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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백제는 왜 멸망했을까?

윤여동 2008. 2. 27. 23:08

윤여동설 - 백제를 망친 의자왕의 대부인 요녀

 

 

  백제는 왜 멸망했을까?
  의자왕이 정말 삼천 궁녀와 더불어 주색에 빠져 나라를 망쳤을까?
  누구나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서기 제명천황 6년 가을 7월 조의 주(註)를 보면 고구려의 중 도현(道顯)이 지었다는 일본세기(日本世記)라는 책의 기록을 인용하여, 
  "백제가 스스로 망하였는데, 군왕의 대부인(大夫人)인 요녀(妖女)가 무도하고, 국권을 제 마음대로 빼앗아 현량을 주살하여 이 화를 불렀다" 라는 기록이 삽입되어 있다.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의자왕의 대부인이 정치에 깊이 관여하여 정치를 자기 마음대로 하고 현량들도 죽였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혹시 좌평 성충이나 흥수를 귀양 보낸 사람은 의자왕이 아니라 의자왕의 대부인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듯 의자왕 자신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제가 멸망한 것이 아니라, 의자왕의 대부인이 나라를 망쳤던 것이 사실이 아닐까?   
 
☆ 대부인이 의자왕의 맏왕비를 지칭하는 것인지, 의자왕의 어머니를 말하는지는 아직 확실히 모르는데, 여기에서는 대부인을 의자왕의 어머니로 보고 해석한다.
 
  의자왕의 어머니가 누구였는지 삼국사기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의자왕이 무왕의 장자라고는 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무왕은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혼인을 하였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으나, 진평왕에게 선화라는 딸이 있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 밖에는 없고, 아주 정확하다고 생각되는 화랑세기에도 선화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왕의 왕비의 이름이 선화는 선화로되 진평왕의 딸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무왕의 왕비 이름이 선화이고, 그녀가 의자왕을 낳았다면 결국 일본서기에 기록된 대부인 요녀는 곧 선화를 말하는 것이 된다.
  혹시 백제를 망친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그녀의 심한 정치간여는 아니었을까? 

  삼국사기를 보면
  "의자왕(義慈王)은 무왕의 장자이다. 용감하고 대담하며 결단성이 있었다.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 당시에 해동증자라고 불렸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의자왕에 대한 총평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만약 의자왕이 우리가 알고 있듯 궁녀들을 데리고 음란과 향락에 빠져서 술이나 마시고, 충신들이 간하는 말도 귀담아듣지 않아 백제가 멸망했다면 이러한 기록이 남겨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의자왕은 재위 15년에 "태자궁을 극히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수리하였고, 왕궁 남쪽에 망해정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해 8월에는 고구려, 말갈과 연합하여 신라의 30여성을 함락 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 의자왕은 정치를 매우 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해에 의자왕이 갑자기 돌변하여 음란과 향락에 빠진다?
  정신이 이상해지지 않고서야 어찌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 있을까?
  의자왕은 부모를 효성으로 모시는 효자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혹시 그 어머니가 이때쯤 정치에 심하게 간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효자였던 의자왕은 그 어머니의 전횡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상황을 고구려 사람인 도현이 알고 일본세기라는 책에 기록하여 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이 그러하다면 의자왕은 지금 저 세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무척 억울해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어머니가 나라를 망쳤다고 해도 그것을 말리지 못한 책임은 있을 테고, 어차피 나라는 멸망해 버렸으니 어머니 대신 욕을 얻어먹는 것도 그 어머니에 대한 효도일 수 있을 것이다. 
  생전에 효성이 지극했던 의자왕은 죽어서 천년이 훨씬 넘도록 어머니 대신 욕을 얻어 먹으며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