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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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08. 7. 10. 20:29

윤여동설 - 고대의 왜국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했었다 - 최초주장

 

 

 

 

 

                       

 

  왜국은 서기 670년 12월에 이르러 나라 이름을 "일본(日本)"으로 고쳤는데,

  그 이유는 해 뜨는 곳과 가까우므로 그렇게 이름했다고도 하고,

  "왜(倭)"라는 국호가 좋지 않기 때문에 바꾸었다고도 한다.
  이를 보면 고대의 왜국이 곧 일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0년(A.D.670) 12월 조에는, "倭國更號日本 自言近日所出以爲名(왜국이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해 뜨는 곳과 가까우므로 이름으로 삼았다고 했다)"이라 기록되어 있고, 신당서 권 220 열전 제145 동이 왜국 조에는, "惡倭名更號日本(왜라는 이름이 나쁘기 때문에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다)"이라 하였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이 한반도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대의 왜국도 당연히 지금의 일본열도에 옛날부터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고대의 왜국이 중국 양자강 남쪽에 위치했다가 언젠가 지금의 일본열도로 옮겨가게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고대 왜국의 위치에 대한 기록들이 매우 혼란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 사서들에는,

  고대의 왜국이 마한, 변한의 남쪽과 국경을 접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한(韓)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고도 하고,

  신라, 백제, 고구려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고도 기록되어 있으며,

  대방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고도 기록되어 있으며,

  백제의 남쪽 바다 건너에 위치하고 있었다고도 기록되어 있는데,

  대체적으로 우리 삼국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위치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 후한서 한전에는 한(韓)의 동남 대해 중에 왜가 위치했으며, 마한과 변진(변한)의 남쪽과 왜가 국경을 접했다고 했고, 삼국지 한전에는 대방의 남쪽에 한이 위치하고 있었고, 다시 한의 남쪽에 왜가 위치했다고도 기록되어 있으며, 신당서에는 "일본은 옛날의 왜노국이다. 경사에서 1만4천리 떨어져 있다. 신라의 동남쪽 바다 가운데의 섬에 산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통전에는 "왜는 대방 동남 대해 중에 있는데, 산과 섬을 의지해 살고 1백여국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구당서 백제국전에는 백제에서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왜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현재 우리의 일반적인 역사상식으로는 한반도가 우리 고대 역사의 중심지였고, 지금 일본열도 역시 고대 왜국의 중심지였다고 역사를 해석할 수밖에 없지만, 사서의 기록들은 지금의 한반도는 우리 고대 역사의 중심지가 아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 남쪽 또는 동남쪽에 위치했다는 고대의 왜국 역시 지금의 일본열도가 될 수 없다.
  우리의 한(韓: 삼한)은 방 4천리에 이르는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했으므로 방 1천리 밖에 안 되는 한반도 남부에 방 4천리의 삼한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수서 신라전에는, "신라국은 고(구)려의 동남쪽에 있다.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사는데, 혹은 사라라고도 부른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기록이 정확하기로 유명한 북사 신라전에도, "신라는 그 선조가 본래 진한의 종족이다. 땅이 고구려의 동남쪽에 있는데, 한나라 때의 낙랑에 산다. 진한(辰韓) 또는 진한(秦韓)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와 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함께 군사작전을 감행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던 당나라의 역사서인 신·구당서에도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중국 사서들은 한결같이 한나라 때의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에 대하여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시작된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한나라 때의 낙랑군은 지금의 북경 부근에 설치되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전한의 무제가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네 조각으로 나누어 한사군을 설치했는데, 이때 낙랑군의 치소는 위만조선의 도읍이었던 왕험성(왕검성)에 두었다고 한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이 옛 왕검성이고 낙랑군의 치소였으며, 고구려의 평양성으로 비정되는 곳이다.
     
  이 말은 곧 우리의 고조선·위만조선·삼한·삼국의 중심 강역이 한반도가 아닌 북경 부근이었다는 말로써,

  하북성 당산시 풍윤을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 마한이었고,

  마한의 동북쪽인 진황도 도산 일원이 백제,

  요녕성 금주시(錦州市)부근이 진한, 호로도 흥성 부근이 변한이었고,

  신라·백제의 북쪽인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승덕시, 내몽골 적봉시 일원에 고구려가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 고대 역사의 중심강역은 한반도가 아닌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었다.
  따라서 그 남쪽 또는 동남쪽에 고대의 왜국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사서들은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 이러한 기록들을 잘못 이해하고는 고대의 왜국이 중국 대륙의 남부인 양자강 남쪽에 위치했다고도 하고, 우리의 삼국이나 고려, 조선이 중국 대륙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고도 하며, 대만이 고대의 왜국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으니 정말 엉터리같은 주장이다.
 
