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백제는 건국된 지 768년 만에 멸망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어 서기 668년에 당나라의 침공을 받고 도읍인 평양성을 함락당하고 보장왕이 항복함으로서 멸망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고구려가 건국된 지 705년 만에 멸망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당나라의 가언충이라는 사람은 서기 668년 시점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었다고 당 고종에게 보고한 내용이 사서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어 이 기록의 사실여부에 대하여 고려시대 때부터 논란이 되어 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언충은 고구려의 역사를 말할 때 북부여의 건국시조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하고 천제의 자리에 오른 기원전 232년부터를 고구려의 역사로 보고 서기668년에 고구려가 건국된 지 900년이 되었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고구려의 건국시조 추모왕(주몽)이 곧 천제 해모수의 고손자였음을 알고 있었는지 가언충은 혈통을 중심으로 북부여(구려)의 맥을 고구려가 이은 것으로 인식했고, 당시 대개의 당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 범장의 북부여기에 의하면, 북부여의 건국시조 해모수는 기원전 239년에 북부여를 건국한 후 7년동안 주변국을 복속시키고 기원전 232년에 이르러 천제의 자리에 올랐다가 기원전 195년 겨울에 67세의 나이로 죽고 2대, 3대, 4대왕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기원전 87년에 이르러 졸본부여 동명왕의 침공을 받아 북부여는 멸망하고 만다.
그러자 북부여 4대왕의 동생이었던 해부루는 유민들을 이끌고 가섭원으로 가서 다음 해인 기원전 86년에 동부여를 건국하게 되고, 해모수의 고손자인 주몽은 기원전 58년에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으로 가서 왕의 부마가 되었다가 왕이 죽자 그 왕위를 물려 받아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랐는데, 21년 후인 기원전 37년에 이르러서는 졸본부여의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게 되어 고구려를 역사에 등장시키게 된다.
그렇다면 백제는 건국된 지 몇년 만에 멸망했던 것일까?
삼국사기를 보면,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어 서기 660년에 멸망했으니 삼국사기 기록대로라면 백제는 건국된 지 678년 만에 멸망했다고 해야 옳다.
그렇지만 당나라 가언충의 논리에 따라 고구려의 역사를 북부여의 해모수가 천제의 자리에 오른 시점으로부터 계산하여 멸망한 서기 668년까지 900년간 존속했다고 볼 수 있다면,
백제의 역사는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東明王)이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른 시점인 기원전 108년부터 계산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백제의 건국시조 온조왕은 바로 졸본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의 증손자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제의 역사를 혈통으로 따져 졸본부여의 건국시점으로부터 계산한다면 기원전 108년에 건국되어 서기 660년에 멸망했다고 할 수 있으니 백제는 건국된 지 768년 만에 멸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혈통과 역사를 동일하게 볼 수 있는 것인지,
해모수의 북부여가 기원전 87년에 멸망하였다가 50년 후인 기원전 37년에 해모수의 고손자인 주몽에 의해 고구려가 건국되었다고 하여 과연 북부여 역사의 맥을 고구려가 이었다고 볼 수 있는지,
그리고 동명왕의 졸본부여가 기원전 108년에 건국되었다가 기원전 37년에 멸망하고,
멸망한 지 19년 후인 기원전 18년에 이르러 동명왕의 증손자인 온조에 의해 남쪽 진번 부근 땅 한산부근으로 장소를 옮겨 백제가 건국되었는데 과연 백제가 졸본부여 역사의 맥을 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으로 남게 되지만,
백제 26대 성왕이 538년에 도읍을 웅진으로부터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고 했다는 기록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백제의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다는 것은 이때 성왕은 옛날 동명왕이 졸본부여를 세워 주변국을 통합함으로써 강국으로 발돋움했던 것처럼 그 영광을 다시한번 재현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국호를 남부여(남졸본부여라는 의미)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