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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신라 공작지(孔雀趾) 찾기 - 최초공개

윤여동 2020. 5. 2. 12:20

윤여동설 - 신라 공작지(孔雀趾) 찾기 - 최초공개

 

 

   삼국사기 신라본기 46대 문성왕(文聖王) 19(A.D.857) 조를 보면, “왕이 죽으니 시호를 문성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책 47대 헌안왕(憲安王) 5(A.D.861) 조를 보면, “정월 29일에 왕이 죽으니 시호를 헌안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기록에 나타나는 공작지(孔雀趾)”의 확실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방향과 거리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한반도의 경주는 후한 광무제에게 쫓겨 대륙에서 한반도 남부로 도망쳐 온 흉노족들이 세웠던 흉노족왕국의 도읍이었는데, 학자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한반도 경주에서 신라 공작지를 찾으려 하였기 때문이다.

   신라의 진짜 천년도읍지 서라벌은 한반도 경주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를 말하는 것이다.

 

☆ 신라 문성왕은 38대 원성왕의 고손자로서 그 아버지 신무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앞서 원성왕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자는 혜충태자 인겸이요, 둘째는 헌평태자 의영이요, 셋째는 예영이었는데, 39대 소성왕, 40대 애장왕, 41대 헌덕왕, 42대 흥덕왕은 장자인 인겸의 후예였고, 43대 희강왕, 44대 민애왕은 둘째인 의영의 후예였으며, 45대 신무왕, 46대 문성왕, 47대 헌안왕은 셋째인 예영의 후예였다.

 

[신라하대 왕위계승도]

 

   공작지(孔雀趾)”란 공작새의 발이라는 의미인데, 그 산 능선의 모양이 마치 공작새의 발가락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옛 서라벌이었던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주변을 뒤져 공작새의 발가락처럼 생긴 지형을 찾으면 된다.

 

 

[위 : 요녕성 금주시 북쪽 공작새 발 모양의 지형]

 

 

 

   그런데 옛 서라벌이었던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14km 지점에서 공작새 발가락형상의 산 능선을 찾을 수 있었다.

   만약 이 공작새 발가락 모양의 능선이 신라 46대 문성왕릉과 47대 헌안왕릉을 조성한 그 공작지(孔雀趾)를 말하는 것이라면, 공작지는 서라벌의 북쪽방향에 위치했었다는 말이 되고, 아리송하기만 했던 진짜 공작지의 위치를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지요?

   위 지형이 공작새의 발처럼 보이시나요?

 

☆ 지금 한반도 경주에는 공작지에 장사지냈다는 문성왕릉과 헌안왕릉을 별 근거도 없이 서악동에 비정해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