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해동성국 발해의 5경 15부는 어디를 말하는가? - 최초주장
[북경 부근의 지도인데 지도 오른쪽에 발해,말갈, 여진, 숙여진, 장백산이 보이고, 또 고려, 백제, 신라계 라고 표시되어 있다]
신당서 북적 발해전(新唐書 北狄 渤海傳)에는,
"(발해의) 국토는 5경 15부 62주이다.
숙신의 옛 땅으로 상경(上京)을 삼으니, 용천부(龍泉府)이며, 용주(龍州), 호주(湖州), 발주(渤州)의 3개주를 다스린다.
그 남부를
중경(中京)으로 삼으니, 현덕부(顯德府)이며, 노주(盧州), 현주(顯州), 철주(鐵州), 탕주(湯州), 영주(榮州), 흥주(興州)의 6개주를 다스린다.
예, 맥의 옛 땅으로 동경(東京)을 삼으니, 용원부(龍原府)인데, 책성부라고도 한다. 경주(慶州), 염주(鹽州), 목주(穆州), 하주(賀州)의 4개주를 다스린다.
옥저의 옛 땅으로 남경(南京)을 삼으니, 남해부(南海府)이며, 옥주(沃州), 정주(睛州), 초주(椒州)의 3개주를 다스린다.
고구려의 옛 땅으로 서경(西京)을 삼으니, 압록부(鴨 府)이며, 신주(神州), 환주(桓州), 풍주(豊州), 정주(正州)의 4개주를 다스린다.
장령부(長嶺府)는 하주(瑕州), 하주(河州)의 2개주를 다스린다.
부여의 옛 땅에 둔 부여부(扶餘府)에는 항상 강한 군대를 주둔시켜 거란을 방어하는데, 부주(扶州), 선주(仙州)의 2개주를 다스린다.
막힐부( 府)는 막주( 州), 고주(高州)의 2개주를 다스린다.
읍루의 옛 땅에 둔 정리부(定理府)는 정주(定州), 반주(潘州)의 2개주를 다스린다.
안변부(安邊府)는 안주(安州), 경주(瓊州)의 2개주를 다스린다.
솔빈의 옛 땅에 둔 솔빈부(率賓府)는 화주(華州), 익주(益州), 건주(建州)의 3개주를 다스린다.
불녈의 옛 땅에 둔 동평부(東平府)는 이주(伊州), 몽주(蒙州), 타주( 州), 흑주(黑州), 비주(比州)의 5개주를 다스린다.
철리의 옛 땅에 둔 철리부(鐵利府)는 광주(廣州), 분주(汾州), 포주(蒲州), 해주(海州), 의주(義州), 귀주(歸州)의 6개주를 다스린다.
월희의 옛 땅에 둔 회원부(懷遠府)는 달주(達州), 월주(越州), 회주(懷州), 기주(紀州), 부주(富州), 미주(美州), 복주(福州), 사주(邪州), 지주(芝州)의 9개주를 다스린다.
안원부(安遠府)는 영주(寧州), 미주( 州), 모주(慕州), 상주(常州)의 4개주를 다스린다.
또 영주( 州), 고주(錮州), 속주(涑州)의 3개주로서 독주주(獨奏州)로 삼았다. 속주(涑州)는 그곳이 속말강(涑沫江)과 가까운데, 소위 속말수(粟末水)인 듯 하다.
용원(동경용원부)의 동남쪽 연해는 일본 가는 길(日本道)이고,
남해(남경남해부)는 신라 가는 길(新羅道)이며
압록(서경압록부)은 (중국에) 조공 가는 길(朝貢道)이고,
장령(장령부)은 영주 가는 길(營州道)이며,
부여(부여부)는 거란 가는 길(契丹道)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발해 5경의 위치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기록으로는 전해지고 있는 발해 5경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말갈이 한반도의 두만강 북쪽 연해주를 근거로 살아가던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고구려의 평양성이 북한 평양이며, 고려가 한반도의 개성에 도읍하고 있었으며, 신라가 한반도 경주에 도읍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옛 기록 속의 태백산, 장백산이 지금의 한반도 북쪽 백두산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발해의 위치는 압록강 북쪽으로 비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록을 보면, 숙신의 옛 땅으로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를 삼았다고 했는데, 실제 숙신은 우리의 역사 상식과 같이 연해주에 위치하고 있었던 나라가 아니라 지금의 대흥안령산맥을 중심으로 매우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살았던 유서 깊은 나라였고, 이들은 시대에 따라 숙신, 읍루, 물길, 말갈, 여진으로 달리 불렸다.
