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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영 - 고구려 유리왕의 일생(1)

윤여동 2008. 12. 8. 14:50

윤나영 - 고구려 유리왕의 일생(1)

 

- 삼국건국의 아침(윤나영 지음, 경향미디어)에서 발췌-  

 

  고구려 유리왕은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왕(추모왕)의 장자로서 태어난 곳은 동부여이고, 때는 기원전 58년이었으며,

  유리가 태어나기 전인 이해 봄에 그 아버지 주몽은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갔다.
  그리고 유리왕의 할머니인 유화가 죽은 해는 기원전 24년이었고,

  유리(후일의 유리왕)가 어머니인 예씨와 친구인 옥지, 구추, 도조와 동부여를 탈출하여 졸본에 도착한 때는 기원전 19년 4월이었다.
  따라서 유리는 약 40세의 나이에 졸본으로 아버지 주몽을 찾아와 고구려의 태자에 봉해졌다는 말이 되고, 예씨 역시 20세쯤의 꽃다운 나이에 주몽과 헤어졌다가 60세쯤의 노파가 되어서야 주몽과 재회했던 것이다.

 

☆ 노총각 유리가 고구려의 왕이 되어있던 아버지인 주몽을 찾아온 때 그의 나이는 40세쯤이었다. 그는 동부여에서 도망쳐 올 때 어머니인 예씨와 친구 세 사람과 왔다고 할 뿐 부인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나이 40세쯤이라면 혼인을 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장가를 못간 노총각이었을 가능성도 많다.
  왜냐하면 유리왕은 언젠가는 동부여를 탈출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일부러 혼인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고, 또 혼인을 하려고 해도 그들은 역적의 가족으로 몰려 인질로 잡힌 몸이 되어 감시와 멸시 속에서 가난하게 살았을 것이므로, 동부여 어느 부모가 역적의 아들인 유리에게 자기 딸을 시집보내려고 했겠는가?

 

 

그런데 유리왕은 동부여에서 탈출하여 아버지인 주몽을 찾아와서도 바로 혼인을 하지 않았다.
  아마 20여 년 전 동부여에서 은영과의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상처가 그때까지도 유리의 가슴속 한 편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유리는 평생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했었고, 실제로 그는 그 이후 여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앞서,
  주몽이 동부여를 떠난 지도 어언 10여 년.
  아들인 유리도 많이 자랐다.
  아버지 주몽을 닮았는지 활쏘기를 하면 백발백중이었다.
  그리하여 이웃집 부인네의 물동이에 활을 쏘아 깨뜨리기도 하는 말썽꾸러기가 되어, 애비 없는 자식 취급을 받으며 자라야 했다.
  기록을 보면 그녀(주몽의 부인 예씨)는 주몽이 동부여를 탈출한 후 졸본으로 가서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정확히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그리하여 어느 날 유리가 아버지에 대하여 묻자 모든 사실을 말해주게 된다. 즉 주몽이 남쪽나라 졸본부여 왕이라는 사실과, 주몽이 동부여에서 도망치기 전에 일곱 모진 돌 위 소나무 밑에 숨겨 놓았다는 부러진 칼 토막 이야기를 유리에게 들려주어, 결국 유리는 그 칼 토막을 자기 집의 기둥아래에서 찾았고, 그 후 유리는 어머니인 예씨와 함께 동부여에서 탈출하여 주몽을 찾아왔는데, 이때 주몽이 가지고 있던 칼 토막과 맞추어 보니 딱 맞아 한 자루의 칼이 되므로 주몽이 자기의 친아들임을 인정하고 태자로 봉하게 되었다고 한다. 
  요즈음 같으면 유전자 검사를 하면 바로 자신의 친아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지만 만약 유리가 그 어머니 예씨와 함께 졸본으로 오지 못했더라면 유리 스스로 주몽의 친아들이라고 주장해봐야 그를 믿어줄 사람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를 누군가가 지어냈을 것이다.

 

☆ 물론 칼 토막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로서 유리는 그 어머니인 예씨와 함께 동부여를 탈출하여 졸본으로 주몽을 찾아갔기 때문에 사실 신분을 확인할 칼 토막 같은 증거품은 필요 없었다.

