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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가라(加羅) 다사진(多沙津) 문제를 논의한 안라고당회의(安羅高堂會議) 장소는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공개

윤여동 2021. 2. 21. 10:40

윤여동설 가라(加羅) 다사진(多沙津) 문제를 논의한 안라고당회의(安羅高堂會議) 장소는 지금의 어디였을까? - 최초공개

 

 

   일본서기 계체천황 23(A.D.533, 백제 성왕11, 신라 법흥왕 20) 조를 보면, “3월 백제왕이 하다리국수(下口+多唎國守) 수적압산신(穗積押山臣)에게 말하기를, ‘조공하러 가는 사자들이 항상 섬의 돌출부를 피할 때마다 매양 풍파에 시달립니다. 이로 인하여 가지고 가는 것들이 젖고 망가지게 됩니다. 그러하니 가라(加羅)의 다사진(多沙津)을 조공하는 길로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를 압산신이 전하여 아뢰었다.

   이달에 물부이세련부근(物部伊勢連父根), 길사노(吉士老)를 보내, 항구(다사진)를 백제왕에게 주었다.

   가라왕(加羅王)이 칙사에게 말하기를, ‘이 항구는 관가를 둔 이래 우리가 조공할 때 기항하는 항구입니다. 어찌하여 쉽게 이웃나라에게 주십니까? 원래 지정하여 주신 경계를 침범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칙사 부근(父根) 등이 이로 인하여 눈앞에서 주는 것이 어려워서 대도(大島)로 물러갔다.

   따로 녹사를 보내 부여(백제)에게 주었다.

   이 때문에 가라(加羅)가 신라와 결탁하여 일본을 원망하였다....(중략)............

   이달 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을 안라(安羅 : 아라가야)에 사신으로 보냈다.

   신라에게 권하여 다시 남가라(南加羅)와 녹기탄(㖨己呑)을 세웠다.

   백제는 장군 윤귀(尹貴), 마나갑배(麻那)甲背), 마로(麻鹵) 등을 보내어 안라(安羅)에 가서 조칙을 듣게 하였다.

   신라는 이웃나라의 관가를 깨뜨린 것을 두려워하여 높은 관위를 보내지 않고, 부지나마례(夫智奈麻禮), 해나마례(奚奈麻禮) 등을 보내어 안라(安羅)에 가서 조칙을 듣게 하였다.

   안라(安羅)가 고당(高堂 : 높은 건물)을 지어 칙사를 인도하여 오르게 하였다. (안라) 국왕이 그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국내의 높은 벼슬 중 고당(高堂)에 오른 자가 한, 둘에 지나지 않았다.

   백제의 사자 장군 등이 당하(堂下)에 있었다.

   무릇 수개월간 재삼 당상(堂上)에서 의논하였다.

   장군 등이 그 뜰에 있는 것을 분하게 여겼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고대의 백제는 지금의 진황도 도산(都山), 당산(唐山) 부근에 위치했던 나라였고, 당시 백제의 도읍 웅진(熊津)은 지금의 진황도 노룡(盧龍)이었다.

   그리고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백제에서 왜국(倭國)으로 갈 때는 백강(白江, 필자주 : 지금의 난하하류이다)을 타고 내려와 백강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발해 북안(北岸)의 연안항로를 따라 요동만을 빙 돌아 왜국으로 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다사진(多沙津 : 모래 많은 나루)의 구체적인 위치에 대하여 밝혀진 바가 없지만, 필자가 추정해 본다면, 당시 백제에서 왜국으로 가기 위하여 지나야 하는 곳 중에 지형이 뾰족하고 모래가 많은 곳이 어디인지를 찾으면 바로 그곳이 다사진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다사진(多沙津)은 지금의 북대하(北戴河) 부근을 말하거나, 수중현 만가진(万家鎭) 부근의 해변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인데, 이는 고대 임나(任那)의 위치도 하북성 진황도(秦皇島) 부근으로 나타나고, 안라국(아라가야)의 위치도 산해관으로부터 동북쪽으로 요녕성 수중현 전위진(前衛鎭) 부근까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 안라(安羅),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 모여 다사진(多沙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안라에서 고당회의(高堂會議)를 연 장소는 지금의 어디쯤일까?

   필자가 보기에 그곳은 지금의 진황도 산해관(山海關) 동쪽 수중현 만가진(万家鎭) 발해 해변가에 위치한 갈석궁터(碣石宮址 : 좌표 동경1195347초 북위 395955)”가 바로 그곳이 아닌가 싶다.

 

☆ 지금 중국에서는 수중현의 갈석궁지를 진시황과 연결시키려고 하거나 한(漢)나라 때의 유적이라 하고 있으나, 사실 그 부근은 가야연맹 중 아라가야(아라국) 땅이었고, 후일에는 신라, 백제의 땅이 되었고, 고려 땅이 되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