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호태왕비의 원래 위치는 하북성 승덕시 부근인가?
고구려의 도읍 졸본, 국내성, 환도성은 지금의 북경 부근이고, 평양성(平壤城), 황성, 장안성은 한반도의 북한 평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승덕시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중국 길림성 집안을 고구려의 국내성이라 하나 이는 잘못된 것이고, 그곳의 태왕릉이라는 고총 역시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능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광개토태왕은 고구려 19대 왕으로서 16대 고국원왕의 손자였다.
고구려의 도읍 이전 기록을 살펴보면,
고구려는 졸본에서 건국되어 2대 유리왕 22년(A.D.3)에 국내(국내위나암, 국내성)로 도읍을 옮겼다가 10대 산상왕 13년(A.D.209)에 다시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런데 산상왕의 아들인 11대 동천왕 20년(A.D.246)에 위나라 관구검의 침공을 받고 환도성이 함락되자 247년 2월에 평양성으로 백성들과 종묘와 사직을 옮기게 되고, 16대 고국원왕이 재위 12년(A.D.342)에 이르러 다시 환도성으로 이거(移居)하게 된다. 이거라는 것은 도읍은 그대로 둔채 임시로 왕의 거처를 환도성으로 옮겼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해 10월에 전연 모용황의 침공을 받고 환도성이 또 함락 당하게 되자 고국원왕은 343년7월에 평양 동쪽의 황성으로 다시 옮기게 된다.
이때 고국원왕이 왜 평양성을 마다하고 평양성 동쪽 가까이에 위치했다는 황성(평양동황성)으로 옮겨 살았는지 의문이다.
그리하여 그 아들인 17대 소수림왕과 소수림왕의 동생이며 광개토대왕의 아버지인 18대 고국양왕도 황성에서 살다 죽었고, 19대 광개토대왕 역시 황성에서 살다 죽었다.
왜냐하면 고구려는 광개토태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재위 15년(A.D.427)에 이르러 다시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기 때문에 그를 알 수 있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고국원왕의 능은 고국원(故國之原), 소수림왕의 능은 소수림(小獸林), 고국양왕의 능은 고국양(故國壤)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광개토태왕부터는 능에 대한 기록이 없다. 왜 광개토태왕부터 고구려 왕릉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 사라졌는지 참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옛날 제왕들이 죽으면 능을 당시의 도읍 부근에 조성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관례였다.
능을 수호하기 쉽고 왕들이 능에 참배하기도 편리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광개토태왕은 황성에서 죽었으므로 황성 부근에 능을 조성했을 것이고, 능 앞에 훈적비도 세웠을 것인데, 고구려의 황성은 평양성, 장안성과 함께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부근을 말하는 것이다.
광개토태왕은 죽어 지금의 승덕시 부근 멀지 않은 곳에 묻혔을 것이다.
하북성 승덕시 부근에서 죽었을 광개토태왕의 능을 그곳으로부터 수천리 떨어진 곳까지 시신을 운구한 후 길림성 집안에 조성하고 그 앞에 능비를 세웠을 리는 없을 것이다.
☆ 학자들은 집안을 고구려의 국내성이라 하면서 그곳에 호태왕(광개토대왕)의 능을 조성하고 훈적비도 세웠다고 하고 있으나 필자가 보기에 집안은 고구려의 국내성도 아니고 황성도 아니다.
그런데 앞서 호태왕비가 고구려의 중심 강역이었던 하북성 어딘가로부터 지금의 집안으로 옮겨 세웠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물론 그때 필자는 호태왕비가 어딘가로부터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을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는데, 고구려의 국내성을 북경시 연경현 영녕진 부근으로 비정하고 평양성과 황성 그리고 장안성의 위치를 하북성 승덕시 부근으로 비정하고 보니 호태왕비가 한반도 북쪽 집안에 서 있는 것이 매우 엉뚱하여 이상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필자가 찾아낸 고구려의 황성이 지금의 하북성 승덕시 부근 임이 확인된다면 그 부근에 광개토대왕의 능을 조성하고 그 앞에 세웠을 호태왕비를 언젠가 누군가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지금의 집안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 고구려왕릉들이 대부분 "고구려고국(高句麗故國)"이라는 곳에 묻힌 것 같기도 한데, 고구려고국은 지금의 북경 동북쪽 밀운수고 부근으로 비정된다. 그런데 지금 밀운수고 북쪽에 영락촌(永樂村)이라는 동네가 있어 이곳이 원래 호태왕능이 조성된 곳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호태왕비가 하북성 승덕시 부근에서 배에 실려 지금의 난하를 타고 내려와 발해를 건너 한반도의 압록강을 타고 올라가 지금의 길림성 집안으로 옮겨 세운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고구려 역사는 다시 한번 요동치게 된다.
우리 고대 역사의 진실을 위해 반드시 밝혀져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