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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당 태종이 올랐던 안시성 밖 주필산(駐蹕山)을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14. 2. 15. 23:00

윤여동설 - 당 태종이 올랐던 안시성 밖 주필산(駐蹕山)을 찾았다 - 최초주장

 

 

 

 

  서기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 요동성을 함락시키고 난 후 진군하여 안시성(安市城)을 공격할 때 올랐다고 전해지는 “주필산(駐蹕山)”이 지금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산을 말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고구려 난공불락의 요새 “안시성(安市城)”의 위치 자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옛 요동을 지금의 요동반도 부근이라고 이해하는 한 “건무 25년(A.D.49) 봄에 구려가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침입하여 노략질 하는 것을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와 신의로 대하니 모두 요새 밖으로 철수하였다”라는 후한서 고구려전 구려 조의 기록을 설명할 수 없고, 중국 사서들에 “고구려와 백제가 함께 요동 동쪽 1천여리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기록을 절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지만 옛 요동군(遼東郡)이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고구려의 평양성이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백제의 한성이 지금의 진황도 도산부근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당시 고구려의 서쪽변경이 바로 지금의 북경 부근이었던 것이고, 그곳이 요동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안시성 역시 북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을 것인데, 찾고보니 지금의 북경 북쪽 “발해진(渤海鎭)” 부근이 곧 고구려의 안시성이었다.

  그리고 안시성 밖에서 성을 방어하려 했던 고구려 북부욕살 고연수와 남부욕살 고혜진이 이끄는 고구려군에 대항하여 전투할 당나라군을 지휘하기 위하여 당 태종이 직접 올랐다는 산이 바로 안시성 밖에 위치하고 있던 주필산이었다.

  결과 이 전투에서 고연수와 고혜진은 군사 36,800명을 이끌고 당 태종에게 항복을 하였고, 말갈인 3,300명은 생매장을 당했으며, 말5만필, 소5만두, 명광개 1만벌을 빼앗겼고, 당 태종은 자신이 올랐던 산을 주필산(駐蹕山)이라고 고쳤다고 전하는데, 지금까지 그 주필산이 어느 산을 말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안시성 밖에서 고연수와 고혜진이 이끄는 고구려군과 당 태종이 이끄는 당나라군과의 전투상황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A.D.645) 조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혹자는 대명일통지를 보고는 북경 창평현 서남 25리에 주필산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 주필산은 금나라 장종이 올라 놀았던 산이지 당태종이 고구려 침공 때 올랐던 주필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