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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주(周)나라의 도읍 빈(豳), 기(岐), 풍(豐), 호(鎬), 낙읍(洛邑)의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12. 5. 6. 21:10

 

윤여동설 - 주(周)나라의 도읍 빈(豳), 기(岐), 풍(豐), 호(鎬), 낙읍(洛邑)의 위치 - 최초공개

 

 

 

주나라의 시조는 후직(后稷)으로서 성은 희(姬)씨라 한다.

본래의 이름은 기(棄)이다.

그는 요임금 때 농업을 관장하는 관리였고, 그 직책은 세습되어 아들, 손자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후직의 증손자인 공유(公劉) 때에 이르러 관직을 잃고 빈(豳)으로 옮겨 살았는데, 공유의 9대손 고공단보(古公亶父) 때에 이르러 융적의 지속적인 침공을 받게 되자 기(岐)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기에 새로 터전을 잡은 고공단보는 매우 정치를 잘하여 백성들은 태평가를 불렀고, 주변으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백성들이 점점 모여들게 되어 강성하여 졌고, 그 아들인 계력(季歷) 때에는 주변의 여러 부족들을 정벌하게 되어 더욱 발전하게 된다.

계력의 아들 창(昌)은 다시 풍(豐)으로 도읍을 옮기고 서백(西伯)이라 칭하게 되는데, 이때에도 창이 현인, 재사들을 잘 대우했기 때문에 온 천하의 현인, 재사들이 서백 창에게 모여들게 되고, 고죽국의 왕자 백이와 숙제도 서백 창을 찾아가다 무왕 발(發)을 만났다고 한다.

서백 창의 아들인 무왕(武王)은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을 쳐서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호(鎬)에 도읍 함으로써 주(周)왕조를 세우게 되고, 그 아버지 서백 창을 문왕으로 추봉하게 된다.

주 무왕이 천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그 자신의 힘이라기 보다는 그 조상들 특히 빈에서 기로 도읍을 옮긴 고공단보로부터 대를 이어 꾸준히 덕을 쌓고, 인과 덕으로 정치를 함으로써 천하의 인심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주나라의 터전이었던 빈(豳), 기(岐), 풍(豐), 호(鎬) 그리고 동주의 도읍이었던 낙읍(洛邑)은 지금의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