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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하슬라(何瑟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17. 7. 23. 09:44

윤여동설 - 하슬라(何瑟羅)의 진짜 위치 - 최초공개

 

 

  하슬라(명주)에 관한 기록은 신라 17대 나물이사금 42년인 서기 397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지금 그 하슬라가 한반도 강원도 강릉을 말한다고 알고 있고, 신라 역시 한반도 경상도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신라는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가 아니라, 사실은 발해 북쪽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을 중심으로 천년왕조를 유지했던 나라였고,

 

  한반도 경주, 김해 부근에는 대륙에서 왕망의 신(新) 나라가 멸망하자 흉노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예들이 한반도로 도망쳐 와서 다시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리하여 경주와 김해 부근의 왕릉들에서 흉노문화유물들이 출토되는 것이다.

  경주의 신라왕릉이라 하는 것들이 사실은 신라왕들이 죽어 묻힌 곳이 아니라 흉노족 왕들이 죽어 묻힌 곳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신라의 하슬라(명주)는 한반도에서 찾을 일이 아니라 발해 북쪽 대륙신라 부근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데,

  찾고보니 지금 요녕성 금주시(錦州시)의 북쪽  통요시 고륜기 부근이 바로 하슬라(명주)였고, 동예였고, 옛 임둔군이었다. 

  위 그림을 보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하슬라에 관련된 기록들을 읽어보자.

 

  신라본기 내물이사금

  42(A.D.397)

  가을7월에 북쪽 변방 하슬라에 가뭄이 들고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 흉년이 들고 백성들이 굶주려 그 지방의 죄수를 특별히 사면하고, 1년간의 세금을 면제하여 주었다.

 

  신라본기 눌지마립간

  34(A.D.450)

  가을7월에 고구려의 변방 장수가 실직 벌판에서 사냥하는 것을 하슬라성주 삼직이 군사를 보내 그를 습격하여 죽였다.

  고구려왕(장수왕)이 이를 듣고 분노하여 사신을 보내 "내가 대왕과 더불어 우호 관계를 맺어 매우 기뻐하였는데, 이제 군사를 보내 우리 변경의 장수를 죽이니, 이 무슨 도리인가?"라고 하고는, 즉시 군대를 동원하여 우리나라의 서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왕이 겸손한 말로 사과하자 그들이 돌아갔다.

 

  신라본기 자비마립간

  11(A.D.468)

  봄에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북쪽 변경의 실직성을 습격하였다.

  가을9월에 하슬라 사람으로서 15세 이상 되는 자를 징발하여 니하(泥河)에 성을 쌓았다.

 

  신라본기 선덕여왕

  8(A.D.639)

  봄2월에 하슬라주(何瑟羅州)를 북소경(北小京)으로 만들고, 사찬 진주로 하여금 이 성을 수비하게 하였다.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5(A.D.658)

  3월에 왕이 하슬라 땅이 말갈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백성들이 편안히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하여 경(小京 : 북소경)을 폐지하여 주()로 만들고, 도독을 두어 그 곳을 수비하게 하였다. 또한 실직을 북진(北鎭, 필자주 : 지금의 요녕성 북진 의무려산 부근))으로 만들었다.

 

[참고]

삼국지 예()전을 보면,

예(동예)는 남쪽으로는 진한, 북쪽으로는 고구려, 옥저와 접하였고, 동쪽은 대해에 닿았다.

지금 조선(고조선) 동쪽이 모두 그 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