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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백제 진사왕이 죽은 구원행궁(狗原行宮)의 위치를 찾아라

윤여동 2011. 12. 11. 09:31

윤여동설 - 백제 진사왕이 죽은 구원행궁(狗原行宮)의 위치를 찾아라

 

 

 

  삼국사기 백제본기 11대 비류왕 22년(A.D.325) "11월 왕이 구원(狗原) 북쪽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손수 사슴을 쏘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16대 진사왕 6년(A.D.390) "겨울10월 왕이 구원(狗原)에서 사냥을 하고 7일만에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진사왕 8년(A.D.392) 조를 보면,

  “가을 7월 고구려왕 담덕(광개토태왕)이 군사 4만을 거느리고 와서 북쪽 변경을 침공하여 석현성 등 10여성을 함락시켰다.

  왕이 담덕이 군사지휘에 능하다는 말을 듣고는 나가서 항전을 하지 못하여 한수(漢水) 북쪽의 부락들을 많이 빼앗겼다.

  겨울 10월 고구려가 관미성(關彌城)을 쳐서 함락 시켰다.

  왕이 구원(狗原)에서 사냥을 하면서 열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11월에 왕이 구원행궁(狗原行宮)에서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구원이라는 곳이 옛날부터 백제왕들이 사냥을 하던 사냥터였고,

  백제의 진사왕도 구원이라는 곳으로 사냥을 갔다가 그곳 행궁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데,

  이 구원(狗原)이라는 곳은 구천(狗川)이라는 강이 흐르고 있는 부근의 벌판을 말하는 것으로서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구천(狗川)이라는 강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11년(B.C.8) 조에,

  “가을 7월 독산(禿山)과 구천(狗川) 두 곳에 목책을 설치하여 낙랑으로부터 오는 길을 차단하였다” 라고 하면서 백제 역사에서 “구천(狗川)”이라는 강이 언급되기 시작하고,

 

  또 삼국사기 백제본기 성왕 32년(A.D.554)조를 보면,

  “가을 7월 왕이 신라를 습격하려고 친히 보, 기병 50여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狗川)에 이르렀더니 신라의 복병이 튀어 나오므로 그들과 싸우다가 왕이 난병들에게 시해당했다. 시호를 성(聖)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구천(狗川)이라는 강이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위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기록을 보면 결국 백제 16대 진사왕과 백제 26대 성왕이 모두 이 구천(狗川)부근에서 죽었다는 말이 된다.

  구천이나 구원은 백제왕들에게는 매우 불길한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