 

  그렇지만 주몽의 아들 유리가 동부여에서 태어나 애비 없는 자식 취급을 받으며, 역적의 가족으로서 동부여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며 자랐던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렇듯 상황은 어려웠지만 유리가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자 그에게도 사랑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유리를 죽도록 사랑한 한 여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 여인은 다름 아닌 유리가족의 감시를 책임졌던 관리의 딸 은영이었다.
  은영은 자기 아버지로부터 유리가 천제 해모수의 후손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가 지금 졸본부여의 왕이 되어 있다는 말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호기심이 생겨 어느 날 아버지 몰래 유리의 집 부근에 가서 멀리서 유리를 훔쳐보았다.
  키는 훤칠했고, 귀티가 나는 총각이었다.
  은영은 한눈에 유리를 사모하게 되었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유리가 역적의 가족이 되어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었고 혼자 애만 태워야 했다.
  역적의 가족과 왕래를 했다가는 큰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어 애만 태웠다.  
  그리하여 은영은 유리의 할머니가 베를 짜서 장날마다 시장에 내다 팔며, 이때에는 감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내 장날이 되면 일부러 그 베를 사러 시장에 가곤 했다.
  그리고는 그 베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벌, 두벌 옷은 늘어갔다.
  은영의 집에서는 그녀가 바느질 연습을 열심히 한다고 좋아라 했다.
  그러다보니 그녀가 베를 사러 시장에 간다고만 하면 허락이 바로 떨어졌다.
  그렇게 한번, 두 번 베를 사게 되니 은영은 유리의 할머니인 유화와도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유화도 은영의 신분에 대해서 자세히는 잘 모르고, 어느 양반 가의 딸로서 시집갈 나이가 되어 천을 사다가 바느질 연습을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유화는 예쁘게 생긴 은영을 볼 때마다 저렇게 예쁘고 상냥한 손주며느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자기들이 역적의 가족으로 몰려 감시를 받고 있는 처지이니 은영과 같은 손주며느리를 얻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화는 여느 때와 같이 베를 팔러 시장에 나왔다.
  은영도 시장에 나갔는데, 이날 은영의 손에는 보따리가 들려져 있었다.
  은영은 유리의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할 작정이었다.
  그리하여 할머니가 베를 다 팔기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유화를 따라갔다. 조용한 곳에 이르자 은영은 유화를 쫓아가
  "할머니, 잠깐만요"
  유화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처녀가 웬일이야?"
  "제 이름은 은영이라고 합니다. 할머니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따라 왔어요"
  "나에게? 무슨 부탁?"
  "저... "
  "어려워 말고 어서 말해봐요" 
  은영은 더듬거리며 
  "저... 이것은 제가 만든 옷인데요... 할머니 손자 분 드리려고 제가 만든 거예요... "라고 하면서 유화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면 이 옷을 우리 유리에게 가져다 주라는거유?"
  은영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돌아서서 도망치듯 달려갔다.
  옷 보따리를 받아든 유화는 생각했다.
  "저 처녀가 우리 유리를 좋아하고 있었단 말인가?   
  저 처녀가 어느 집 딸이기에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 유리를 좋아하게 되었단 말인가?"
  유화는 돌아오는 내내 이런 저런 생각을 해가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찌 되었든 장가갈 나이가 된 유리를 좋아한다는 처녀가 나타났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집에 와서 보따리를 끌러보니 남자의 옷이 한 벌 들어 있었고, 유리의 앞으로 되어 있는 편지도 한 통 들어 있었다.
  유화는 그 처녀의 신분을 알 수 없어 옷과 편지를 장롱 속에 그냥 넣어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장날 은영이 베를 사러 시장에 왔다.
  그리하여 유화는 은영에게 자초지종을 물어 보았다.
  은영도 더 이상 숨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자기의 신분과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유화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할머니,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유리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세요. 네?"
  그러나 유화는 조심스러웠다. 지금 당장 대답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들을 감시하는 책임자의 딸이 유리를 사랑하고 있다니,
  인연치고는 묘한 인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유화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중간에서 가로막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동네 뒷산에 소원을 들어주는 바위가 있으니 내일 점심때쯤 그곳에 가서 같이 기도하자고 말해 주었다.
  집에 돌아온 유화는 며느리인 예씨에게 "내일은 산에 가서 기도를 좀 해야겠으니 제물을 준비해주렴" 하고는 유리에게도
  "내일 할머니랑 같이 산에 좀 가자. 길도 험하고 짐도 있으니 네가 들어다 주어야겠다"고 말해 두었다.
