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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신비의 나라 여인국(女國)은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윤여동 2008. 2. 24. 21:40

윤여동설 - 신비의 나라 여인국(女國)은 어디에 있었을까? - 최초주장

 

 

 

  후한서 동옥저 전을 보면,
  "일설에 의하면 바다 가운데에 여국(女國)이 있어 남자가 없는데, 그 나라에는 신정(神井)이 있어 여자들이 그를 엿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동옥저 전에는,
  "왕기가 별도로 군사를 보내 위궁을 추격하여 동쪽 경계의 끝까지 갔을 때 그곳의 노인에게 '바다의 동쪽에 사람이 살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우리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수십 일을 바람 부는 대로 표류하여 동쪽으로 흘러가서 한 섬에 도착했는데, 그 섬에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았고, 그들의 풍속은 해마다 7월에 동녀(童女)를 구하여 바다에 던진다'고 했으며, 또 말하기를 그 나라가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모두 여자 뿐이고, 남자가 없다고 했다................그 지역은 모두 옥저의 동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동옥저의 동쪽에 여자들만 살고 있는 신비의 나라 여인국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 서기 246년 위나라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환도성을 함락시키고, 장군 왕기로 하여금 동천왕을 쫓아 옥저(동옥저)를 지나 숙신의 남쪽까지 갔다고 하고, 그곳에 기념비를 세우고 돌아갔다고 하는데, 이때 여인국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옥저는 어디에 위치했던 나라였을까?   
  후한서 동옥저 전에는,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동쪽은 큰 바다까지이고, 북쪽은 읍루와 부여, 남쪽은 예, 맥과 접했다.
  그 땅이 동서는 좁고 남북은 긴데 땅이 사방 천리의 절반쯤 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동옥저 전에는,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는데, 큰 바닷가에 산다.
  그 지형이 동북쪽은 좁고, 서남쪽은 길다. (땅의 크기가 사방) 천리쯤이다.
  북쪽은 읍루와 부여, 남쪽은 예, 맥과 접했다. 백성이 5천 호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우리는 지금까지 이 기록을 한반도에 비정하여 동옥저가 한반도의 함경남도 함흥 부근에 위치했던 것으로 역사를 해석해 여인국이 동해 바다 가운데 있는 지금의 울릉도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부여                읍루                       
 

       
      개마대산                    동옥저             대해

      고구려

                                           예, 맥

 

  그러나 사실 읍루란 지금의 대흥안령산맥을 중심으로 살았던 종족으로서 숙신, 말갈, 여진 등으로 불리우기도 했으며, 발해, 금나라, 청나라가 바로 이들이 세운 나라였고,

  고구려의 평양성은 지금의 북한 평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서 고구려의 개마대산이란 바로 이 대흥안령산맥 또는 칠로도산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부여는 내몽골 정람기 부근에 위치했으며, 예, 맥이란 내몽골 고륜기, 요녕성 능원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옥저란 대흥안령산맥 동쪽 땅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의 내몽골 적봉, 옹우특기 부근으로 비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신비의 나라 여인국은 동옥저의 동쪽 바다 가운데 위치했다고 했으므로 결국 기록 속의 대해란 내륙의 큰 호수를 말한다고 할 수 있고, 지금의 중국 동북평원 부근에 여인국이 위치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서인 삼국사기 신라본기 4대 탈해이사금 조를 보면,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에서 동북쪽으로 1천리 떨어진 곳에 있다. 처음에 그 나라 왕이 여국왕(女國王, 여인국왕)의 공주와 혼인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임신한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자 왕이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 버려야 한다' 라고 했다.
  그 여인이 차마 버리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과 보물을 함께 싸서 궤 속에 넣어 바다로 띄워 보냈다. 그 궤가 처음에는 금관국 해변에 닿았으나 금관사람이 괴이하게 여겨 주워들이지 아니했고, 또 진한의 아진포에 닿으니 이때는 시조 혁거세 재위 39년이었다. 이때 해변에 사는 늙은 노파가 줄로 끌어당겨 해안에 매어놓고 궤를 열어보니 웬 어린애 하나가 들어 있었다. 노파가 그 아이를 데려다 길렀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신라의 탈해왕이 바로 후한서와 삼국지에 기록되어 있는 신비의 왕국 여인국의 공주가 다파나국왕에게 시집가 낳은 아들이었다고 보여지고, 신라, 가야 역시 다파나국 부근에 위치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 사서에는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결국 신라,가야는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고, 왜국 역시 일본열도가 아닌 대륙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다파나국이 왜국의 동북쪽 1천리에 위치했다는 기록을 지금의 일본열도에 적용하여 다파나국이 북해도 부근에 위치했을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나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다. 따라서 다파나국은 요동반도의 동북쪽 1천리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고, 여국은 다파나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지금의 장춘 부근이 옛 여인국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지금도 중국 산간 오지에는 현대문명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사는 여인국이 존재한다고 하고, 이들은 모계중심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서는 여자들이 사회의 중심으로서 남자들의 역할이란 종족 번식을 위하여 씨를 제공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는 전사역할을 할 뿐이라 한다.    
  따라서 동옥저의 동쪽에 있었다는 여인국(여국) 역시 이와 비슷하게 사회의 중심 역할을 여자들이 하고, 모든 의사결정권을 여자들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계중심 사회에 살던 사람들이 그 여인국의 관습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여자들만 사는 나라라고 했을 것이고, 후한서에 언급되고 있는 신정이란 여자들이 임신을 하기 위해 남자가 필요할 때 가는 신성하게 여기는 곳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