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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왕검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과 세 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은 서로 다른 곳이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21. 1. 1. 03:31

윤여동설 – 왕검조선의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과 세 번째 도읍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은 서로 다른 곳이다 - 최초주장

 

 

왕검조선(고조선)

첫 도읍은 아사달(阿斯達, 필자주 : 우수하지원에 위치했다고 하였다)이었고,

 

[아사달과 장당경(당장경)은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寧城縣) 부근]

 

 

[아사달성이었던 지금의 내몽골 영성현 서쪽 대명진토성](좌표 동경119도08분50초, 북위41도33분57초)

 

두 번째 도읍은 왕검성(王儉城, 필자주 : 패수 동쪽에 위치했다)이었으며,

 

[왕검성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 전경]

 

[왕검성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의 정문(麗正門)]

 

 

         [왕검성이었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 성벽]

 

세 번째 도읍은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 필자주 : 궁홀산에 위치했다)이었고,

 

[백악산, 궁홀산(구월산) 등으로 불리웠던 지금의 북경 동북쪽 무령산(霧靈山)]

 

네 번째 도읍은 첫 도읍 아사달(阿斯達)로 되돌아갔다.

아사달성의 동쪽 가까이에 장당경(당장경 :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권력을 잃은 마지막 단군께서 이곳 장당경(당장경)으로 낙향하여 잠깐 머무르시다가 아사달성이 수리되자 그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마지막 단군이 이곳 장당경(당장경)으로 갔다가 얼마 후 아사달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는 기록을 보고는 장당경(당장경)도 도읍으로 보아 왕검조선(고조선) 때 도읍을 다섯번 옮겼다고 하기도 한다.[필자주 : 아사달, 왕검성, 백악산아사달, 장당경, 아사달이다. 그런데 역사학자들도 아사달과 백악산아사달을 같은 장소로 보는 우를 범하기도 하는데, 아사달은 첫도읍이고, 백악산아사달은 세번째 도읍임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헷갈린 결과라 하겠다]

그러나 장당경(당장경)은 단군왕검께서 평양지역에서 수해를 입은 사람들을 첫도읍 아사달 가까이로 옮겨 재활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곳으로서 왕검조선 내내 특별관리지역이었다. 그리하여 장당경(당장경) 백성들은 단군에게 절대충성하는 충직한 백성이 되었고, 대를 이어 첫도읍 아사달을 지키며 살았다.

그리하여 마지막 단군이 권력을 잃고 장당경(당장경)으로 낙향하자 그를 맞아들였으며, 단군이 첫도읍 아사달성으로 들어가자 아사달성을 위한 백성이 되었다.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이 장당경(당장경)이고, 그 서쪽 대명진에 있는 옛 토성이 왕검조선(고조선)의 첫도읍이자 마지막도읍이었던 아사달성이다.[필자주 : 지금 중국에서는 이곳을 거란(요) 중경대정부 터라고 하고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영성현은 환인, 환웅시대와 연대가 일치하는 능원 우하량선사유적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