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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대의 요수(遼水)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07. 11. 7. 08:39

윤여동설 - 고대의 요수(遼水)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다 - 최초주장

 

[지금의 북경(베이징) 일원이 고대의 요동이었고, 영정하가 고대의 요수였다]

 

 

  요수(遼水)는 우리 고대 역사 강역의 서쪽 경계를 밝혀줄 중요한 강의 이름 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를 놓고 논란이 많은 곳 중의 하나이다 

  지금의 요하가 옛 요수라는 주장으로부터, 그 서쪽의 대릉하를 요수라고 하기도 하고, 대릉하 서쪽의 난하를 요수라고 하기도 하며, 난하 서쪽의 조백하를 요수라고 하기도 하고, 북경 서쪽의 영정하를 요수라고 하기도 하며, 심지어 어느 사람은 황하를 요수라고 하기도 한다. 

  이렇듯 주장들이 각각이라는 것은 아직 옛 기록 속의 고대 요수를 정확히 찾지 못했다는 말로써, 그 강의 위치를 제대로 찾으면 우리 고대 역사 속의 서쪽 경계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 

  고대 요수에 대한 기록은 옛 지리서인 산해경에 "위고의 동쪽에서 나와 동남쪽 발해에 이르러 요양으로 들어간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위고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발해가 언급되고 있고, 요양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어 사람들은 지금의 요하를 고대의 요수로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서지리지에는,  "대요수는 요새 밖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안시성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길이가 1250리이다.(大遼水出塞外 南至安市城入海 行千二百五十里)"라고 기록하고 있고,   

   신당서 고구려 전에는"대요수와 소요수가 있는데, 대요수는 말갈의 서남쪽 산에서 나와 안시성남쪽을 지나고, 소요수는 요산의 서쪽에서 나와 역시 남쪽으로 흐른다.(水有大遼少遼 大遼出靺鞨西南山 南歷安市城 少遼出遼山西 亦南流)"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수경에는"대요수는 요새 밖 백평산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요새로 들어가 요동 양평현 서쪽을 지나고, 또 동남쪽으로 흘러 방현 서쪽을 지나고, 또 동쪽으로 흘러 안시현(안평현의 오기) 서남쪽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또 원토(현토) 고구려현에 요산이 있는데, 소요수가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요대현에 이르러 대요수로 들어간다.(大遼水 出塞外衛白平山 東南入塞 過遼東襄平縣西 又 東南過房縣西 又 東過安市縣西南 入於海 又 元高句麗縣有遼山 小遼水所出 西南至遼隊縣 入於大遼水也)"라고 기록하고 있어 대요수가 요새(만리장성) 밖에서 발원하여 장성을 끊고 장성 안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하는데, 지금 만리장성은 산해관 노룡두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욕관까지 이어지므로 요수는 산해관 서쪽에서 만리장성을 끊고 흐르는 어느 강일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지금 요하를 요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한반도에 살고 있고, 요하라는 강 이름이 요수와 유사하며, 지금의 요하가 우리 역사 강역의 서쪽 경계라고 늘 배워왔기 때문에 고조선 때로부터 우리 고대 강역의 서쪽 경계가 지금의 요하까지였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앞글들에서 고구려의 졸본이 북경 서북쪽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 부근이라고 했으므로 고구려의 강역이 서쪽으로 최소한 그 부근까지였다는 말이 되는데, 수나라의 고구려 2차 침입 때의 기록을 보면 수 양제는 군사들을 탁군에서 출발시키는데, 탁군은 북경의 서남쪽에 위치한 지금의 탁주시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상건수(현 상간하) 남쪽에서 토지신령에게 제사를 지낸 다음 행군하여 요수의 서쪽에 도착하고, 그 동쪽 요수 건너에는 고구려 군이 방어를 위하여 포진한다.

  그러자 수 양제는 요수에 부교를 만들어 띄워 강을 도하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를 수나라군이 북경 부근에서 동북쪽으로 행군하여 산해관을 넘어 요하를 건넜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지금의 요하는 만리장성과는 아무 상관없이 흐르고 있으니 지금의 요하는 수경에서 말하는 장성 밖에서 발원하여 장성을 끊고 장성 안으로 흘러드는 요수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북경 서남쪽 탁주에서 북쪽으로 행군하려면 영정하를 건너야 하는데, 영정하는 남양하와 서양하동양하 그 세 강이 합해져 양하가 되고, 다시 양하와 상간하와 합해져 관청수고로 들어가 이름을 영정하로 바꾸어 흐르다가 대청하와 합해져 다시 해하로 이름을 바꾸어 발해로 흘러 들어가는데, 필자는 이 강들이 바로 대개의 경우 우리 민족과 중국과의 국경선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옛 기록 속의 요수는 바로 지금의 영정하로 비정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구려의 졸본이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으로 비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왕들에게 주어진 작위에는 "요동군 개국공" 이라 하여 고구려가 요동에서 건국했음을 밝혀주고 있고, 바로 필자가 요수로 비정하는 영정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졸본으로 비정되는 하북성 장가구시 적성현 후성진이 위치한다.

  따라서 수경에서 말하는 대요수란 지금의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고, 고구려의 요동성은 지금의 북경 부근으로 비정되는 것이다.           

  수 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 수나라 군이 요수를 건너 맨 먼저 도착한 곳은 요동성이었고, 그 다음 우문술은 압록강을 건너 동쪽으로 을지문덕을 쫓아 평양성까지 갔었다. 

  옛 기록 속의 압록강은 말갈국 백수의 강물 색깔이 오리의 머리색과 같이 녹색을 띄고 있어 압록수라고도 불렀다는 강인데, 이는 지금의 북경 북쪽 백하와 조하가 합류하여 형성된 밀운수고를 말하는 것이므로 요수는 압록수로 비정되는 백하와 밀운수고 서쪽에 위치해야 기록을 충족할 수 있고, 요동성, 신성, 안시성 등은 요수(현 영정하)와 압록강(현 백하와 조백하)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옛 기록들은 요수가 안시성(필자주 : 현 북경 북쪽 회유구 발해진으로 비정된다)의 서쪽을 흐른다고 했던 것인데, 우리는 지금 이 기록들 모두를 지금의 요하와 압록강 그리고 북한의 평양에 비정하여 역사를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수 양제가 평양성을 공격하면서 왜 그 멀리 탁군에서 군사들을 출발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요수가 탁군의 북쪽에 위치한 영정하를 말하고, 평양성이 하북성 승덕시 부근을 말한다면 우리는 이제야 수 양제가 탁군에서 군사들을 출발시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할 수 있고, 지금의 요하는 옛 기록 속의 요수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당 태종 역시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군사들을 탁군보다도 더 멀리 떨어진 정주에서 출발 시켰는데, 이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요수가 지금의 요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하북성 성도인 석가장에서 가까운 정주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당 태종도 수 양제와 마찬가지로 정주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영정하를 건너 고구려의 요동성을 맨 먼저 공격했던 것이다. 

 

  요수는 지금의 요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북경 서쪽 영정하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옛 기록들을 한반도로 끌어들여 해석함으로써 지금의 요하를 요수라고 착각해 우리 고대 역사 모두를 지금의 요하 동쪽으로 비정해 해석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요동성, 안시성 등이 요하 동쪽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그곳의 이름 모를 옛 성들에 요동성이니 안시성이니 하는 이름들을 붙여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