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동설 - 신라 13대 미추왕은 구도갈문왕의 아들이 아니라 고손자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13대 미추이사금 조를 보면,
“미추이사금이 왕위에 오르니 성은 김씨이다. 어머니는 박씨이니 갈문왕 이칠의 딸이요, 왕비는 석씨 광명부인이니 조분왕의 딸이다.
그의 조상 알지가 계림에서 났는데 탈해왕이 이를 얻어다가 궁중에서 길러 뒤에 대보로 임명하였다.[필자 주 : 삼국유사 김알지 탈해왕대 조에는 “탈해왕이 길일을 가려 김알지를 태자로 책봉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알지가 세한을 낳고, 세한이 아도를 낳고, 아도가 수류를 낳고, 수류가 욱보를 낳고, 욱보가 구도를 낳으니 구도가 곧 미추의 아버지이다.
첨해(12대 첨해이사금)가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미추를 왕으로 세우니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가진 시초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 삼국유사 미추왕과 죽엽군 조에는, 미추왕이 “受禪于沾解(첨해로부터 선양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첨해왕은 미추왕의 장인인 조분왕의 동복동생으로서 미추왕의 처삼촌이었다.
그런데 삼국사기 첨해왕 15년(A.D.261) 조를 보면, “겨울 12월 28일에 왕이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아들이 없어 나라 사람들이 미추를 왕으로 세웠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혹시 첨해왕과 미추왕 사이에 깊은 갈등이 있어 미추왕 측에서 첨해왕과 그 아들을 죽여버리고 미추를 왕위에 옹립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2년(A.D.263) 조를 보면,
“2월 왕이 시조묘에 친히 제사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왕의 죽은 아버지 구도를 갈문왕으로 봉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미추왕의 아버지가 구도갈문왕이라는 것이다.
[삼국사기] [필자의 주장]
김알지 김알지
↓아들 ↓아들
세한 세한
↓아들 ↓아들
아도 아도
↓아들 ↓아들
수류 수류
↓아들 ↓아들
욱보 욱보
↓아들 ↓아들 [비교]
구도 구도 9대 벌휴왕
......................
↓아들 ↓아들 ↓딸 ↓
13대 미추왕 ?(실명) 옥모 → 골정=옥모부인
(구도의 딸)
↓아들 ↓아들
? (실명) ? (실명)
...................
↓아들 ↓아들 ↓아들
? (실명) 11대 조분왕 12대 첨해왕
↓아들 ↓딸
13대 미추왕=광명부인 ← 광명
(조분왕의 딸)
즉 삼국사기 기록은 미추왕의 아버지가 구도갈문왕이고, 미추왕이 김알지의 6대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도라는 사람은 9대 벌휴왕의 큰아들인 골정에게 자신의 딸 옥모를 시집보냈던 골정의 장인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구도는 9대 벌휴왕과 사돈지간으로서 동년배라고 볼 수 있을 것인데, 벌휴왕은 서기 184년 3월에 왕위에 올라 재위 13년인 서기 196년 4월에 죽었으므로 구도 역시 벌휴왕과 비슷한 시기에 생존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9대 벌휴왕에게는 골정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이름을 잃어버린 손자가 있었으며, 11대 조분왕은 벌휴왕의 증손자(삼국사기에는 조분왕이 벌휴왕의 손자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오기이고 사실은 증손자였다)로서 서기 230년 3월에 왕위에 올라 재위 18년인 서기 247년 5월에 죽었다.
그리고 미추왕은 조분왕의 딸 광명부인과 혼인을 하였으므로 조분왕의 사위로서 아들뻘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미추왕은 구도의 아들이 아니라 구도의 고손자로서 그는 서기 262년 1월에 왕위에 올라 재위 23년인 서기 284년 10월에 죽었던 것이다.
☆ 알지가 태어난 때를 삼국사기는 서기 65년으로 기록하고 있고, 삼국유사는 서기 60년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사실 알지는 탈해가 25세쯤의 젊은 시절인 서기 20년경 출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탈해왕의 아들 구추와 알지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