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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설 - 전설 속의 나라 고죽국과 연5군의 관계 - 최초주장

윤여동 2013. 12. 7. 03:22

 

윤여동설 - 전설 속의 나라 고죽국과 연5군의 관계 - 최초주장

 

 

 

 

  옛 요수가 지금의 북경 서쪽을 흐르는 영정하(永定河) 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전국시대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2천여리(혹은 1천여리)를 빼앗아 설치했다는 5군 즉 요동군, 요서군, 상곡군, 우북평군, 어양군의 위치가 북경부근으로부터 서남쪽으로 호타하 부근까지였음이 밝혀졌는데, 연5군 지역과 고죽국의 위치가 겹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염철론 권제8 벌공 제45를 보면,

  “齊桓公越燕 伐山戎 破孤竹 殘令支(제환공이 연나라를 넘어 산융을 정벌하고, 고죽을 격파하였으며, 영지는 남겨두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고,

  또 사기 권32 제태공세가 제2 환공 23년(B.C.653) 조를 보면,

  “山戎伐燕 燕告急於齊 齊桓公救燕 遂伐山戎 至于孤竹而還(산융이 연나라를 침공하자 연나라가 위급함을 제나라에 알렸다. 제 환공이 연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곧 산융을 정벌하고 고죽국까지 이르렀다가 돌아왔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융(선비)이 춘추시대 연나라와 국경을 직접 접하고 있었음을 알게 하고, 고죽국 역시 산융, 연나라와 가까이 위치한 나라였음을 알게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제나라는 산동성 임치(현 치부) 부근에 위치했던 나라였고, 연나라는 하북성 보정시 역현을 중심으로  위치했던 나라였다.

 

☆ 연나라의 위치에 대하여 지금의 북경 부근으로부터 요하 부근까지로 비정하는 사람도 있으나 잘못된 것이다. 그 땅은 우리의 고조선이었고, 삼국이었고, 고려였다.

연나라의 도읍 연경(燕京)은 역현(易縣) 부근이었다.  

 

  그렇다면 산융과 고죽국이 어디에 위치했기에 산융이 보정 부근에 위치했던 연나라를 침공할 수 있었으며, 제나라의 환공이 연나라를 넘어 산융을 정벌하고 고죽국까지 갔다가 돌아왔다고 기록할 수 있었을까?

  산융은 지금의 보정 북쪽 태행산맥 중 또는 그 북쪽에 위치해야 하고, 고죽국은 지금의 영정하 서쪽 방산 부근으로부터 역현 부근 사이에 위치해야 기록을 충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찾고보니 백이· 숙제의 고사로 유명한 고죽국(孤竹國)이 후세 진개가 고조선으로부터 빼앗아 5군을 설치했다는 바로 그곳 중  요서군, 상곡군 땅을 기반으로 삼았던 나라로 나타난다.

 

고죽국의 도읍 고죽성은 유리하진 부근에 있는 서주연도유지(西周燕都遺址)라 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는 고죽국이 원래 고조선과 연나라 사이에 위치했던 나라로서 연나라의 장수 진개가 고조선을 침공할 때는 고죽국이 고조선의 세력권에 속해 있던 나라였다는 의미이다.

  진개 이전 고조선의 서쪽 국경은 지금의 북경 서남쪽 하북성 역현 부근까지였으나 고조선은 이때 연나라에게 고죽국의 땅(현 영정하 서쪽)과 요동(현 북경 부근)을 빼앗겼던 것이다.

  이로써 고죽국에 대한 옛 사서들의 기록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 하북성 노룡에 조성되어 있는 고죽국유적은 조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 하북성 노룡은 백제의 도읍 웅진으로 비정되는 곳으로서 우리의 대륙백제 땅이었지 고죽국 땅이 아니었다.