  그렇다면 고대의 왜국은 어디에 위치했다는 말일까?
  당나라의 도읍은 지금의 섬서성 서안이었는데, 구당서에는 백제의 위치에 대하여, 경사에서 동쪽으로 6,200리에 있다고 했고, 왜국은 경사(서안)에서 1만4천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보다 훨씬 먼 곳에 왜국이 위치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후한서에는 왜국이 낙양에서 1만2천리 떨어져 있다고 했고, 양직공도 왜국사 조에는 양나라에서 왜국까지가 만여리라 기록되어 있는데, 중국 사신들이 왜국을 갈 때는 반드시 한(韓)이나 대방, 또는 백제를 경유해서 가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고, 왜국 사신이 중국에 갈 때는 대방을 경유하여 장안이나 낙양까지 갔다고 한다.
 

 

☆ 우리는 지금까지 왜국 사신이 반드시 대방을 경유해서 갔다는 사서들의 기록들에 대하여 지금의 일본열도에서 한반도의 황해도에 위치했을 대방을 경유해서 서안 또는 낙양까지 갔던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었으나 대방군은 한반도의 황해도에 설치되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 지금의 북경 동쪽 준화 부근에 설치되었었고, 후한 광무제가 살수이남 땅에 설치했던 후한낙랑군은 하북성 승덕시 흥륭현 일원에 설치되었었다. 대방군과 낙랑군은 바로 옆에 접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이나 대방 또는 백제의 위치가 지금의 북경 부근을 말한다면 왜국(일본)의 위치도 새롭게 비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당서 권199상, 열전 제149상 동이 일본국전에는,

  "그 나라의 경계는 동서남북 각 수천 리이다.

  서쪽 경계와 남쪽 경계는 대해에 이르고,

  동쪽 경계와 북쪽 경계는 큰산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산 너머는 곧 모인국(毛人國)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일본(왜국)이 섬나라가 아니라 서쪽과 남쪽만 바다와 접했고, 동쪽과 북쪽은 육지와 접하였다는 말이 된다.

 

☆ 모인국이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를 지칭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몸에 털이 많이 난 사람들이 사는 나라 또는 털옷을 입고 사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말하는 것으로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고대 일본(왜국)이 지금의 일본열도에 위치했었다는 말이 아니라 북경부근에 위치했던 대방의 동남쪽인 지금의 요동반도 부근에 위치했다는 말로서, 일본의 남쪽바다란 지금의 황해, 서쪽바다는 발해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강역이 사방 수천리라고 했으니 일본이 요동반도를 중심으로 꽤나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왜국의 강역에 대하여 신당서에는 동서는 5개월을 가야 하는 거리, 남북으로는 3개월을 가야하는 거리(東西五月行 南北三月行)라고 기록하여 왜국의 강역이 매우 넓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일본은 지금의 요동반도 부근에서 언젠가 일본열도로 옮겨갔다는 말이 된다.
  우리의 조선은 이성계가 대륙에서 고려를 멸망시키고 왕위에 오른 후 도읍을 대륙의 개경에서 한반도의 한양으로 옮김으로써 한반도가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고려 말에도 남해안에 왜구들의 노략질이 심했고, 조선 초에도 남해안에 여전히 왜구들의 노략질이 심했다.
  그리고는 그로부터 약 200년 후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조선이 대륙의 개경에서 한반도의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시기인 14세기 말경 일본 역시 지금의 일본열도로 도읍을 옮겨갔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 조선도 대륙에 위치했으며, 임진왜란도 대륙에서 일어났던 전쟁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기록이 이상한 것은 사실이나 조선이 임진왜란 때까지도 우리의 옛 강역인 난하 부근에 그대로 있었고, 일본도 그때까지 요동반도 부근에 그대로 있었다면 임진왜란은 지금의 발해를 건너온 일본이 호로도, 진황도, 당산부근을 차지하고 있던 대륙의 조선을 침공했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면 지금 한반도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로부터 순종까지 조선왕릉이 한반도에 조성되어 있는 것과 경복궁 등 조선왕궁이 서울에 있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해야 하며, 각 성씨들의 조선시대 선조들의 묘가 한반도에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때 대륙의 조선과 일본은 무슨 이유로 수천 년 간 조상 대대로 살아온 옛 강역을 떠나 한반도로, 일본열도로 도읍을 옮겨야 했던 것일까?
  누가 그 이유를 명쾌하게 밝혀줄 것인가?
  

 

☆ 일반 사대부가에서도 가문이 평탄하게 이어져 왔다면 조상의 묘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없는데, 하물며 만세일계라고 자랑하는 지금 일본 왕실에서 자기들 역대 천황들의 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도저히 말이 되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그들이 언젠가 옛 강역인 요동반도 부근으로부터 지금의 일본열도로 옮겨갔기 때문이라 이해하면 설명이 가능하다. 
  따라서 지금 요동반도 끝에서 발견된 고대 절대 권력자의 무덤인 강상무덤과 누상무덤은 옛 천황들의 무덤이거나 왜국의 먼 선조들의 무덤일 것이다.
  일본은 독도가 일본 땅이니 어쩌니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계속할 일이 아니라 요동반도가 자기들의 옛 땅이었다는 것을 밝혀보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나라 옛 땅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바보같은 일본 역사학자들 같으니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