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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이부란 소제 시원5년 이후의 낙랑군과 현토군을 말하는 것 - 최초주장

윤여동 2009. 1. 16. 00:05

윤여동설 - 삼국유사 이부(二府) 조의 새로운 해석이부란 소제 시원 5년 이후의 낙랑군과 현토군을 말하는 것 - 최초주장

 

 

 

 이부(二府)
  전한서(前漢書)에 이르기를,
  "소제(昭帝) 시원(始元) 5년(B.C.82) 기해년에 두 외부(外府)를 두었다. 
  이것은 조선(朝鮮)의 옛 땅인 평나(平那)와 현토군(玄토郡) 등을 평주도독부(平州都督府)로 삼고, 임둔(臨屯)·낙랑(樂浪) 등 두 군(郡)의 땅에 동부도위부(東部都尉府)를 둔 것을 말함이다."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전한서 조선전에는 진번·현토·임둔·낙랑 등 네 군郡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에는 평나(平那)가 있고 진번이 없으니 대개 한 지방을 두 이름으로 불렀던 것 같다]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는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는 그 땅을 나누어 네 군을 설치했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한사군으로서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 현토군이었다.
  그런데 기원전 82년에 이르러 임둔군을 예(동예)에게 빼앗기게 되고, 진번군을 맥에게  빼앗기게 되자 두 군을 폐지할 수 밖에 없었고, 또 초기 현토군(원래 옥저에 설치하였었다) 땅에서 옥저(필자주 : 북옥저, 동옥저, 남옥저가 있었다)가  독립하는 상황에 이르자 한(漢)나라에서는 그 땅을 포기하고 현토군의 관할지를 구려의 서쪽인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 부근으로 이동시켜 동부여, 졸본부여의 침공을 방어토록 조치하게 된다. 
  그리고는  현토군의 일부 남은 땅(남옥저)과 진번군의 일부 남은 땅(노합하 서쪽지역)을 낙랑군에 붙여 이관하게 된다.  
  한편 낙랑군에서는 그 땅을 이관 받고 보니 그 땅이 단단대령(필자주 : 지금의 칠로도산산맥으로 비정된다)이라는 높은 산맥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관할하기가 매우 곤란하자 새로이 낙랑동부도위를 설치했고, 낙랑군의 남쪽인 지금의 무령산 남쪽을 나누어 낙랑남부도위를 새로이 설치하게 되는데, 낙랑동부도위는 지금의 객라심, 영성 일원이고, 낙랑남부도위는 지금의 하북성 흥륭부근이었다.  
 

  그리고 평나와 현토군에 평주도독부를 두었다는 것은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 부근을 말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