☆ 서경(書經)에는 주 무왕의 아들인 "성왕이 동이를 정벌하자 숙신이 와서 하례했다(成王旣伐東夷 肅愼來賀)" 라고 기록되어 있어 숙신이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사람은 숙신이 곧 우리 고조선의 전신이라고 하기도 한다.
숙신은 우리 민족 중 한 부족으로서 고조선의 동북쪽인 지금의 대흥안령산맥 부근에 위치했던 말갈, 여진족으로서 발해국, 금나라, 청나라의 전신이다.
그렇다면 발해의 상경은 두만강 부근이 아니라 대흥안령산맥 부근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상경의 남부를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라 했다고 하는데,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발해의 건국지에 대하여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고구려에 부용되어 있었으며, 성은 대씨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무리를 이끌고 읍루의 동모산을 차지하였다. 그 땅이 영주에서 동쪽으로 2천리에 있으며, 남쪽은 신라와 닿아 이하(泥河)를 국경으로 삼았고, 동쪽은 바다에 닿았으며, 서쪽은 거란까지이다. 성곽을 쌓고 사니 고구려의 패잔병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만세통천(A.D.696) 중에 거란의 이진충이 영주도독 조홰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사리 걸걸중상이라는 자가 말갈 추장 걸사비우 및 고구려의 남은 무리와 함께 동쪽으로 달아나 요수를 건너 태백산 동북쪽을 거점으로 하여 오루하와의 사이에 성벽을 쌓아 수비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동모산의 위치를 추정해 보게 하는데, 신당서에는 또 "천보 말년에 흠무가 도읍을 상경으로 옮기니 옛 도읍(중경)에서 3백리 떨어진 홀한하의 동쪽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중경현덕부와 상경용천부가 약 3백여 리(필자주 : 사실은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떨어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예, 맥의 옛 땅으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를 삼았다고 했는데, 예(동예)는 한반도의 강원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칠로도산 동쪽 내몽골 나만기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맥(맥국)은 우수주로서 요녕성 능원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옥저의 옛 땅으로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를 삼았다고 했는데, 이는 북옥저 또는 동옥저를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의 내몽골 옹우특기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고구려의 옛 땅으로 서경압록부(西京鴨 府)를 삼았다고 했는데, 고구려의 중심이었던 평양성은 한반도의 평양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었고, 발해의 서경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 동북 고북수진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라는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에서 건국되어 그곳에서 멸망했다.
따라서 한반도 경주가 아닌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부근에 신라의 천년 도읍지 서라벌이 있었다.
이 때 통일신라와 발해는 남과 북으로 위치해 있어, 이 시기를 남북국시대라고도 한다.
따라서 발해의 중경현덕부는 지금의 내몽골 파림우기 부근으로 비정되고,
중경에서 북쪽(동북쪽)으로 300리쯤(?) 떨어진 내몽고자치구 파림좌기를 상경용천부로 비정해 볼 수 있으며,
서경압록부는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 부근의 고북수진,
남경남해부는 내몽골 옹우특기 부근,
동경요양부는 나만기(또는 통요) 부근으로 비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발해 15부
발해15부는 5경인 중경현덕부, 상경용천부, 동경용원부, 남경남해부, 서경압록부와 장령부, 부여부, 막힐부, 정리부, 안변부, 솔빈부, 동평부, 철리부, 회원부, 안원부를 말하는 것이다.
