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광개토태왕이 시조 추모왕(주몽왕)의 17세손이라는 호태왕비문의 기록은 정확했다 - 최초주장
"광개토태왕이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17세손이 맞다"고 하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기록에 따라 주몽으로부터 족보를 따져보면 호태왕은 주몽의 12세손에 불과한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필자도 이전에는 호태왕 비문의 17세손이라는 기록에 대하여 북부여 시조 해모수로부터 계산하여 광개토대왕이 북부여 천제 해모수의 17세손이라 기록한 것으로 이해했었으나, 호태왕비문을 자세히 보면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옛날에 시조 추모왕이 터를 잡고 창업했도다)” 라고 하면서 비문을 시작했다.
따라서 문맥으로 볼 때 호태왕(광개토태왕)이 그 17세손이라면 이는 시조 추모왕(주몽왕)의 17세손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왕위계승 기록과 중국 사서들의 기록들을 다시 꼼꼼히 살펴본 결과 아래와 같은 결론을 얻었다.
추모왕(주몽왕)은 기원전 58년 동부여에서 도망쳐 졸본부여로 와서, 아들없이 딸(공주)만 셋이 있었던 졸본부여왕의 둘째공주와 혼인했고, 그해 10월에 이르러 졸본부여왕(필자주 : 부여무서왕이라 한다)이 죽자 그 왕위를 이어받아 졸본부여의 왕위에 올랐다고 했다.
그런데 추모왕에게 역사서에 확실하게 기록되지 않은 딸(공주)이 하나 있었고, 지금까지 의문의 인물로서 그 신분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유리왕의 아들(양아들)로 기록되어 있는 태조대왕의 아버지 고추가 재사와 6대 태조대왕이 바로 이 딸의 후손으로 생각된다.
앞서 추모왕의 딸(공주)은 성장하여 고여달과 혼인하여 아들인 고여율을 낳았고,
고여율은 고막래를 낳았고,
고막래는 고재사를 낳았는데,
유리왕 말년에 유리왕의 막래아들 해여진이 비류수 강물에 빠져 죽자 유리왕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죽은 여진과 비슷한 또래였던 고재사를 양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유리왕의 입장에서는 배다른 여동생의 증손자를 양자로 받아들인 셈이 된다.
그랬기 때문에 폭군 5대 모본왕이 죽자 고구려의 대신들은 고추가 재사에게 왕위에 오르기를 권했으나 재사가 그를 극구 사양하여 대신들은 할 수 없이 그의 아들 7세짜리 어린 고궁을 왕위에 올리고 그 모후인 부여부인으로 하여금 수렴청정을 하도록 조치하게 되는데, 이가 곧 고구려 6대 태조대왕이었다.
따라서 고구려는 해씨인 추모왕의 아들의 후손 즉 친손(시조로부터 5대 모본왕까지)과
딸의 후손(6대부터 28대까지)인 고씨로 왕위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고구려는 고씨 단일성씨로 왕위가 이어진 것이 아니라 "해씨(解氏)와 고씨(高氏)" 두 성씨로 왕위가 이어졌다.
결국 광개토대왕비문(호태왕비문) 속 호태왕이 추모왕(주몽왕)의 17세손이라는 기록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친손인 해씨와 외손인 고씨가 모두 추모왕의 혈손인 것 만은 확실하므로 고씨인 호태왕을 시조 추모왕의 17세손이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조 고구려시조 추모왕(주몽왕)
(재위 B.C.37-B.C.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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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2대 유리명왕 추모왕의 딸(고여달과 혼인)
(재위 B.C.19-A.D.18) ↓
고여율 외손자
↓
고막래 외증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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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자 ↓3자 ↓4자 ↓5자 ↓( 유리왕의 양자)
손자 도절 해명 3대 대무신왕 4대 민중왕 여진 고재사 외고손자
(요절) (자결) (A.D.18-44) (A.D.44-48) (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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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손자 5대 모본왕 (이상은 해씨로서 주몽의 친손)
(A.D.48-53) ( )는 왕위 재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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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사(고추가) (이하는 추모왕의 딸의 후손으로서 고씨이며 추모왕의 외손)
↓ ( )는 왕위 재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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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외5세손 6대 태조대왕 ?(실명) ?(실명)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A.D.53-146) 6대 태조대왕, 7대 차대왕, 8대 신대왕이
↓ ↓ 재사의 아들로서 형제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외6세손 7대 차대왕 ?(실명) 연령 등을 감안할 때 이 세사람을
(A.D.146-165) 형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
외7세손 8대 신대왕
(A.D.165-179)
↓
외8세손 ?(실명) .................................................|............................................................
↓장자 ↓차자 ↓3자 ↓4자 ↓5자
외9세손 발기 9대고국천왕 발기 10대산상왕 계수
(A.D.179-197) (A.D.197-227)
↓자
외10세손 11대 동천왕
(A.D.22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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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
외11세손 12대 중천왕 예물 사구
(A.D.24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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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자 ↓3자 ↓4자 ↓5자
외12세손 ?(실명) 13대서천왕 달가 일우 소발
(A.D.270-292) (안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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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자
외13세손 14대 봉상왕 돌고
(A.D.292-300)
↓자
외14세손 15대 미천왕
(A.D.3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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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자
외15세손 16대 고국원왕 무
(A.D.33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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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
외16세손 17대 소수림왕 18대 고국양왕
(A.D.371-384) (A.D.384-392)
↓
외17세손 19대 광개토왕(시조 추모왕의 17세손)
(A.D.392-413)
[참고] 호태왕의 직계혈통(윤여동설)
시조 추모왕(주몽왕)
딸 ?(추모왕의 딸로서 고여달과 혼인)
외손자 고여율
외증손자 고막래
외고손자 고재사(고추가)
외5세손 ?(실명) : 태조대왕의 막내동생
외6세손 ?(실명)
외7세손 신대왕
외8세손 ?(실명)
외9세손 산상왕
외10세손 동천왕
외11세손 중천왕
외12세손 서천왕
외13세손 돌고(고추가)
외14세손 미천왕
외15세손 고국원왕
외16세손 고국양왕
외17세손 광개토태왕(호태왕)
[참고] 삼국사기에 의한 호태왕 세계
시조 추모왕(주몽왕)
아들 2대 유리왕(유리명왕)
손자 3대 대무신왕 4대 민중왕
증손자 5대 모본왕 6대 태조대왕 7대 차대왕 8대 신대왕
고손자 9대 고국천왕 10대 산상왕
5세손 11대 동천왕
6세손 12대 중천왕
7세손 13대 서천왕
8세손 14대 봉상왕 고추가 돌고
9세손 15대 미천왕
10세손 16대 고국원왕
11세손 17대 소수림왕 18대 고국양왕
12세손 19대 광개토왕
[삼국사기 기록대로라면 호태왕은 추모왕의 12세손에 지나지 않는데,
호태왕비문에 호태왕이 추모왕의 17세손이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역사연구자들이 그 의문을 풀어보려 노력했으나 아직까지 그를
명쾌하게 밝힌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필자가 그 천년의 의문을 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