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대륙 역사강역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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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한국,중국,일본이 역사를 거짓말로 해석하는 이유(1) - 한국편

윤여동 2008. 10. 27. 11:51

한국·중국·일본이 역사를 거짓말로 해석하는 이유(1) - 한국편

 

 

  고대 역사를 착각하고 옛 땅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르고 역사강역을 잃어버리고 있는데도 그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한국, 청나라 때의 강역을 고착화시켜 역사강역을 최대한 넓히려고 안달하는 음흉한 중국, 천황의 정통성 때문에 자신들의 대륙역사 강역을 주장하지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진 일본.
  지금 이 세 나라는 고대 역사의 해석을 모두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데, 중국이나 일본은 그들이 목적하는 바가 있으나 한국은 아무 이득도, 명분도 없는 일에 멋도 모르고 덩달아 춤을 추고 있고, 옛 강역을 스스로 잃어버리고 있으니 정말 바보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역사를 착각하고 있는 바보 같은 한국

 

  우리 역사의 상고시대로부터 고대 역사의 중심지는 한반도가 아닌 지금 중국 하북성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었다.
  그 부근은 우리의 옛 땅이었다.
  난하가 곧 패수였고, 지금 중국 하북성 승덕시의 피서산장(열하행궁)이 바로 왕검조선, 위만조선의 왕험성(왕검성)이었고, 전한 낙랑군의 치소였으며, 고구려의 평양성이었다.
  왕검조선은 하북성 승덕시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나라였으며, 숙신은 대흥안령산맥 일원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조선의 왕험성(왕검성)이 패수의 동쪽에 위치했다는 중국 사서들의 기록은 바로 난하의 동쪽인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이 난하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설명한 것이었고,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이 남쪽으로 패수에 닿았다는 기록 역시 난하가 승덕시의 서북쪽에서 발원하여 서쪽과 남쪽을 지나 흐르기 때문이었고, 숙신, 말갈, 여진이 고조선, 고구려, 고려의 동북쪽에 위치했었다는 기록들은 바로 이러한 지리적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또한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고 있었고, 한나라 때의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시작되었다는 중국사서의 기록들은 우리가 지금 한반도 경주에서 건국되고 멸망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신라가 한반도가 아닌 만리장성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고, 신라의 서쪽에 백제가 있고, 남쪽에 가야가 있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 역시 호로도의 서쪽인 당산, 진황도 일원에 우리의 백제가 위치하고 있었고, 요녕성 흥성 부근에 우리의 가야가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또한 백제의 건국초기 동쪽에 낙랑이 있고, 북쪽에 말갈이 있었다는 말은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설치되었던 한사군 중의 전한낙랑군 또는 낙랑동부도위가 진황도 부근 가까이까지를 차지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고, 말갈이 대흥안령 부근으로부터 남쪽으로 영성 부근까지 진출해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백제의 북쪽에 고구려가 있고, 동쪽에 신라가 있으며, 남쪽 큰바다 가운데에 왜가 위치하고 있었다는 기록들은 백제의 중심 강역이었던 당산, 진황도의 북쪽인 승덕시 일원에 고구려가 위치하고 있었고, 당산, 진황도의 동쪽인 호로도 일원에 신라가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며, 발해건너 남쪽인 요동반도 부근에 고대의 왜가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 서기 44년에 후한의 광무제가 살수이남 땅을 탈환하여 설치한 후한낙랑군은 하북성 흥륭현 일원으로서 당산의 바로 북쪽에 위치하게 되어 이후의 기록에는 낙랑이 한과 백제의 북쪽에 위치했었고, 대방과 이웃하고 있었다는 기록들이 남겨지게 된다.  

 

 
  또한 고려 시대까지도 한반도는 역사의 중심 강역이 아니었다.
  고려의 개경은 하북성 승덕시 관성현 부근으로서 고려의 중심 강역 역시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었다.
  그러다가 조선이 건국되어 도읍을 대륙의 개경에서 한반도의 한양으로 옮기면서 한반도는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다.

 

☆ 앞서 백제의 무광왕이 서기 365년경 대륙에서 근초고왕과의 왕위찬탈전에서 패하고 한반도로 도망쳐 와 다시 백제(반도백제)를 세워 1백여년 후 대륙백제를 흡수통합 함으로써 한반도에 백제의 흔적들이 남게 된다.


