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발해의 홀한하는 지금의 시라무렌하 또는 사간무렌하일 가능성 - 최초주장
신당서 북적전 흑수말갈조를 보면,
“..........잘 알려진 것이 속말부로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태백산에 이른다. 도태산이라고도 하는데 고구려에 접했다. 속말수에 의지하여 사는데 이 강의 수원은 (태백)산 서쪽에서 흘러나와 북쪽으로 흘러 타루하(它漏河)로 들어간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당서 북적전 발해전을 보면,
“만세 통천(A.D.696-697) 중에 거란의 이진충이 영주도독 조홰(조문홰)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사리 걸걸중상이라는 자가 말갈추장 걸사비우 및 고구려의 남은 무리와 함께 동쪽으로 달아나 요수를 건너 태백산 동북쪽을 거점으로 하여 오루하(奧婁河)를 사이에 두고 성벽을 쌓아 수비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천보(A.D.742-755) 말년에 흠무가 도읍을 상경(상경용천부)으로 옮기니 옛 도읍(중경현덕부)에서 (동북쪽으로) 3백리 떨어진 홀한하(忽汗河)의 동쪽이다.............
정원(A.D.785-804) 중에 동남쪽 동경(동경용원부 혹은 동경책성부)으로 도읍을 옮겼다..........
☆ 신라 38대 원성왕 6년(A.D.790) 조에 신라에서 일길찬 백어를 발해에 사신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발해의) 국토는 5경 15부 62주이다.
숙신의 옛 땅으로 상경을 삼으니 용천부이며................
그 남부를 중경으로 삼으니 현덕부이며..............
예, 맥의 옛 땅으로 동경을 삼으니 용원부인데 책성부라고도 한다.
옥저의 옛 땅으로 남경을 삼으니 남해부이며.............
고구려의 옛 땅으로 서경을 삼으니 압록부이며..................”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용원(동경용원부)의 동남쪽 연해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고,
남해(남경남해부)는 신라로 가는 길이며,
압록(서경압록부)은 (중국에) 조공가는 길이고,
장령은 영주로 가는 길이며,
부여는 거란으로 가는 길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발해의 건국지는 지금의 내몽골 파림우기로서 그곳이 발해의 첫도읍 중경현덕부였고,
상경용천부는 파림좌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백산이나 동모산 그리고 오루하, 홀한하는 파림우기 부근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발해의 건국지인 중경현덕부는 지금의 내몽골 파림우기 부근,
상경용천부는 파림좌기 부근,
동경용원부는 고륜기 부근,
남경남해부는 옹우특기 부근,
서경압록부는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 부근으로 비정된다.
그리고 장령은 칠로도산 산맥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부여(동부여)는 내몽골 정람기부근,
거란의 건국지 상경임황부는 내몽골 오란찰포시 상도(商都)부근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