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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국궁 쏘는 법이 잘못 전해졌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09. 4. 16. 23:58

윤여동설 - 국궁 쏘는 법이 잘못 전해졌다 - 최초주장 

 

 

 

 

 

 

 

 

 

 

  태초에 인간은 돌을 던지거나 몽둥이로 짐승을 때려잡았을 것이고, 올가미로 잡거나 함정에 빠뜨려 잡았을 것이며 또는 긴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찔러 짐승들을 사냥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빠른 짐승이나 높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새를 사냥하기 위해 활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고, 이윽고 전쟁에도 활용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진서 숙신씨 전을 보면, 석자 다섯치의 단궁(檀弓)과 화살촉을 돌로 만든 호시가 있었다고 하고, 주 무왕 때 숙신씨가 호시와 석노를 바쳤다고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단궁은 이미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후한서 읍루전을 보면 읍루 사람들이 활을 아주 잘 쏘아서 사람의 눈을 맞힐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고, 활의 길이는 4척 정도인데 그 세기가 노와 같고, 화살대는 싸리나무를 사용하고 그 길이는 한자 여덟치였으며, 청석으로 화살촉을 만들고 촉에는 모두 독약을 바르므로 사람이 맞으면 즉사한다고 했고, 읍루 사람들이 배를 잘타고 노략질하기를 좋아하므로 이웃 나라들이 꺼리고 골칫거리로 여겼으나 끝내 굴복시킬 수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숙신씨의 활과 싸리나무로 만든 화살(호시)은 품질이 아주 좋아 중국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 혼인 예물로 이를 구하여 보내야 할 만큼 귀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왕들 중에도 활을 아주 잘 쏘았다는 기록들은 많이 존재한다.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이 명궁이었고, 그 아들인 유리왕 역시 활을 잘 쏘았다 하며, 평원왕은 말을 타고 활 쏘는 것을 잘했다고 하고, 백제의 고이왕은 군대 사열 도중에 냇가에서 오리 한 쌍이 날아 오르자 화살 하나로 두 마리를 모두 쏘아 맞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명궁이었고, 비류왕도 활을 잘 쏘았다는 기록이 있고, 동성왕도 활을 아주 잘 쏘아 백발백중이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하고 있고,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말타고 활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고분벽화 수렵도를 부분확대해보니 화살이 활의 몸통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활 몸통의 오른쪽에 화살을 놓고 쏘는 현재의 국궁 쏘는 방법과는 다르다]

 

 

 

 

[고구려 고분벽화 수렵도와 거의 같은 자세이고, 활의 형태 역시 비슷하다. 그런데 위 확대사진을 보면 왼손으로 활의 몸통을 잡고 오른손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오른손잡이인데 화살이 활대의 왼쪽에 놓여져 있다. 현재 국궁의 경우 오른손잡이의 경우 화살을 활대의 오른쪽에 놓고 쏜다]

   
  우리 민족의 활은 중국에까지도 널리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는데, 후한서와 삼국지를 보면, 예에서 "낙랑단궁(樂浪檀弓)"이라고 하는 좋은 활이 만들어졌었다고 하고, 고구려에서도 "맥궁(貊弓)"이라 하는 좋은 활이 만들어졌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이 쏜 활도 바로 낙랑단궁이나 맥궁이었을 것이고,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 "국궁(國弓)"도 바로 낙랑단궁이나 맥궁과 같은 형태의 활일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오늘 활의 역사나 형태를 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국궁을 쏘는 법이 잘못 전해졌을 것이라는 말을 하려고 한다.

  지금 중국 사람들은 활을 쏠 때 오른손잡이의 경우 왼손으로 활의 몸통을 잡고 오른손으로 화살을 활줄에 걸고 잡아당겨 쏘는데, 이때 화살을 활 몸통의 왼쪽 방향에 위치하도록 하고 쏜다. 
  이렇게 하면 활을 잡는 왼팔과 화살이 같은 방향에 위치하게 된다.
  그리고 서양 사람들이 쏘는 양궁도 마찬가지이고, 몽골 사람들도 활을 잡는 팔과 화살이 같은 방향에 위치하도록 하고 활을 쏜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의 활쏘는 법 중 화살의 위치는 활을 잡는 팔과 같은 방향에 위치한다. 
  그런데 유독 지금 우리나라의 국궁은 반드시 활을 잡는 팔과 반대방향에 화살이 위치하게 하여 쏘아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는 잘못 전해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른손잡이가 활을 쏠 경우 왼손으로 활 몸통을 잡고 오른 손으로 화살을 당기게 되면 인체 구조상 활은 약 20-30도 정도 오른쪽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살을 안정감 있게 쏘려면 화살이 기울어진 활 몸통의 위쪽에 위치해야 하는데, 지금 국궁 쏘는 식으로 화살을 쏘려면 기울어진 활 몸통의 아래쪽에 화살이 위치하게 된다. 화살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화살을 활을 잡은 손의 손가락으로 지지해 주어야 한다. 
  우리의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활을 쏠 때 활자체의 각도나 팔의 높이를 조정하기도 어려운데 화살까지 별도로 지탱해 주어 가면서 화살을 쏘았을 리가 없고, 또 화살을 활 몸통의 오른쪽에 위치하도록 하여 화살을 쏘려면 상대적으로 활줄이 몸에 가까이 붙게 되어 활줄이 옷깃에 스칠 수 있고, 활 몸통이 활 쏘는 사람의 시야를 가리게 되어 명중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화살이 활 몸통의 왼쪽에 위치하도록 하고 쏘면 활줄이 몸에서 떨어지게 되어 활줄에 옷깃이 스치지 않고, 활 몸통이 시야를 가리지도 않아 명중률을 높일 수 있다.

