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한민족의 활 맥궁(貊弓)과 낙랑단궁(樂浪檀弓)의 원래 생산지 찾기 - 최초주장
[몽골인들의 활쏘기 : 화살이 활 몸통의 좌측에 위치하게 하고 쏜다]
후한서 고구려전 구려조를 보면,
“구려(句驪)는 일명 맥(貊)이라 한다. 별종으로서 소수(小水 : 소요수)에 의지하여 살기 때문에 소수맥(小水貊)이라 한다. 좋은 활이 생산되는데, 소위 맥궁(貊弓)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고구려전에도,
“또 소수맥이 있는데, 구려가 대수(大水 : 대요수) 유역에 나라를 세우고 살았고, 서안평현의 북쪽에 소수(小水 : 소요수)가 있는데,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구려의 별종이 소수유역에 나라를 세웠으므로 그 이름을 따라 소수맥(小水貊)이라 한다. 좋은 활이 생산되는데, 소위 맥궁(貊弓)이라 하는 것이다”라고도 기록되어 있어 소수맥족이 만든 활이 곧 맥궁이고, 당시 중국에까지도 잘 알려진 유명한 활이었음을 알게 한다.
☆ 고구려 유리왕 27년에 황룡국왕이 고구려 해명태자에게 선물했던 강궁은 바로 이 맥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후한서 예전을 보면,
“낙랑단궁(樂浪檀弓)이 그 지방에서 만들어진다. 또 무늬 있는 표범이 있고, 과하마(조랑말)가 있으며, 바다에서는 반어(班魚: 무늬 있는 물고기)가 잡힌다. 사신이 올 적에 모두 헌상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예전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구려의 특산품 중에 맥궁(貊弓)이라는 좋은 활이 있었고, 예(동예)의 특산품에도 낙랑단궁(樂浪檀弓)이라고 하는 좋은 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예(동예)를 한반도 강원도 동해안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구려는 고구려라고 생각하여 압록강 부근에 위치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요수(대요수)는 지금의 양하, 영정하, 해하로 이어지는 강을 말하는 것이고, 소수(소요수)는 지금의 북경 북쪽 연경현을 지나는 규수하(嬀水河)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요수 지역에서 만들어졌다는 맥궁(貊弓)은 지금의 양하, 영정하, 규수하 유역에서 만들어진 활이었다.
그리고 예 지역에서 만들어졌다는 낙랑단궁(樂浪檀弓)은 지금의 내몽골 적봉, 영성, 능원, 고륜기 부근에서 만들어진 활이었다.
이 활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사용했을 것이고, 환인, 환웅, 고조선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그 후 고구려와 부여 그리고 예와 맥, 동옥저 사람들도 사용했을 것이고, 지정학적으로 가까이 접하고 있었던 삼한 사람들도 이 활들을 사용했을 것이며, 그 후 백제, 신라, 가야도 이 활을 사용했을 것이다.
또한 말갈(숙신)도 이 활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말갈(숙신)은 화살촉은 청석을 갈아 만들고, 화살대는 싸리나무로 만든 “호시(楛矢)”라는 유명한 화살을 사용했다고 전해온다.
그런데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후 도읍을 대륙 개경(현 하북성 관성현)에서 한반도의 한양(현 서울)으로 옮기게 되면서 맥궁과 낙랑단궁도 한반도로 전해지게 되는데,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국궁(國弓)이라는 것이 바로 이 맥궁과 낙랑단궁과 같은 종류로 판단된다.
☆ 원래의 예(濊)는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해 있었는데, 동부여에게 그 땅을 빼앗기고 개마산을 넘어 서랍목륜하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여 옛 임둔군 지역인 지금의 내몽골 고륜기 부근으로 옮겨가서 다시 나라를 세웠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동예(東濊)이라 한다. 그 지역이 낙랑동부도위의 영향권 아래 있었기 때문에 낙랑단궁이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동예의 서남쪽인 우수주(수약주, 삭주) 지역은 원래 맥(貊) 족들이 살던 땅이었는데, 맥궁의 생산지가 요수 유역에 위치한 구려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맥족의 일부가 그곳으로 옮겨가 살았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