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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전설 속 지리산 청학동은 한반도 지리산엔 없다

윤여동 2009. 12. 8. 02:41

윤여동설 - 전설 속 지리산 청학동은 한반도 지리산엔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진주목 산천 조를 보면,

  청학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청학동은 지리산 가운데 있다. 

  진주 서쪽 147리에 위치한다.

   이인로의 파한집에,

   '지리산이 백두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꽃같은 봉우리와 꽃받침같은 골짜기가 면면히 잇따라서 대방군에 와서는 수천리를 서리어 맺혔는데, 산 주위에 있는 주가 10여주이다. 

 

* 이인로는 지리산이 대방군에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현재 우리의 역사 상식과는 많이 어긋난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사학자들은 한반도의 황해도 부근에 대방군이 위치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 남원을 대방군이라 고, 그곳에 지리산이 있다고 했고, 삼국유사는 남원을 남대방이라 했으니 대방군에 지리산이 위치하고 있었다는 이인로의 주장은 옳을 것이다.

 

  한달이 넘게 걸려야 그 주위를 모두 구경할 수 있다. 노인들에게 전해들으니,

  그 안에 청학동이 있어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겨우 통행할 만 한데, 엎드려 여러 리를 지나면 넓게 트인 지경에 들어가게 된다. 

  사방이 모두 옥토라서 곡식을 씨뿌려 가꾸기에 적당하다. 그런데 푸른 학이 그 안에 서식하기 때문에 청학동이라 부르는데, 대개 옛날에 속세를 피한 사람이 살던 곳으로 무너진 담이 아직도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다고 한다.    

  전일에 이인로는 최상국 모와 함께 이 속세를 떠나 길이 숨을 뜻이 있어서 이 청학동을 찾기로 서로 약속하였다.

  송아지 두 세마리를 끌고 들어만 가면 속세와 서로 상관하지 않아도 되리라.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화개현에 이르러 신흥사에서 유숙하니 지나는 곳마다 선경 아닌데가 없었다.

  천 바위가 다투어 빼어났고, 만 계곡물이 다투어 흐른다. 대울타리 초가지붕에 복숭아 꽃이 가렸다 비쳤다 하니 자못 인간 세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청학동이라는 곳은 끝내 찾지 못하였다.

  인로는 바위에 시를 적기를,

 '두류산 멀고 저녁구름 낮으막한데 만 계곡 천 바위가 회계와 같네.

  지팡이 끌며 청학동을 찾으려는데 숲속에서 원숭이 울음소리만 들리는구나.

  누대는 아득히 삼산이 멀고, 이끼끼어 네 글자 쓰인 것이 희미하네.

  신선이 있는 곳 그 어디련가 떨어지는 꽃 흐르는 물이 아득하기만 하네' 하였다.   

   유방선의 시에,

  '지리산 둥그런 모습 쳐다보니 운연만첩이 항상 침침하여라.

  뿌리는 백여리 서리었고, 형세가 절로 특이하니 뭇계곡이 감히 겨루지 못하리.

  층층한 산봉우리 가파른 돌벽은 크기가 엇비슷하고 성긴 소나무와 푸른 잣나무는 빼곡히 우거졌도다.

  시내가 감돌고 골이 굴러 별천지 되었는데, 한 구역 좋은 경치는 참으로 호중일세.

  사람 없어지고 세상 변해도 물은 제대로 흐르며, 초목이 우거져서 동서가 아득하구나.

  지금도 푸른 학은 홀로 깃드니 벼랑에 붙은 한가닥 길이 겨우 통하리.

  좋은 밭 비옥한 땅이 평평하기 상과 같은데, 넘어진 담과 무너진 길이 쑥대 속에 묻혔구나. 

  숲이 깊으니 닭과 개 다니는 것 보이지 않고 해가 지니 오직 원숭이 울음소리만 들리는구나.

 

* 지리산에 야생원숭이들이 살고 있었다는 말인데, 한반도의 지리산에는 야생원숭이들이 살지 않는다. 

 

  아마도 옛날에 은자가 살던곳일러라.

 사람은 신선되고 산은 비었는가

  신선이 있고 없음은 논할 바가 아니고 다만 고매한 이 속세를 벗어났음을 사랑한다.

  나도 여기에 집짓고 숨어서 해마다 요초캐며 생을 마치고 싶구나.

  천태산 지나간 일은 참으로 허황하고 무릉도원 유적도 몽롱한데, 장부의 출처를 어찌 구차하게 하랴.

  제 몸만 생각하고 인륜을 문란하게 함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내 지금 노래지으매 뜻이 무궁하니 그 날에 시 남긴 늙은이 우습기도 하여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