  조선시대 화가인 김홍도의 풍속화 중에 활 쏘는 법을 가르치는 그림이 있는데, 활 쏘는 사람은 왼손잡이이다.

 

                                 

  그런데 그림을 잘 보면 활의 몸통을 잡고 있는 활 쏘는 사람의 오른손에 장갑을 끼고 있다. 화살이 활 잡은 손의 위쪽을 스치며 나아가기 때문에 손을 보호하기 위함일 것이다.

 

☆ 다만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활 쏘는 사람의 발 자세는 오른손잡이의 자세인데 정작 활을 잡은 손 자세는 왼손잡이의 자세로 잘못 그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의 선조들은 원래부터 한반도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 북경 부근의 대륙에서 중국 세력들과 끊임없이 다투며 살다가 삼국시대에 이르러 처음 한반도로 진출했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대륙의 개경에서 한반도의 한양으로 도읍을 옮김으로써 그때부터 한반도가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다.

 

☆ 그 후 대륙의 땅은 명나라 또는 청나라에게 빼앗겨 버렸고, 우리는 지금 한반도에서 살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조상들이 살던 원래의 땅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발해 북쪽 내몽골, 몽골, 하북성, 북경, 요녕성 일원이었다.
  낙랑단궁이 만들어졌던 원래의 예(濊)는 지금의 내몽골 정람기 부근이었다가 그 후 동쪽으로 개마산을 넘어 임둔군 땅이었던 지금의 내몽골 고륜기 부근으로 이동하여 동예가 되었고, 맥궁을 만들던 맥족이 살던 곳은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요녕성 능원 일원이며, 숙신의 단궁과 싸리나무 화살인 호시가 만들어졌던 곳은 내몽골 파림좌기 부근일 것이다. 

 

  이는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시작되었다는 기록들과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기록 그리고 신라, 백제의 북쪽에 고구려가 위치했었다는 기록들이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 활인 낙랑단궁이나 맥궁 쏘는 법이 곧 지금 우리의 전통적인 활쏘기 하는 방법과 같아야 하는 것이다.
  무용총 고분벽화에 수렵도가 그려져 있어 우리는 고구려 맥궁 또는 낙랑단궁의 형태를 알 수 있고, 말을 타고 활쏘기 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는데, 그 고분 벽화만으로는 화살이 활의 왼쪽에 위치했는지 오른쪽에 위치했는지 분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하여 이 그림을 잘못 이해한 어느 누군가가 우리나라 국궁 쏘는 법을 잘못 전하게 되어 그 이후 국궁 쏘는 법이 와전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동이문명권에 속하는 민족이라면 활 쏘는 법도 같았을 것인데, 지금 내몽골이나 몽골, 중국도 우리와 같지 않고, 세계적으로도 유독 우리의 국궁 만이 활쏘기 할 때 화살의 위치가 다른 나라들과 반대인 것이다.

   

  국궁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분들께서 심각하게 검토해보기를 바라고,  매스컴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화살을 왼쪽으로 위치하게 하고 쏘았을 때의 명중률과 오른쪽으로 위치하게 하고 쏘았을 때의 명중률을 비교해 보기를 제안하고, 활을 전혀 만져본 적도 없고 활 쏘는 법에 대하여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어린 아이들에게 무작정 활과 화살을 주고 쏘아보라고 하면 화살을 왼쪽으로 놓고 쏘는지 오른쪽으로 놓고 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인류가 태초에 활을 어떻게 쏘았을까 추정해 볼 수 있는 실험이고, 보편성을 알아볼 수 있는 실험이 될 것이다.  
  우리의 국궁 쏘는 방법이 필자의 주장처럼 정말로 잘못 전해진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하루 빨리 고쳐 바로잡아야 한다.

 

 

 

 

 

 

 

[위 : 한국인들의 활쏘기(서울 남산 원래의 석호정) : 이러한 사진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옛날부터 활 몸통의 오른쪽에 화살을 놓고 활쏘기를 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매우 곤란한 일이다]  

 

[분명 한국인으로 보이는 왼손잡이 노인의 활쏘기(구한말 또는 일제강점기쯤으로 보이는데, 위 왼손잡이 몽골인의 활쏘기자세와 무엇이 다를까?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