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전국시대 연나라의 태자 단(丹)과 형가(荊軻)가 살았던 곳은 지금의 어디일까?
[전국책 권제29 연1을 보면, "소진이 장차 합종을 하기 위하여 북쪽으로 유세를 떠나 연 문후에게 말하기를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 요동이 있고, 북쪽으로 임호, 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 운중, 구원이 있고, 남쪽으로 호타, 역수가 있으며, 땅이 사방 2천리입니다.................남쪽으로 갈석, 안문의 풍요로움이 있고, 북쪽으로 대추, 밤의 이익이 있어 만약 무슨 일이 있어 농사를 짓지 못한다 하여도 대추와 밤을 먹는다면 백성들의 먹거리가 족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전국시대 연나라의 위치를 비정해 볼 수 있습니다.]
형가(荊軻)는 전국시대 연나라 태자 단(丹)과 공모한 후 진왕을 암살하기 위하여 번어기의 목과 연나라 독항지역의 지도를 가지고 진무양(진개의 손자)을 데리고 진(秦)나라로 가서 진왕(후일의 진시황)을 접견한 자리에서 암살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잡혀 죽은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 그의 석상이 북경 서남쪽 하북성 보정시 역현(易縣)에 세워져 있고, 역현의 남쪽에 역수(易水: 중역수)가 흐르고 있는데, 진왕을 암살하기 위하여 출발하는 형가를 연나라 태자 단이 배웅한 곳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역수(易水)부근에 전국시대 연나라의 도읍 유성(柳城) 또는 계성(薊城)이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사건이후 진(秦)나라가 연(燕)나라를 공격하여 연나라는 도읍을 함락 당하게 되고 태자 단은 요동으로 도망치다가 연수(衍水 : 현재 그 위치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지금의 영정하 부근일 것이다)가에서 잡혀 죽었고, 나라도 멸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게 되고, 진왕 정은 진시황제가 되는 것이다.
[형가가 진왕을 암살하려는 장면을 그린 한나라 때 그림]
[하북성 역현에 세워져 있는 형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