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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 김유신의 부모 서현과 만명의 러브스토리

윤여동 2009. 6. 17. 11:14

 

설화 - 김유신의 부모 서현과 만명의 러브스토리

 

  지소는 23대 법흥왕과 보도왕비 사이에서 태어나 숙부인 입종의 아들에게 시집가 진흥을 낳았고, 다시 이화랑과의 사이에서 만호를 낳았다고 한다.

  따라서 진흥왕과 만호는 아버지는 다르지만 어머니는 같은 이부동모 남매사이였다. 

  만호는 자라 입종의 손자인 숙흘종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다시 만명을 낳는다.

 

  그런데 바로 이 만명이 사고를 치고 만다.

  당시 상황의 기록을 보자.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조에,

  “처음 서현(김유신의 아버지)이 길에서 갈문왕 입종의 아들(손자이다)인 숙흘종의 (손녀)딸 만명을 보고 마음에 들어 그녀에게 윙크를 하여 중매도 없이 야합하게 되었다.

  서현이 만노군 태수가 되어 만명을 데리고 함께 가기를 청하자 숙흘종이 비로소 자기 (손녀)딸이 서현과 야합한 것을 알게 되어 광속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그 광문에 벼락이 쳐서 지키던 자가 놀라 기절하였다. 이때를 틈타 만명이 구멍으로 빠져나와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도망갔다.

  서현이 경진일 밤에 화성과 토성 두별이 자기에게로 내려오는 꿈을 꾸었고, 만명 역시 꿈에 동자가 금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얼마 후 태기가 있어 스무달 만에 유신을 낳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화랑세기 15세 풍월주 유신공 조에는,

  “처음 만명과 서현이 야합하여 임신하였는데, 만호태후는 서현이 대원신통류이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만명이) 만노로 도망하여 스무달 만에 유신을 낳았는데, 꿈의 상서로움이 많았다.

  앞서 진평대왕은 여동생이 괴로워하자 서현공을 만노에 봉했었다.  

  유신이 자라자 태양과 같은 위용이 있었다.

  만호태후가 외(증)손자인 유신이 보고 싶어 돌아올 것을 허락하였다.

  (만호태후가) 유신을 보고는 “참으로 귀여운 나의 (증)손자다 하며 기뻐하였다. 이로서 가야파가 받아들여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호태후는 (손녀인) 만명이 가출하여 유신을 낳은 후에야 그들의 혼인을 인정했던 것이다.

  이를 보면 만명과 서현이 눈이 맞아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그를 숙흘종과 만호태후가 알고 헤어지기를 종용하자 만명이 임신이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던 듯하다.

  사람이 20개월 만에 태어날 수는 없는데 유신은 스무달 만에 태어났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가출하여 만노군으로 도망쳐 서현을 만나 그때에야 임신이 되어 유신을 낳았는데, 만명이 스스로 임신했다고 말한 때로부터 따져보면 20개월이었기 때문에 김유신이 스무달 만에 태어났다고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후  만명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 신라 왕실에 전해지자 그 친정할머니인 만호태후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하고 그 혼인을 인정하고, 돌아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화랑세기 기록을 잘 새겨보면 이때 신라왕실은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만호태후는 (손녀)딸이 가능하면 같은 진골정통과 혼인하기를 바랬지만 만명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자기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서양의 로미오와 쥴리엣은 죽어야 했지만, 신라의 만명과 서현은 아들인 유신을 잘 키워 후일 삼국을 통일하는 주역으로 만들었으니 만명은 그때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부모님들의 결혼반대에 부딪쳐 애태우는 청춘남녀가 있을 수 있는데, 정말 둘이서 사랑하고 평생 행복하게 살아갈 확신이 있고, 자식을 훌륭하게 낳아 키울 자신만 있다면 신라의 서현과 만명같이 용기를 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유신 같은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누가 알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