  유리도 지금까지 수도 없이 할머니가 기도하시는 곳을 갔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다음날 새벽 유화는 손자인 유리와 함께 뒷산에 올랐다.
  그곳에는 아주 높이 솟은 바위가 있어 유화는 틈날 때마다 그 바위아래에서 기도를 하곤 했다. 그래서 유리는 그 바위를 기도바위라고 불렀는데, 할머니는 그 바위가 소원을 꼭 들어주는 소원성취바위라고 했다.   
  할머니의 기도는 점심때까지 계속되었다. 유리 역시 아버지를 빨리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천지신명에게 빌었다.
  기도를 하고 있던 유화가 유리를 부르더니
  "유리야, 저 아래 사람이 올라오지 않느냐?"
  "웬 여자가 올라오는 것 같은데요?"
  "그럼 네가 내려가서 지금 올라오고 있는 사람의 짐을 좀 받아 가지고 오너라."하였다.
  유리는 할머니 친구 분이 기도하러 올라오는 것으로만 알고 얼른 내려갔다.
  할머니 또래의 노인일 것으로 생각하고 산을 내려가 보니 의외로 젊은 처녀였다. 
  그리하여 유리는 할머니가 짐을 받아 올라오라고 하여 내려왔노라고 말하고 짐을 받아 들었다. 처녀는 아주 예뻤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 같았다.
  처녀는 유리를 한참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땀을 닦으며 나무 그늘 아래 바위에 걸터앉았다. 유리도 바위 한편에 걸터앉았다.
  "저는 은영이라고 합니다."목소리도 아주 맑았다.
  "난 유리라고 하오. 기도를 하러 산에 오르시는 건가요?"
  "예, 할머니께서 이곳에 소원을 들어주는 바위가 있다기에 소원을 빌러 가는 겁니다."       
  "무슨 소원이 있기에..."
  "그냥..."
  은영은 유리를 가까이서 만나게 되어 가슴이 벅차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조금 쉬었다가 둘이는 나란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한 쌍의 신혼부부 같았다.
  오르는 길에 위험한 절벽 길을 통과하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 이르자 유리는 은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은영은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길이 워낙 험하여 둘이는 손을 꼭 잡고 그곳을 통과해서 할머니에게로 왔다.
  할머니는 그때까지도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은영도 할머니 옆으로 가더니 아무 말 없이 바위에 수도 없이 절을 하면서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유리는 소원이 많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지났을까?
  할머니와 은영은 기도를 마치고 나자 아무 말 없이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물론 유리는 그 웃음의 의미를 몰랐다.
  셋이서 둘러앉아 점심을 먹을 때 유화가 말했다.
  "유리야, 이 처녀 예쁘게 생겼지?"
  "이 할미는 이렇게 예쁘고 상냥한 처녀가 손주며느리가 됐으면 좋겠는데..."
  "유리는 얼굴이 붉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은영 역시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이렇게 그들은 처음 만나게 되어 한 1년 동안 남모르게 만나 사랑을 속삭였다.
  그런데 그들에게 위기가 닥쳐오고 있었다.
  은영의 집에서는 은영을 그 지방 호족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은영은 애가 탔다. 사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 
  은영은 유리를 만나 이대로 있다가는 꼼짝없이 시집을 가게 생겼으니 같이 도망가자고 하였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둘이서 숨어살면 되지 않느냐고도 했다.
  그러나 유리는 은영의 그러한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할머니인 유화와 어머니 예씨와 함께 동부여에 인질로 잡힌 몸이기 때문이었다.
  철이 들면서부터는 자기가 천제인 북부여 해모수의 혈통을 이어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할머니인 유화와 어머니인 예씨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 주었다. 물론 아버지인 주몽이 왕이 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유리는 고민을 했다.
  사랑하는 은영을 그대로 보내기는 싫었다.
  그리하여 유리는 용기를 내어 은영의 아버지에게 사실을 말하고, 은영과 혼인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말했다.
  은영의 아버지는 펄쩍 뛰었다.
  유리가 졸본부여 왕의 아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는 동부여이지 졸본부여가 아니었고, 은영의 아버지는 유리가 평생 이곳에서 인질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의 직책상 그러한 역적의 아들에게 딸을 시집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이튿날부터 유리는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말라는 금족령이 떨어졌다.
  은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는 은영의 집에서는 호족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은영은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해봤지만 허사였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호족의 아들에게 꼼짝없이 시집을 가야할 상황이 되어갔다.
  그리하여 그녀는 혼인식을 올리기 며칠 전에 결국 자기 방 대들보에 목을 매어 죽고 말았다. 
                                      

                                           -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