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공주 공산성 출토 황칠갑옷은 백제갑옷 금휴개(金髹鎧)일 가능성이 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11. 10. 28. 21:39

윤여동설 - 공주 공산성 출토 황칠갑옷은 백제갑옷 금휴개일 가능성이 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27년(A.D.626) 조를 보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명광개(明光鎧)라는 갑옷을 바치고 고구려가 길을 막고 상국에 예방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호소하였더니 당 고조가 산기상시 주사서를 보내 조서로써 우리와 고구려 사이의 원한을 풀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당서 백제전에도 “무덕9년(A.D.626) (백제가) 명광개를 바치고 고구려가 조공 길을 막는다고 하소연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때 백제에서 명광개라는 갑옷을 만들어 당나라에 보냈음은 확실하다.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A.D.645) 조의 당 태종 고구려 침공시의 요동성전투 기록을 보면, “이 때에 백제가 금휴개(金髹鎧)를 바치고 또 현금문개(玄金文鎧)를 군사들에게 입혀 종군하였다. 황제가 이세적과 함께 모이니 갑옷이 햇빛에 번쩍거렸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백제가 금빛이 나는 고급 갑옷을 만들어 당나라에 보냈고 당 태종이나 이세적 등이 그 갑옷을 입고 요동성전투에 임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이때 백제가 군사들에게 검은 쇠로 만들고 무늬가 있는 갑옷을 입혀 종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백제에는 명광개라는 갑옷 이외에도 금휴개라는 반짝반짝 금빛이 나는 옷칠을 한 갑옷이 있었고, 또 현금문개라는 검은 쇠로 만들고 무늬가 있는 일반 군사용 갑옷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당 태종이나 당나라 장군들이 백제에서 보낸 갑옷(금휴개)을 입었다는 것을 보면 당시 백제의 갑옷제작 기술이 중국보다 월등히 앞서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얼마전 고대의 황칠갑옷이 충남 공주의 공산성에서 출토되었고, 그 갑옷에 “행정관19년4월21일(行貞觀十九年四月二十一日)”이라고 쓰여져 있었단다.

  정관(貞觀)은 당나라 태종의 연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갑옷이 백제의 명광개이거나 당 정관 19년(A.D.645)이라는 당 태종의 연호가 기록되어 있으므로 당나라에서 만든 당나라 장수의 것이었고 당나라가 백제를 침공했을 때 떨어뜨린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유물이라는 것은 여러 형태로 이동이 가능한데, 물론 전리품으로 습득할 수도 있고, 선물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옛날에도 수집가가 있어 수집을 해 놓은 물건일 수도 있고, 또 그와 같은 물건을 만들기 위한 샘플일 수도 있으며, 거주지를 멀리 옮길 때 가지고 갔을 수도 있다.

  더구나 이번에 출토된 갑옷이라는 것은 전쟁 때 쓰는 물건이기 때문에 그 갑옷의 주인공이 전사하자 어느 사람이 그 갑옷을 전리품으로 벗겨 가지고 왔을지도 모르고, 직접 그 갑옷의 주인공이 무슨 사연이 있어 그 갑옷을 가지고 귀순해 왔거나 또는 그 갑옷 주인공의 후손이 이사하면서 훌륭한 조상이 쓰던 유품이라 하면서 가져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들은 정관 19년 4월 21일이라는 당나라 연호가 쓰여져 있기 때문에 그를 보고 당나라에서 만든 갑옷을 전쟁 때 백제가 습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나 이 정관 19년 4월 21일이라는 것이 갑옷의 제작연월일인지, 습득한 일자인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로 쓰여져 있는지 아직 알 수 없다.

  만약 이 글자가 갑옷의 제작연월일이라면 갑옷의 안쪽에 조그맣게 표시하는 것이 마땅할 것인데, 이 글자는 겉면에 쓰여져 있는 듯 보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갑옷 겉면에 그러한 글자를 쓴다는 것을 필자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품위를 지키고 위엄이 있어야 할 장군이 입는 갑옷의 겉에 “행정관 19년 4월 21일”이라는 글씨를 써 붙이고 다닌다고 생각해보면 우습기 그지없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자는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는 목적으로 쓰여진 글자일 가능성이 많아 보이고, 현재로서는 그 황칠갑옷이 당나라에서 제작된 것인지, 백제에서 제작된 명광개인지, 금휴개(금색옻칠을 한 갑옷)인지도 확실하게 알 수 없고, 그 글씨를 당나라에서 쓴 것인지 백제에서 쓴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필자가 보기에는 백제에서 645년에 제작하여 당나라에 보낸 금휴개 중 백제에 남겨 두었던 샘플갑옷이었을 가능성이 오히려 많아 보인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검토하고 연구한 후 발표해도 늦지 않을 것인데, 무엇이 그리 급하여 당나라장수의 것이라고 섣부르게 단정 지으려고 하는지 그 조급함이란...............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