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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은 지금의 하북성 청산관 부근 - 최초공개

윤여동 2016. 11. 25. 11:04

윤여동설 -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은 지금의 하북성 청산관 부근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원년조를 보면,

  “10월 백제의 관미성을 쳐서 함락시켰다. 그 성은 사면이 절벽이고(四面峭絶), 해수로 둘러져 있어(海水環繞) 왕이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공격한 지 20일 만에야 함락시킬 수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그 관미성을 찾지 못하고 여기다 저기다 하면서 주장들만 분분했었는데, 필자가 드디어 관미성을 찾은 듯하다.

 

  그런데 새로 찾은 관미성의 위치를 놓고 생각해보면, 왜 백제 아신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고구려에 빼앗긴 이 관미성을 되찾으려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관미성으로부터 당시 백제의 도읍인 한성까지는 군사들이 하루정도면  행군할 수 있는 1백여리에 불과한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안보상 매우 불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신왕은 3938월에 군사 1만을 보내 관미성 탈환작전을 펴나 실패하게 되고, 2년 후인 3958월에 이르러 다시 고구려를 침공[필자주 : 때도 관미성 탈환이 목표였을 것이다]하나 8천명의 희생자를 내고 실패하게 되는, 아신왕은 이에 멈추지 않고 11월에 이르러 또 다시 패수전투에서의 패전을 보복하려고 몸소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려 했으나 날씨가 추워져 철군하게 된다.

  그런데 호태왕비문 영락6년 병신년 조를 보면,

  396년에 이르러 광개토대왕이 직접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침공하여 도읍인 한성을 포위하게 되자 아신왕이 무릎 꿇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종이 되어 따르겠습니다라고 하면서 항복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이때 광개토대왕은 황성(평양성,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부근)에서 군사들을 배에 싣고 패수(지금의 난하)를 타고 내려와 신속하게 군사들을 이동시켜 백제의 여러 성들을 함락시키며 진군하여 백제의 도읍인 한성을 포위하고 아신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