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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라?

윤여동 2009. 3. 30. 07:34

윤여동설 -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라?

 

 

   우리나라 사람 중 대부분은 가야가 경남 김해 부근에 위치했다고 인식하고, "임나" 하면 "임나가라(임나국)"와 "임나일본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임나일본부에 대하여 일본학자들은 고대의 왜국이 한반도 남쪽 가야지역으로 진출하여 그곳에 임나일본부라는 것을 설치하고 한반도 남부를 일정기간 통치했다고 주장하고, 우리 학자들은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삼국유사 기이 제1 오가야 조를 보면,
  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소가야를 5가야로 기록하고 있는데, 수로왕의 금관가야까지 합하면 6가야가 된다. 
  그리고 일연이 살았던 고려시대의 본조사략이라는 사서에는 "태조 천복 5년(A.D.940) 경자년에 5가야의 이름을 고쳤다.
  첫째는 금관가야, 둘째는 고령가야, 셋째는 비화가야, 넷째는 아라가야, 다섯째는 성산가야(벽진가야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임나가야(임나가라)는 보이지 않는다.
  후한서 한전을 보면,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국이 있고, 그 북쪽은 낙랑, 남쪽은 왜와 접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국이 있고, 그 북쪽은 예맥과 접했다. 변진(변한)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왜와 접했다. 모두 78국이며 백제는 그 중의 한 개 나라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한 전에도 "한은 대방의 남쪽에 있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한계로 했고, 남쪽은 왜와 접했다. 땅이 사방 4천리이다. 삼종이 있는데 마한, 진한, 변한이고 진한은 옛 진국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매우 귀중한 기록인 진한과 변한(변진) 24개국의 이름을 "이저국, 불사국, 변진미리미동국, 변진접도국, 근기국, 난미리미동국, 변진고자미동국, 변진고순시국, 염해국, 변진반로국, 변진낙노국, 군미국, 변진미오사마국, 여담국, 변진감로국, 호로국, 주선국, 마연국, 변진구사국, 변진주조마국, 변진안사국, 변진독로국, 사로국, 우유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정리해보면 변한(변진) 12국은 "변진미리미동국, 변진접도국, 변진고자미동국, 변진고순시국, 변진반로국, 변진낙노국, 변진미오사마국, 변진감로국, 변진구사국, 변진주조마국, 변진안사국, 변진독로국"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도 역시 임나가라(임나국)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호태왕 비문 영락 10년 경자년(A.D.400) 조를 보면, "영락 10년 경자년에 교시로서 보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하도록 하였다. 남거성으로부터 신라성까지 왜인으로 가득했는데 관군이 그곳에 이르니 왜적이 퇴각했다. 왜의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에 있던 안라인(安羅人)들이 즉시 항복하므로 신라성 군사들을 뽑아 지키게 하고, .............성에서 왜구를 크게 궤멸시키고 성내에서 왜를 따라 항거하는 안라인 열에 아홉을 모두 쳐부수고 신라성 군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임나가라의 존재가 나타나고 안라인(安羅人)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서기 400년에 안라인이 살던 곳 부근에 임나가라가 위치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때 신라는 나물이사금 45년이었다.  
    
  그렇다면 가야는 과연 지금의 어디에 위치했던 것일까?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의 파사이사금이 "(신라가) 서쪽으로는 백제와 이웃하고, 남쪽으로는 가야와 접했다"고 말하고 있고, 또 마한의 동북쪽에서 백제가 건국되었다는 기록과 진한에서 신라가, 변한에서 가야가 건국되었음을 감안해 보면 신라, 백제, 가야는 바로 이웃한 국경을 접한 나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가야에 대하여 중국 사서들이 직접 언급한 기록은 남제서 가라(加羅) 전에,

  『가라국은 삼한의 한 종족이다. 건원 원년(A.D.479) 국왕 하지(荷知)가 사신을 보내와 지방 특산물을 바쳤다. 이에 조서를 내려 "널리 알려져 비로소 조공을 바치니 멀리 있는 오랑캐도 덕에 감화된 것이다. 가라왕 하지는 멀리 바다 밖 동쪽에서 폐백을 받들고 관문을 두드렸으니 보국장군 본국왕(가라국왕)의 작위를 준다" 하였다』라고 나타날 뿐이고, 앞서 살펴보았듯이 후한서와 삼국지 한 전에는 가야의 전신인 변한(변진)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 변진(변한)의 위치를 정확히 찾으면 가야의 위치도 찾을 수 있게 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삼한의 위치를 한반도로 비정하여 마한을 서울, 경기, 충청, 전라도로, 진한을 경상북도로, 변한을 경상남도 쯤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일 수 있는 것일까?
  후한서와 삼국지는 한(韓)의 강역이 방 4천리인 대국이었으며, 마한에는 54개 소국이 있었고, 진한에는 12개 소국, 변한(변진)에도 12개 소국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남한의 면적은 방 1천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방 4천리 강역의 삼한이 사방 1천리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어 모순이 발생하게 되므로, 중국 사서들이 잘못 기록했거나 우리가 지금 역사를 잘못 알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록에 나타나고 있는 삼한과 주변국을 살펴보자.
  후한서와 삼국지 한전의 기록에 의하면 마한은 서쪽, 진한은 동쪽, 변진(변한)은 진한의 남쪽에 위치했다고 했고, 마한의 북쪽에는 낙랑, 남쪽에는 왜가 위치했고, 진한의 북쪽은 예맥, 변진(변한)의 남쪽에도 왜가 위치했다고 했고, 한이 대방의 남쪽에 위치했다고도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를 종합하여 그림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낙랑                                 예맥

                       

                       대방


             
            마한                        진한       
          
                 
                                      왜           변한(변진)
                 

    

  그런데 중국 사서들은 한결같이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필자주 : 낙랑동부도위일 것이다) 땅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한나라 때의 낙랑은 한반도가 아닌 하북성 승덕시 부근에, 낙랑동부도위는 그 동쪽인 지금의 칠로도산 동쪽에 위치했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동쪽에 낙랑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한데,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신라는 진한 땅에서 건국되었고, 백제는 마한의 동북쪽 땅에서 건국되어 마한을 병합했고, 가야는 변한 땅에서 건국된 나라이다.
  이 말은 곧 우리의 신라가 한반도 경주 부근에서 건국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되니 백제와 가야 역시 그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라가 낙랑동부도위와 가까운 지금의 요녕성 조양, 금주시(錦州市)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백제는 그 서남쪽인 하북성 당산, 진황도 일원에 위치했을 것이고, 가야는 호로도와  당산 사이 지역인 흥성, 수중 쯤에 위치했을 것이고, 대방이나 예, 왜도 모두 그 부근에 위치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인데, 우리는 지금 이들 모두를 한반도를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나가라(임나국) 역시 한반도 남쪽에 위치했던 것이 아니라 가야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녕성 호로도시와 가까운 진황도 부근에 위치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쪽을 지배한 적이 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 중의 새빨간 거짓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설령 임나일본부가 실제 존재했었다 하더라도 한반도 남쪽이 아니라 진황도 부근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랑가 모를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