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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신라와 말갈의 국경 니하(泥河)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윤여동 2013. 11. 16. 10:24

윤여동설 - 신라와 말갈의 국경 니하(泥河)의 위치 찾기 - 최초주장

 

 

 

[신라의 니하(泥河)는 요녕성 조양시 북표시 동쪽 망우하(牤牛河)]

 

   삼국사기 신라 6대 지마왕 14년(A.D.125) 조를 보면, “봄 정월에 말갈이 북쪽 변경으로 대부대로 몰려와서 관리와 백성들을 죽이고 노략질을 하더니 가을 7월에 또 대령책을 습격하고 니하(泥河)를 넘었다. 왕이 백제에 글을 보내 구원을 청하니 백제가 5명의 장군을 보내 도우매 적병이 소문을 듣고 물러갔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20대 자비왕 11년(A.D.468) 조를 보면, “봄에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북쪽 변경의 실직성(悉直城)을 습격하였다. 가을 9월에 하슬라 백성들로서 15세 이상되는 사람들을 징발하여 니하(泥河)에 성을 쌓았다[니하는 일명 니천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21대 소지왕 3년(A.D.481)조를 보면, “3월에 고구려와 말갈이 북쪽 변경에 들어와서 호명 등 7개 성을 빼앗고 또 다시 미질부로 진군하였다. 우리 군사가 백제, 가야의 구원병과 함께 길을 나누어 막으니 적이 패하여 퇴각하는 것을 추격하여 니하(泥河) 서쪽에서 쳐부수고 1천여명의 목을 베었다”

 

 

[신라 니하의 우산성 추정지 소머리 형상의 지형]

 

  같은 왕 18년(A.D.496)조에도 “가을 7월에 고구려가 와서 우산성(牛山城)을 치므로 장군 실죽이 나가 니하(泥河)에서 이를 격파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당서 발해전을 보면,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고구려에 부용되어 있었으며, 성은 대씨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무리를 이끌고 읍루의 동모산을 차지하였다. 그 땅이 영주에서 동쪽으로 2천리에 있으며, 남쪽은 신라에 닿아 니하(泥河)를 국경으로 삼았고, 동쪽은 바다에 닿았고, 서쪽은 거란까지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니하(泥河)”가 역사적으로 신라와 말갈의 국경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하는데, 이렇듯 사서에 기록되어 전해진 니하의 위치를 정확히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기록들을 잘 들여다보면, 니하는 하슬라와 실직 서쪽에 위치한 강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한데, 이는 하슬라는 지금의 고륜기로 비정되고, 실직은 부신으로 비정되기 때문이다.  

  니하(泥河)는 지금의 어느 강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나만기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조양 동북쪽에서 대릉하(백석수고)로 흘러드는 지금 북표시의 망우하(牤牛河)가 옛 니하(泥河)로 비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