체를 차지하고 지배했던 것이다.

  일단 옛 연5군 지역까지를 차지하게 되면 중국 전체를 지배할 가능성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청나라가 멸망하자 그 땅 전부를 한족이라 자처하는(사실 원래의 한족은 그 숫자가 매우 적었다) 지금의 중국이 차지하게 되어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대륙의 옛 땅이 모두 중국의 소유가 되어버렸고, 그 땅에 살던 우리의 동족들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졸지에 중국인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지금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한족이 아님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를 감추고 한족(漢族) 행세를 하며 살고 있고, 우리는 조그만 한반도 만을 차지하고 살고 있으나 머지않은 때에 반드시 민족 재통합의 기회가 오게 될 것이다. 어느 예언자의 말대로 서기 2036년쯤?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족이 통치했던 기간은 별로 없고, 주로 동이족의 지배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한족들은 지금도 동이족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어 어떻게든 지금 차지하고 있는 땅을 고착화 시켜보려고 역사왜곡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지만 역사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쉽게 바꾸어 지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원래의 연5군은 지금의 북경 서남쪽 지역을 말하는 것이므로 연장성도 그 부근에 쌓았을 것이고, 조장성, 진장성 역시 그 부근으로부터 서쪽으로 쌓았을 것이다.

 우리의 옛 땅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넓었음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는 되찾아야할 우리의 옛 땅이 대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