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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한반도 김제 벽골제는 신라가 쌓은 것이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08. 4. 2. 20:21

윤여동설 - 한반도 전북 김제 벽골제는 신라가 쌓은 것이 아니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16대 흘해이사금 21년(A.D.330) 조를 보면,
  "벽골지(碧骨池)를 처음 만들었는데 그 둑의 길이가 1,800보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원성왕 6년(A.D.790) 조를 보면,
  "봄 정월 벽골제(벽골지의 뚝)를 증축하는데, 전주 등 일곱 주의 사람을 징발하여 공사를 일으켰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는 지금 이 기록을 한반도 전북 김제 부량면에 있는 옛 저수지 뚝에 비정해 역사를 해석함으로써 그 뚝을 김제벽골제라 부르며, 이 저수지 뚝이 신라 흘해이사금 때 쌓은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기 위해서는 신라 초기인 서기 330년에 전북 김제 지역이 신라 땅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한반도에 살고 있고, 신라가 경주에서 건국되었다고 믿고 있는 우리의 역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록이다. 

  그러다보니 그곳에 가서 안내판을 보면, 신라 16대 흘해이사금 때 처음 쌓았다는 말은 쏙 빼고 백제 11대 비류왕 27년(A.D.330)에 쌓았다고 바꾸어 안내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신라 흘해이사금 때 전북 김제지역이 신라 땅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 아마 같은 시기인 백제 비류왕 때 쌓은 것을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신라본기에 잘못 기록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마음대로 판단하고는 안내문을 그렇게 임의로 바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라는 역사 기록은 그렇게 마음내키는 대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사서의 기록들을 보면, 백제의 동쪽으로는 낙랑이 위치하고 있었고, 백제는 신라의 서쪽에 위치했던 나라였으며, 신라는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했다.

 

☆ 수서, 북사, 신·구당서 등에는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나라 때의 낙랑 땅이란 전한 무제가 기원전 108년에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네 조각으로 나누어 설치했던 소위 한사군 중의 낙랑군을 말하는 것이다.

 

☆ 우리는 지금 한반도 북한의 평양 부근에 한사군의 한 군이었던 낙랑군이 위치했었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 북한 평양부근은 낙랑군이 아니다. 원래의 전한낙랑군은 패수 동쪽인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에 치소를 두었었고, 후한낙랑군은 살수 이남인 지금의 하북성 흥륭현 부근에 치소를 두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전한낙랑군의 치소는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承德市)를 말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은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로 밝혀졌으며, 백제는 하북성 진황도, 당산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 그리고 가야까지도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발해 서북쪽 대륙에 위치하고 있던 나라였다.  

 

 

 [지금의 중국 요녕성에 있는 여아하 상류에 조성된 오금당수고 : 이곳이 옛 신라의 벽골지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에서 신라 흘해이사금 때 처음 쌓았다는 벽골지는 한반도 전북 김제에 쌓았다는 말이 아니라 신라 땅이었던 지금의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에 뚝의 길이가 1800보에 이르는 아주 커다란 저수지를 처음 만들었다는 말이고, 후대 통일신라 때인 38대 원성왕 6년(A.D.790)에 전주 등 7개 주의 사람들을 징발하여 증축했다는 말이 된다.
  통일신라 때 신라가 전국을 9개 주로 나누었으니까 거의 모든 주에서 사람들을 동원한 국가적인 대공사였을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저수지를 만드는 것은 물을 저장해 놓았다가 그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기 위해서이므로 그 저수지는 가능하면 넓은 평야지대의 위쪽에 만들었을 것이고, 지금도 저수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혹시 지금의 요녕성 호로도시에 있는 오금당수고가 옛 벽골지는 아닐지..............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삼국사기 기록을 한반도에 비정하여 엉뚱하게도 전라북도 김제 부량면에 있는 저수지 뚝을 벽골제라 부르며, 신라 흘해이사금 때 쌓고, 원성왕 때 증축한 것이라 하고 있었으니 해프닝도 이런 해프닝이 있을 수 없다.
 

☆ 지금 한반도 전북 김제의 저수지 뚝은 백제 12대 계왕의 아들인 무광왕이 대륙에서 근초고왕과의 왕위쟁탈전에서 패하고 서기 365년경 한반도로 도망쳐 와서 반도백제를 세우고 지모밀지(익산 금마 왕궁리)에 도읍한 후 백성들이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쌓은 것일 가능성이 많다.

  그리하여 반도백제는 단시일에 강국이 되었고, 서기 479년에 이르러 대륙백제를 흡수통합하게 되고, 무광왕의 후예인 동성왕이 대륙으로 건너가 처음으로 대륙백제의 왕위에 오르게 되고, 이후의 대륙백제 왕위는 모두 무광왕의 후예들이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