북사 물길전을 보면,
"물길에는 일곱 부족이 있는데,
첫째는 속말부로서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승병이 수천 명으로 용감한 병사가 많아 고구려를 자주 침략했고,
둘째는 백돌부로서 속말의 북쪽에 있으며,
셋째는 안거골부로서 백돌의 동북쪽에 있다.
넷째는 불녈부로서 백돌의 동쪽에 있고,
다섯째는 호실부로서 불녈의 동쪽에 있다.
여섯째는 흑수부로서 안거골의 서북쪽에 있고,
일곱째는 백산부로서 속말의 동남쪽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속말부의 위치는 지금의 서랍목륜하 북쪽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으니 나머지도 그 부근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 신당서 흑수말갈 전에는, "흑수말갈은 숙신 땅에서 사는데 또한 읍루라고도 한다. 원위(후위) 때는 물길이라고도 했다. 직선으로 경사(장안)에서 동북쪽으로 6천여 리에 있는데, 동쪽은 바다에 접하고, 서쪽은 돌궐에 닿으며, 남쪽은 고구려, 북쪽은 실위와 접했다. 수십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추장들이 각각 자치적으로 다스린다. 잘 알려진 것이 속말부로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태백산에 이른다. 도태산이라고도 하는데 고구려에 접했다.
속말수에 의지하여 사는데 이 강의 수원은 산 서쪽에서 흘러나와서 북쪽으로 타루하로 들어간다.
조금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골돌부이고, 그 다음의 것이 안거골부이며, 더 동쪽은 불녈부이다.
안거골의 서북쪽에 있는 것이 흑수부이고, 속말의 동쪽에 있는 것이 백산부이다. 부와 부 사이는 먼 곳은 3∼4백 리이고, 가까운 곳은 2백 리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말갈 7부족의 위치]
흑수부
안거골부
백돌부 불녈부 호실부
속말부 백산부
따라서 발해의 15부도 말갈 7부족을 근간으로 하여 강역을 넓혔을 것이다.
현덕부는 발해의 중경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의 내몽골 파림우기 부근,
용천부는 발해의 상경을 말하는 것으로서 파림좌기 부근,
용원부는 발해의 동경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는 지금 요양이라는 지명이 있어 헷갈리고 있으나 이는 내몽골 나만기 부근을 말하는 것이고,
압록부는 발해 서경으로서 옛 고구려의 도읍 환도성(안시성) 이 있는 밀운수고 동북쪽 고북수진을 말하며,
남해부는 발해 남경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의 내몽골 옹우특기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령부는 영주길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산산맥 또는 대마군산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이고,
부여부는 옛 동부여 땅으로서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막힐부는 특산물이 돼지라 했고, 말갈 사람들은 겨울에 매우 추워 돼지기름을 몸에 바른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내몽고자치구 동오주목심기 부근으로 비정되고,
정리부는 읍루의 옛 땅에 설치했다고 하므로 지금의 흥안맹 북쪽,
안변부는 위치가 기록되고 있지 않으나 대흥안령산맥 아이산(阿爾山) 부근으로 비정해 볼 수 있고,
솔빈부는 특산물이 말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북방 초원지역으로서 액이고납좌기(額爾古納左旗)부근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
동평부는 불녈의 옛 땅에 설치했다고 했으므로 이는 지금의 대흥안령산맥 동남쪽 합이빈(哈爾濱하얼빈) 부근,
철리부는 철령부근,
회원부는 월희의 옛 땅에 설치했다 했는데, 철령 북쪽이 아닌가 싶고
안원부 역시 회원부와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의 비정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이렇게 비정해 볼 경우 발해를 사방 5천리에 이르는 해동성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한반도에 가까운 길림성에서 발해 유물들이 출토되는 것은 그곳이 발해의 제후국이었기 때문에 출토되는 것이라 생각되고, 그 부근에 발해공주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은 그곳이 발해 땅이었다기보다는 제후국으로 시집간 공주가 그곳에서 죽어 묻혔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이해해야만 발해를 제대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발해 5경의 남쪽에는 신라가 위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