  

  그러자 조선왕조에서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역사지리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고조선, 기자조선의 정통성을 조선이 이었다고 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옛 왕검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의 역사가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그렇게 만들어진 대표적인 역사지리서로서 고대의 역사와 한반도의 지리적 상황을 한 책에 담아버렸다.
  그리하여 한반도에서 살면서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한반도가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의 중심 강역인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이 착각은 조선 500년을 지나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필자 같은 사람들이 우리 고대 역사의 중심 강역이 한반도가 아니라 북경 부근의 넓은 대륙이었다고 아무리 말해줘도 귀를 막아버리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역사 인식으로는 한반도가 아닌 지금 중국의 난하를 중심으로 한 그 부근이 우리의 옛 땅이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조선 500년 동안 왜곡되어 전해진 역사인식에서 탈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반도사관에 찌들어 한반도 밖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사서들에는 삼한의 강역이 방 4천리였다고 한결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방 1천리에 지나지 않는 한반도 남부에 어찌 방 4천리 강역의 한이 위치할 수 있었을까?
  마한은 지금의 하북성 당산시 북쪽 풍윤 부근에 도읍하고 그 주변을 넓게 차지하고 54소국을 거느렸고, 진한은 요녕성 호로도 금주 부근에 12개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변한은 요녕성 호로도 흥성 일원에 역시 12개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마한의 동북쪽인 진황도 도산  일원에서 건국한 백제가 마한 땅 일부를 병합할 수 있었던 것이고, 난하 건너 동쪽의 신라, 가야와 강역을 다투었던 것이다.   
  하북성 장가구시, 승덕시 일원은 고구려였고 도읍 평양성은 전한낙랑군의 치소였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피서산장(열하행궁)이었으며, 그 북쪽인 내몽골 정람기 부근은 동부여 땅이었고, 내몽골 적봉, 옹우특기 부근은 동옥저였으며, 고륜기 일원은 예의 땅이었고,  그 북쪽 대흥안령은 말갈(숙신)이었다.
  발해는 중경현덕부인 내몽골 파림우기, 상경용천부인 파림좌기를 중심으로 사방 5천리 땅을 차지하고 있었고, 고려의 도읍 개경은 하북성 승덕시 관성현 부근이었다.
  고려의 동북9성은 한반도의 동북쪽에 쌓았던 성이 아니라 하북성 승덕시 관성현의 동북쪽인 대흥안령산맥에 쌓았던 것이고, 천리장성 역시 한반도의 압록강 하구로부터 동해안까지 쌓았던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요하는 옛 요수가 아니라 지금의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가 바로 옛 요수이고, 말갈국 백수의 강물빛이 청둥오리의 머리색과 같았다는 압록수는 바로 북경 북쪽을 흘러 밀운수고로 흘러드는 백하를 말하며, 수나라의 백만대군을 수장시킨 살수는 풍녕 부근으로부터 고북구를 지나 밀운수고로 흘러드는 조하를 말하는 것으로서 살수 전투는 지금의 고북구 부근에서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다.
  또한 지금의 요동은 옛 요동이 아니라 북경 부근의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이 옛 요동벌이었다.
  요동군의 치소는 지금의 북경 부근으로 비정되고 대방군 역시 한반도의 황해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북경 동쪽 준화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공손도를 위시한 공손씨 일가가 한반도의 황해도까지 와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 그들은 지금의 북경 부근에서 요동왕을 칭했고, 연왕을 칭하다가 위나라의 사마의에게 토벌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대륙의 북경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삼국의 기록인 삼국사기를 한반도로 가져와 한반도의 지형에 맞추어 역사를 해석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고구려의 졸본을 찾을 수 없고, 국내성을 찾을 수 없으며, 환도성을 찾을 수 없고, 백제의 위례성을 찾을 수 없고, 한성도 찾을 수 없으며, 기벌포도 찾을 수 없고, 탄현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삼국사기에 한반도 지형과 어울리지 않는 기록들이 수두룩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조선시대 사람들이 조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왜곡시켜 기록해 놓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한반도 역사의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한반도가 아닌 중국 하북성 난하 부근에 살았던 김부식을 위시한 고려의 학자들과 승려 일연이 그 부근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이며, 고려사 역시 한반도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 아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에 한반도에 관한 기록은 없다.  
  고려로부터 그 이전의 역사서는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중국 하북성 난하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지금 한반도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로부터 그 이후의 기록만이 한반도에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역사를 착각하고 있으면서도 착각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아아 한민족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