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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지금 일본의 후쿠오카(福岡) 지역은 고대 왜노국(倭奴國)이 아니라 위노국(委奴國)이었을 가능성 - 최초주장

윤여동 2021. 8. 29. 07:25

윤여동설 지금 일본의 후쿠오카(福岡) 지역은 고대 왜노국(倭奴國)이 아니라 위노국(委奴國)이었을 가능성 - 최초주장

 

 

 

 

 

 

   漢委奴國王(한위노국왕)”이라 새겨져 있는 자그마한 위 금인은 1784년에 지금 일본의 후쿠오카(福岡)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필자주 : 위조품이라는 주장도 있다]

 

 

   삼국지 부여전을 보면, “그 나라의 옥새에 濊王之印(예왕지인)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나라 가운데에 濊城(예성)이라 부르는 옛 성이 있으니 아마 이곳이 본래는 예맥(필자주 : 예의 오기로 보인다)의 땅이었으나 부여가 그곳을 차지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망명해온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옛날 예국(필자주 : 창해군 예국이다) 땅을 부여(필자주 : 동부여이다)가 빼앗아 왕위에 올라 옛 예국왕의 옥새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고,

   또 신라본기 신라 남해차차웅 16(A.D.19) 조를 보면, “북명(北溟: 명주)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인(濊王印 : 예왕의 도장)을 주워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의 예왕은 임둔군 땅에 설치했던 동예(東濊)의 왕을 말하는 것이다.

   본래 창해군에 위치했던 예국의 왕은 동부여의 침공을 받고 그 땅을 빼앗길 때 옥새도 함께 빼앗겼던 것으로 보이고, 땅을 빼앗긴 후 위치를 동쪽 임둔군 땅으로 옮겨 다시 건설했던 명주 부근에 위치했던 동예의 왕은 옥새를 분실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역사적으로 이때의 명주지역은 신라의 강역이 아니라 동예의 도읍이었다.

   그렇다면 명주지역에 살던 농민은 왜 그 예왕인(예왕의 도장)을 습득했을 때 동예의 왕이 아닌 신라왕에게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

   이상하다고 할 수 밖에 없고, 그 후 신라에서 그 예왕인을 동예의 왕에게 돌려주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어찌되었든 역사적으로 어느 지역에서 그 지역명이 새겨진 왕의 금인이나 옥새가 발견되었다면 실제 그 부근에 그러한 나라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자 일부 연구자 중에는 지금의 일본열도인 후쿠오카(福岡)지역에서 발견된 漢委奴國王(한위노국왕)”이라 새겨진 금인을 보고는, 구당서 권199상 열전제149상 동이 왜국(倭國) 조의 기록 중 倭國者 古倭奴國也(왜국자 고왜노국야)” 왜국은 옛 왜노국이다라는 기록을 인용하여 위노국(委奴國)과 왜노국(倭奴國)을 동일한 나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금의 일본열도에 일본(日本)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곳이 고대의 왜국(倭國)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주장을 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러나 이는 분명하게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委奴國(위노국)倭奴國(왜노국)이 같은 나라라고 볼 근거가 어디에도 없고,

   또 고대의 왜국(倭國)은 지금의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닌 요동반도(遼東半島)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漢委奴國王(한위노국왕)” 금인이 진품이라는 전제하에, 지금 일본열도의 후쿠오카(福岡) 지역은 전한(前漢) 또는 후한(後漢) 때의 위노국(委奴國)이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