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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백제 온조왕의 고향을 찾았다 - 최초공개

윤여동 2012. 7. 8. 21:29

윤여동설 - 백제 온조왕의 고향을 찾았다 - 최초공개

 

 

비류와 온조의 진짜 부모는 누구?

 

백제의 건국시조 비류왕과 온조왕의 부모에 대한 옛 기록들은 매우 혼란스럽다.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과 졸본부여 둘째공주 사이에서 출생했다는 설,

주몽과 월군여인 사이에서 출생했다는 설,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와 졸본사람인 연타발의 딸 소서노 사이에서 출생했다는 설,

구태와 공손도 딸의 후예설 등이 있는데,

  필자가 연구해 보니 비류와 온조는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의 작은 아들의 아들 즉 동명왕의 손자인 우태와 소서노 사이에서 출생했다.

즉 비류와 온조는 졸본부여 동명왕의 증손자였던 것이다.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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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장자(2대왕)                                                                       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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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           차녀            삼녀                                                               우태

                (주몽과 혼인)                                                                                           (소서노와 혼인)

                   |                                                                         ..............|..............

주몽이 졸본부여를 없애고 고구려 건국                                     |                            |

                                                                                          비류                        온조

                                                                                                     (백제 건국)

 

  졸본부여의 건국시조 동명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던 듯하다.

  그리하여 동명왕의 장자(부여무서왕이라고도 한다)는 그 아버지 동명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를 이었으나 아들없이 딸만 셋을 낳았던 듯하고, 그 중 둘째공주를 주몽과 혼인시켰고, 왕이 죽자 사위인 주몽이 그 왕위를 이었다.

 

☆ 그런데 주몽은 졸본부여 동명왕이 멸망시킨 북부여의 건국시조 천제 해모수의 고손자(또는 5세손)였으니 주몽은 겉으로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졸본부여에 맺힌 원한이 많았을 것이다. 따라서 졸본부여왕은 주몽의 신분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철천지 원수에게 왕위를 물려준 결과가 되고 말았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었다.

 

  그리고 동명왕의 둘째아들의 아들 즉 동명왕의 손자인 우태의 정확한 출생년도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으나 그가 소서노와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고 하므로 그의 출생년도는 기원전 70-65년경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인데 소서노가 18세쯤 우태와 혼인을 했다면 기원전 49년경이 된다.

  이후 소서노는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낳았고, 남편인 우태는 일찍 죽게 되며, 소서노는 두 아들을 데리고 다시 주몽왕과 재혼을 하게 된다.

 

☆ 주몽은 기원전 79년생이었고, 소서노는 기원전 66년생이었다. 주몽이 소서노보다 13세 위였다.

주몽이 40세의 나이에 죽었다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기록에 따라 소서노가 주몽보다 8세 연상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잘못전해진 것이다. 주몽은 기원전 79년에 태어나 기원전 19년에 죽었으니 61세에 죽은 것이다.

 

  물론 이때 졸본부여 왕족과 혼인했던 소서노가 주몽왕과 다시 재혼을 했던 것은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의 혈손(증손자)인 자신의 아들 비류와 온조를 주몽왕의 뒤를 이어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겠으나, 북부여 해모수의 후예인 주몽왕은 그를 단호히 거부하고 동부여에 있는 그의 친아들인 유리가 오면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했을 것이기 때문에 소서노는 자신의 아들들을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릴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기원전 42년 기묘년에 이르러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졸본을 떠나 한산, 북한산 부근(진번 땅이라고도 한다)으로  이주하게 되는 것이다.

 

 

☆ 이후 주몽은 기원전 37년에 이르러 졸본부여를 없애버리고 북부여의 맥을 잇는 고구려를 건국하게 되고, 기원전 19년 4월에 그의 친아들 유리가 동부여에서 도망쳐 그 어머니 예씨와 함께 주몽왕을 찾아오게 되자 그를 태자로 봉하게 되고, 그해 9월에 주몽왕이 죽자 그 아들 유리가 고구려의 2대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랬다가 기원전 19년 9월에 주몽왕이 죽고 그 왕위를 유리가 이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소서노도 졸본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접고 두 아들로 하여금 한산 부근에 졸본부여의 맥을 잇는 백제와 십제를 세우게 하였다가 비류가 죽자 두 나라를 통합하여 새로운 온조의 백제가 되는 것인데, 이때 소서노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기 때문에 백제의 실질적인 건국자는 소서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류왕과 온조왕의 출생지와 이름의 유래

 

  백제시조 비류왕과 온조왕의 출생지를 정확하게 밝힌 사람은 아직까지 아무도 없다.

  이는 먼저 졸본(홀본)이 어디인가를 알아야 찾을 수 있는 문제인데, 옛날 마자수, 엄호수, 엄리대수, 압록수(압록강)라고 부르던 강이 지금 북경 북쪽을 흐르는 백하(白河), 밀운수고(密雲水庫)로 밝혀졌다.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 조를 보면,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천(위서에는 흘승골성이라고 하였다)에 이르러 그 토양이 비옥하고 산하가 험고함을 보고 도읍을 정하고자 하였으나 미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어 비류수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비류수가 압록강과 만나는 지점 부근이 곧 졸본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졸본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부근으로 비정해 볼 수 있을 것인데, 후성진이라는 지명 자체가 "왕성"이라는 뜻이기 때문이고, 고구려의 마다산이 지금의 대마군산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적성 후성진 부근으로 흘러드는 강은 홍하(紅河)인데, 이 강이 바로  옛 비류수로 비정되는 강이다.

  따라서 비류왕의 이름 "비류(沸流)"는 졸본 서쪽을 흐르는 비류수라는 강 이름을 따서 이름지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온조왕의 이름 온조(溫祚)는 무엇을 보고 지은 이름일까?

     

   지금 졸본으로 비정되는 적성 후성진에서 백하를 타고 내려오면 흑하(黑河)가 백하로 흘러드는데, 이 흑하를 타고 쭉 올라가면 동만구(東万口)라는  곳이 있고  그곳에 온천이 있고, 온천요양원도 있다. 그곳은 공기도 맑고 온천수가 질병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백하를 타고 더 내려오면 탕하구진(湯河口鎭)에 이를 수 있는데, 그곳은 탕하가 백하로 흘러드는 곳이다. 탕하라는 이름은 탕천 즉 온천수가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이다. 

  옛날에는 탕하 부근에 자연적으로 용출하는 온천이 있었을 것이다. 

  온조라는 이름을 꼭 온천수가 흐르는 강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졸본 서쪽에 있는 비류수에서 장자의 이름인 비류를 따 왔다면, 어쩌면 졸본 동쪽에 있었던 온조수(溫祚水)라는 강 이름에서 둘째 아들인 온조의 이름을 따왔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옛 온조수가 지금의 흑하를 말하는지, 탕하를 말하는 지는 알 수 없겠으나 하여튼 졸본 부근의 강 이름에서"온조(溫祚)"라는 이름을 따 왔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결국  비류와 온조는 졸본부여의 왕족으로서 졸본 즉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 부근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졸본 부근을 흐르던 강 이름을 따서 지었고,

   기원전 42년에 어린 나이로 그 어머니 소서노의 손에 이끌려 졸본을 떠나 진번 땅 미추홀로 왔고, 성장하여 한산 부근에 백제를 건국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