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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신라의 불교전래

윤여동 2008. 4. 23. 06:20

윤여동설 - 신라의 불교 전래

 

 

  고구려에 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때는 17대 소수림왕 2년인 서기 372년 6월이었는데 전해준 사람은 전진의 순도였고, 동진의 아도가 고구려에 온 때는 소수림왕 4년인 374년이었다.
  그러자 소수림왕은 375년에 절 두 개를 짓게 하여 초문사에는 순도가 있게 하고, 이불란사에는 아도가 있게 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이들이 중국에서 서해바다를 건너 지금의 북한 평양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을 동황성으로 왔을 것으로 생각했고, 절 역시 그 부근에 지어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평양부근에서 이들 절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는데, 이는 당시 고구려의 도읍 황성(평양동황성)이 한반도의 북한 평양부근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순도나 아도는 당시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평양동황성으로 와서 소수림왕을 알현했을 것이다.
  그러자 소수림왕은 그 두 스님이 머물 절을 각각 지으라 명했을 것인데, 당시의 도읍인 지금의 황성 부근에 절을 지으라 했을 것이다.

 

# 사서들의 기록을 보면 평양성, 황성(평양동황성), 장안성이 모두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가 초문사나 이불란사가 모두  평양성 즉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부근에 지었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조를 보면,
  처음 눌지왕 때에 중 묵호자가 고구려로부터 신라의 일선군으로 오자 그곳의 모례라는 사람이 집안에 굴을 파고 그를 편히 모셨다고 한다.
  이때 양나라에서 신라로 향을 보내오자 그 용도를 알 수 없었는데 묵호자가 그를 설명해 주었고, 또 신라 눌지왕의 공주가 병이 들어 위독 하자 눌지왕이 묵호자로 하여금 향을 태우며 발원하게 하였더니 공주의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고 했다.

 

☆ 아도가 고구려에 온 때는 374년이었고, 신라 눌지마립간의 재위 기간은 서기 417년 5월부터 458년 8월까지였고, 양나라는 502년에 건국되어 557년에 멸망했으므로 연대가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눌지왕이나 양나라라는 기록은 오기일 것이다. 

 

  그리하여 왕이 후하게 상을 내렸는데, 묵호자는 그 상을 모례에게 모두 주고는 "나는 지금 갈 데가 있어 작별하고자 한다" 하고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비처왕(소지마립간, 재위 479-500) 때에 아도화상(阿道和尙 또는 我道和尙)이라는 사람이 제자 세 사람과 함께 다시 신라 일선군의 모례라는 사람의 집으로 와서 수년을 살다가 죽었는데, 묵호자와 모습이 비슷했고, 그의 제자들이 그곳에 머무르며 불경과 계율을 강독하니 가끔 불교를 신봉하는 자가 생겼다고 했다.
  이 기록대로라면 아도라는 스님이, 눌지왕 때 신라를 다녀갔는데 이때 자신을 묵호자라고 소개했고, 후일 만년에 이르러 신라 모례의 집을 다시 찾아와서는 자기의 본래 법명인 아도라고 밝히고 죽었다는 추정이 가능해 진다.
  결국 묵호자와 아도는 동일인이었을 가능성이 많은데, 실제로 아도가 젊은 시절에 신라에 한번 왔었고, 만년에 다시 신라로 와서 죽었다면, 그가 원래 머무르던 곳이 신라와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밝혀본 바에 의하면, 고구려의 평양성은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고, 신라의 도읍 금성은 그 동남쪽 요녕성 금주 부근이었으므로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그렇다면 아도는 원래 평양(현 승덕시 부근)에 머무르고 있었을 기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도가 머무르던 이불란사는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에 세웠던 절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에 대하여 고구려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때가 372년이었는데, 그리 멀리 떨어진 나라도 아닌 신라에는 어떻게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때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소지마립간(재위:A.D.479-500) 때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불교가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는지 매우 의아했었는데, 그를 밝혀보니 고구려보다 약 30년쯤 뒤에 신라에 불교가 전해진 것으로 나타난다. 
  신라 눌지마립간의 재위기간은 서기 417년부터 458년까지이고, 소지마립간의 재위기간은 479년부터 500년까지였다. 그리고 아도가 고구려로 처음 온 해는 374년이다.
  고구려로 처음 올 때 아도의 나이가 40세쯤 되었다고 가정하고, 아도가 신라에 다시 와서 죽은 때가 소지마립간 때라고 했으므로 기록대로라면 아도가 열반에 든 때 그의 나이가 150세쯤이 되었다는 말이 되니 이는 믿기 어렵다.
  그런데 만약 아도가 고구려로 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라 내물이사금(재위:356-402)때 처음으로 신라로 와서 모례라는 사람의 집에서 한동안 숨어 있으면서 포교를 하려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하고 고구려로 돌아갔는데, 이때 아도는 자신의 법명을 아도라고 사실대로 밝히지 않고 "묵호자"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아도가 만년에 이르른 신라 실성이사금 재위 초기쯤 다시 제자 세 명을 데리고 신라로 와서는 자신의 법명을 "아도"라고 밝히고는 포교를 하다가 죽었다고 추정하면 아도가 열반에 든 때 그의 나이는 약 70세쯤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라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된 때는 고구려보다 약 30년쯤 뒤로서 서기 402-403년경인 실성이사금 초기였을 것이다.
  

 

☆ 신라의 실성이사금은 왕위에 오르기 전 내물이사금이 그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어 후일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내물이사금의 뒤를 이어 신라의 왕위에 오른 사람이고, 광개토대왕은 평양에 아홉 개의 절을 지을 정도로 불심이 돈독했던 왕이었으므로 이때 광개토대왕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을 아도가 실성이사금이 왕위에 올라 있는 신라로 가서 포교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