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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운주절도사 이사도의 난 진압을 위해 신라가 군사를 파병했다는 기록의 진실 - 최초주장

윤여동 2013. 1. 6. 09:31

윤여동설 - 운주절도사 이사도의 난 진압을 위해 신라가 군사를 파병했다는 기록의 진실 - 최초주장

 

 

   삼국사기 신라본기 41대 헌덕왕 11년(A.D.819) 조를 보면,

  “가을 7월 당나라 운주절도사(鄆州節度使) 이사도가 반란을 일으키므로 (당) 헌종이 장차 이를 토벌하여 평정하고자 양주절도사(楊州節度使) 조공을 보내 우리(신라) 병마의 징발을 요청하므로 왕이 칙지를 받들어 순천군(順天軍)장군 김웅원으로 하여금 갑옷 입은 병사 3만을 거느리고 가서 돕도록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을 보고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역사를 연구할 자질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신라가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었고, 당나라의 운주가 산동성에 위치했다면, 3만의 신라군사는 이사도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여 서해(황해)바다를 건너 산동성에 이르렀다고 해석해야 한다.

  그렇지만 신라가 지금의 하북성 당산, 진황도, 요녕성 수중, 조양, 호로도, 금주(錦州) 부근을 차지하고 있었고, 운주가 산동성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당나라가 왜 신라에게 군사의 파병을 요청했는지 이해할 수 있고, 신라는 군사3만을 해로가 아닌 육로로 이사도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파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당나라는 혹시라도 운주절도사 이사도가 북쪽의 신라와 손잡는 것을 미리 차단하고, 남쪽, 서쪽의 당나라군과 북쪽의 신라군이 합동작전으로 이사도의 난을 진압하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