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카테고리 없음

윤여동설 - 고구려 유리왕이 지은 골천이궁[鶻川離宮]터를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14. 1. 10. 23:14

윤여동설 - 고구려 유리왕이 지은 골천이궁[鶻川離宮]터를 찾았다 - 최초주장

 

[고구려 초기 유리왕이 지은 골천이궁터로서 졸본의 북쪽 공기 맑고 경치좋은 곳에 위치한다. 이러한 인연 때문이었는지 유리왕은 이곳 골천호족의 딸을 계비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 3년(B.C.17) 조를 보면,

  “가을 7월 골천(鶻川)에 이궁을 지었다.[秋七月 作離宮於鶻川]” 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겨울10월 왕비 송씨가 죽으매 왕이 다시 두 여자를 취하여 계실로 삼았다. 하나는 화희이니 골천(鶻川)사람의 딸이요, 하나는 치희이니 한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두 여자가 질투하여 화목하지 못하므로 왕이 양곡(凉谷)에 동, 서 두 궁을 지어 각각 따로 있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골천(鶻川)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때는 고구려가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기기 전이다.

  그리고 주몽왕(추모왕) 3년(B.C.35) 조를 보면,

  “봄3월 황룡이 골령(鶻嶺)에 나타났다.

  가을 7월 경사스러운 구름이 골령(鶻嶺) 남쪽에 나타났는데 그 빛이 푸르고 붉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골천(鶻川) 부근에 골령(鶻嶺)이라는 고개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고구려의 졸본(卒本 : 忽本)은 지금의 하북성 적성현 후성진(后城鎭)부근으로 비정되므로, 골천이나 골령은 지금의 후성진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 유리왕이 골천에 지었다는 골천이궁(골천별궁)은 과연 지금의 어디에 지었던 것일까?

  위 그림을 보시라.[좌표 : 동경116도05분27초 북위40도46분58초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 장신지촌(長伸地村)] 

   골천이궁터에는 화려했을 옛 고구려의 별궁 모습은 찾을 길이 없지만, 골천이궁 담장 역할을 했을 토성은 비록 많이 허물어졌지만 온갖 풍상을 견디며 지금까지도 그 모습을 지탱하고 있었다.

  위 사진들이 바로 유리왕이 지었던 골천이궁터와 이궁을 보호하고 있었을 토성의 흔적이다.

  2,000여년전 고구려 유리왕이 경치좋은 골천에 지었던 골천이궁터를 처음으로 필자가 찾아내 공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