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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진짜 금강산(金剛山)을 찾았다 - 최초주장

윤여동 2010. 1. 22. 10:21

윤여동설 - 진짜 금강산을 찾았다  - 최초주장 

 

 

 

 

   금강산이라 하면 우리는 한반도 강원도에 있는 금강산을 떠 올리게 되고, 금강산을 철따라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이라 부른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회양도호부 조를 보면, 금강산의 이름이 넷이 아니라 다섯 개 즉 금강산(金剛山), 개골산(皆骨山), 열반산(涅槃山), 풍악산(楓嶽山), 기달산(怾怛山)이라고도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어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금강산,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이라는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 이후인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원래 금강산의 이름은 넷이 아니라 모두 다섯 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봉래산(蓬萊山)”까지 합하면 모두 여섯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금강산,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 열반산, 기달산.................

  하나의 산을 이렇게 많은 다른 이름으로도 부르는 산은 아마 금강산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회양도호부 조를 보면, 금강산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 장양현 동쪽 30리이고, 장양현은 부의 동쪽 40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이 기록대로라면 금강산은 회양도호부의 동쪽 70리 쯤에 위치했다는 말이 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또 금강산이 부(회양도호부)와 167리 떨어져 있다고도 기록하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왜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게 기록되어 있는지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금강산의 위치를 설명하기를,

  “백두산의 남쪽가지이다. 회령부의 우라한현으로부터 갑산에 이르러 동쪽은 두리산이 되고, 영흥의 서북쪽에서 검산이 되며, 부의 서남쪽에서 분수령이 된다.

  서북쪽으로는 철령이 되고, 통천의 서남쪽에서 추지령이 되고, 장양의 동쪽, 고성의 서쪽에서 이 산이 되었다.

  분수령으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무릇 830여리이다.

  산은 무려 1만2천봉이니 바위가 우뚝하게 뼈처럼 서서 동쪽으로 창해(滄海)를 굽어보며, 삼나무와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듯하여 바라보면 그림과 같다. 일출봉 월출봉 두 봉우리가 있어 해와 달이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내산과 외산에 모두 108개의 절이 있는데, 표훈사, 정양사, 장안사, 마하연, 보덕굴, 유점사가 가장 이름난 사찰이라고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은 이 기록이 한반도 강원도에 있는 금강산에 대한 기록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사실 이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은 한반도 강원도의 금강산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신라는 한반도 경주가 아닌 발해 북쪽 요녕성 금주시(錦州市) 부근에서 건국되고, 멸망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신라가 한반도에서 건국되었고 멸망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삼국 역사에 관한한 아직 초보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라 경순왕이 나라를 들어 고려에 바치자 그를 거부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삼베옷을 입고, 산나물을 뜯어 먹으며 살다 죽었다는 신라 마의태자 역시 한반도 금강산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금주시(錦州市 ; 필자주 : 신라의 천년도읍 서라벌이었다)에서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금강산으로 들어간 것이었는데, 바로 그 진짜 금강산을 필자가 처음으로 찾아낸 것이다. 

  진짜 금강산은 한반도가 아닌 내몽골과 요녕성의 경계에 있다. 

  지금의 내몽골 적봉 남쪽 원보산 부근에 철령관도 있었고, 회양도호부도 있었고, 금강산도 위치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지금 옛 대륙의 기록을 한반도로 가져와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