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夫餘城, 옛 예성)은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공개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옛 예성)으로 추정되는 원 상도성터]
아직까지 부여(동부여)의 위치를 정확하게 밝힌 사람은 없고, 따라서 그 도읍의 명칭이 무엇이었는지, 그 위치가 어디였는지 역시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비록 확실하지는 않다하더라도 그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옛 예성)을 찾아 보는 것도 역사연구에 있어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후한서 부여국(동부여)전을 보면,
“부여국은 현토의 북쪽 1천리에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하였고, 북쪽에는 약수가 있다. 땅이 2천리인데 본래는 예(濊)의 땅이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부여(동부여)전을 보면,
“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는데, 현토에서 1천리 떨어져 있다.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 서쪽은 선비와 접했고, 북쪽에는 약수가 있다. 땅이 사방 2천리이며, 백성은 8만호이다..............산과 능선이 많고 넓은 못이 있으며, 동이 지역에서는 가장 평탄하다. 토질이 오곡은 잘되나 과일은 생산되지 않는다................. 그 나라의 옥새에 濊王之印(예왕지인)이란 글자가 있고, 나라 가운데에 예성(濊城)이라 부르는 옛 성이 있으니 아마 이곳이 본래는 예맥(예의 오기)의 땅이었으나, 부여(동부여)가 그곳을 차지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망명해온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진서(晉書) 부여국(동부여)전을 보면,
“태강 6년(A.D.285)에 이르러 모용외의 습격을 받아 패하여 의려왕은 자살하고 그의 자제들은 옥저로 도망하여 목숨을 보전하였다................다음해 부여의 다음왕 의라가 하감에게 사자를 보내어 지금 남아있는 무리를 이끌고 돌아가 옛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며 지원을 요청하였다. 하감은 도독 가침으로 하여금 병사로서 호위하게 하였다.........의라는 나라를 회복하였다”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사서의 기록들을 보면,
부여(동부여)가 장성의 북쪽에 있었고, 현토의 북쪽 1천여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남쪽에는 고구려, 동쪽에는 읍루(말갈), 서쪽에는 선비가 위치해 있었다고 하였으며, 부여가 모용외의 침공을 받아 왕은 죽고 그 자제들이 옥저로 도망쳤다가 후일 돌아와 다시 나라를 회복하였다고 하였는데,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옛 예성)으로 비정할 수 있는 위치에 지금 중국 학자들이 원나라 때의 상도성터라고 하는 큰 성터가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 대무신왕 5년(A.D.22) 조를 보면,
“봄2월에 왕이 부여국 남쪽으로 진군하였다. 그 지방에 늪이 많으므로 왕이 군사들로 하여금 평지를 선택하여 병영을 만들고 말안장을 끄르고 졸병들을 쉬게 하여 겁내는 태도를 보이지 않게 하였다. 부여왕이 전국 군사를 동원하여 나와 싸우는데 고구려가 준비하지 못한 틈을 타서 덮치려고 말을 급히 달려 앞으로 나오다가 늪에 빠져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왕이 이때에 괴유를 내 보냈다. 괴유가 칼을 뽑아들고 사자처럼 포효하며 쳐들어가니 부여의 1만여 군졸이 넘어지고 쓰러지는데 이때 괴유가 바로 내달려 부여왕을 붙잡아 목을 베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부여의 남쪽 국경 부근에 늪지대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원 상도성터 서남쪽 고원(沽源) 부근에는 지금도 커다란 천연호수가 많고 또한 늪지대가 많아 기록 속 지형과 잘 맞아 떨어진다.
아마 고구려 대무신왕은 국내성(필자주 : 북경 연경현 영녕진) 을 출발하여 북쪽으로 진군하여 지금의 고원부근에서 동부여군과 전투를 벌여 늪에 빠진 동부여왕을 죽였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중국 학자들이 원 상토성터(가로2.2km⨉2.2km)라고 하는 곳은 옛 동부여의 도읍 부여성(옛 예성)이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된다.
☆ 원 상도성터는 내몽골 정람기의 동북쪽 섬전하 변에 위치하는 매우 큰 규모이고, 정람기 강 건너에는 금나라 때의 항주성(恒州城)터라고 하는 가로1.1km⨉세로1.1Km 정도의 옛 성터(사랑성이라고도 한다)가 있고, 하북성 장북에는 원 중도성터라고 하는 비교적 작은 성터도 있는데, 이 원 중도성터는 옛 고구려 유리왕대 고구려에 가까이 위치했던 황룡국의 왕성으로 보이고, 그 부근에는 크고 작은 옛 성터들이 매우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