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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북부여 천제 해모수(解慕漱)의 능과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東明王)의 능은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 2020. 7. 5. 21:22

윤여동설 북부여 천제 해모수(解慕漱)의 능과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東明王)의 능은 지금의 어디에 조성했을까? - 최초주장 

 

 

   북부여 건국시조 해모수 천제의 능 조성지에 대하여,

  범장의 북부여기()시조 단군 해모수 조를 보면, “이 해(B.C.195) 겨울 단제께서 붕어하시어 웅심산(熊心山) 동쪽 기슭에 장사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북부여의 건국시조 해모수 천제의 능은 당시 북부여의 도읍이었던 북부여성(필자주 :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부근에 조성했던 것이 아니라, 해모수 천제의 고향이었던 웅심산에 조성했음을 알 수 있는데, 웅심산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서 해모수가 처음 군사를 일으키고 왕위에 오른 곳이다. 따라서 해모수의 능은 옛 압록강이었던 지금의 밀운수고 부근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 범장의 북부여기(상) 시조 단군 해모수 조를 보면, “임술원년(B.C.239) 단제는 자태가 용맹하게 빛나니, 신과 같은 눈빛은 사람을 꿰뚫어 그를 바라보면 과연 천왕랑이라 할 만하였다. 나이 23세에 하늘에서 내려오니 이는 47세 단군 고열가 57년으로 임술년 4월8일이라. 웅심산(熊心山)에 의지하여 궁실을 난변(蘭邊, 필자주 : 입록강변 부근일 것이다)에 쌓았다. 오우관을 쓰고 용광의 검을 찼으며, 오룡의 수레를 탔다. 따르는 종자 500인과 함께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녁에는 하늘로 오르니 이에 이르러 즉위하였다.............

기사8년(B.C.232) 단제가 무리를 이끌고 가서 옛 도읍의 오가들을 회유하니 마침내 공화의 정치를 철폐하게 되었다. 이에 만백성들이 추대하여 단군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해모수가 처음 군사를 일으킨 곳이 웅심산 부근임을 알 수 있고, 8년 후에 명실공히 북부여 단군(천제)의 자리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 후대 요(거란) 태조 야율아보기의 능도 당시 요(거란)의 도읍이었던 상경임황부 부근에 조성했던 것이 아니라 그 서쪽 야율아보기의 고향인 조주(祖州)에 조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의 능 조성지에 대하여,

  범장의 북부여기 () 5세 단군 고두막(혹은 두막루)[필자주 : 이 분이 곧 졸본부여 건국시조 동명왕으로서 백제 건국시조 온조왕의 증조할아버지이다. 따라서 동명왕의 이름은 고두막이 아니라 부여두막 또는 부여두막루라고 해야 옳았을 것이다] 조를 보면, “신유 49(B.C.60) 제가 붕어하고 유명에 따라 졸본천(卒本川)에 장사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동명왕의 능은 졸본(卒本)인 지금의 하북성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부근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졸본 동쪽 용산(龍山)에는 고구려 건국시조 추모왕(주몽왕)의 능도 조성되었다.

 

[웅심산으로 추정되는 밀운수고 동쪽 부근의 지형 : 마치 곰의 머리형상으로 보인다]

 

[졸본부여의 도읍이었으며 동명왕의 능 조성지 졸본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적성현 후성진(后城鎭) 부근의 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