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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10성의 축성 위치 - 최초공개

윤여동 2012. 6. 10. 21:28

윤여동설 - 고구려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10성의 축성 위치 - 최초공개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2년(A.D.49) 조를 보면,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우북평이라고도 한다),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하였더니 요동태수 채동이 은의와 믿음으로 대하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그로부터 6년 뒤인 태조대왕 3년(A.D.55) 조를 보면,

“봄2월에 요서에 10개 성을 쌓아 한나라 병사(한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모본왕 때 북평(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했을 때 요동군과 요서군의 일부지역을 후한으로부터 빼앗았음을 알 수 있고, 태조대왕 때 이르러 그곳을 수비하기 위하여 요서지역에 10개의 성을 쌓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때 태조대왕은 9세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태조대왕의 모후인 부여부인이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할 때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요서에 쌓았다는 10개 성의 위치에 대하여 정확하게 밝힌 사람이 없다.

일부 역사연구자들 중에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

“조대기에서 이르기를 ‘태조 융무 3년 요서에 10성을 쌓고 이로써 한의 10성에 대비하게 하였다.

첫째 안시는 개평의 동북쪽 70리에,

둘째 석성은 건안의 서쪽 50리에,

셋째 건안은 안시의 남쪽 70리에,

넷째 건흥은 난하의 서쪽에,

다섯째 요동은 창려의 남쪽에,

여섯째 풍성은 안시의 서북쪽 100리에,

일곱째 한성(韓城)은 풍성의 남쪽 200리에,

여덟째 옥전보는 한성의 서남쪽 60리에,

아홉째 택성은 요택의 서남쪽 50리에,

열째 요택은 황하가 흐르는 북쪽의 동쪽에 있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하고,

지금 북경 부근에 난하, 창려, 옥전보 등의 지명이 있으므로 태조대왕 때 쌓은 요서 10성이 지금의 진황도에서부터 북경, 천진을 지나 황하하류에 이르는 지역에 쌓았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태백일사의 기록자체가 요동과 요서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확하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태백일사 기록에는 요서에 10개 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요동성, 안시성, 건안성 등은 요동군에 속해 있던 성이었지 요서군에 위치해 있던 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구려 모본왕 때 고구려의 요동성은 지금의 북경 부근, 요수는 지금의 영정하로 비정된다.

따라서 요동군과 요서군은 옛 요수인 지금의 영정하를 중심으로 나누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요동군은 영정하의 동북쪽 북경부근, 요서군은 그 서남쪽 지역 즉 지금의 방산 부근으로 볼 수밖에 없고, 태조대왕은 그곳에 10 개의 성을 쌓아 후한의 침공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위 그림참조]

그리고 진장성(혹은 조장성)이 안문관, 평형관, 도마관, 자형관 등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나라 때 쌓은 진장성이 시작된 곳이 갈석산(지금의 하북성 보정시 낭아산으로 비정된다)이라는 기록이 남겨질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 중국내 현존하는 역대 모든 장성의 총 길이가 21,196.18㎞(약5만3천리)라고 발표했다고 하는데, 옛 환국, 환웅의 신시로부터 고조선, 삼한, 삼국, 고려까지 우리의 조상들이 쌓은 장성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최소한 지금의 북경 부근으로부터 그 동쪽은 모두 동이족들이 쌓은 것이지 중국 세력들이 쌓은 것이 아닌데 중국학자들은 그러한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지금 중국학자들은 북경부근의 옛 장성이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가 쌓은 장성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고(? 알고는 있으나 역사왜곡을 위해 모르는 척 하는 것이겠지만) 온갖 장난질을 치고 있는 것 뿐으로서 걱정할 필요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세상의 모든 사서들, 옛 성들, 산과 강 모두를 없애거나, 어느 날 갑자기 지구상의 전 인류가 한꺼번에 다른 별나라로 모두 이사 가지 않는 한 중국학자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역사의 진실까지 바꿀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